▲'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2차 탐방단은 지난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동안 상하이, 자싱, 항저우, 난징 등을 방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피난처, 윤봉길 의사 의거현장, 난징대학살기념관, 리지샹위안소 등을 돌아봤다. 사진은 일본군 성노예와 관련한 유적지로는 아시아 최대규모인 난징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을 후문에서 바라 본 모습. 리지샹위안소는 난징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어 재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고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 등으로 2014년 11월 낭징시인민정부가 '보존'키로 결정, 2015년 12월 정식 개관했다. 뒤로 보이는 고층빌딩과 대조를 이룬다.
오마이뉴스 장재완
공개하고 있는 두 개의 동 중 첫 번째 동에 들어서자 두루마리 형태의 책에 수많은 위안소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당시 난징에만 60개의 위안소가 있었다고 하니, 일본군이 위안소 운영을 얼마나 대대적이고,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운영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또 이곳에는 콘돔이나 부인과 검사기구, 신체검사틀, 연고 등 위안부와 관련된 증거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위안부를 훔쳐보는 일본군의 사진, 살아남은 위안부 소녀들이 할머니가 되어 증언한 증언록, 증언영상 등도 전시되고 있다.
2동 19호. 박영심 할머니가 있었던 방에 들어서자 눈물이 차오르고 목이 메어 왔다. 다다미 침상과 작은 화장대, 주전자와 찻잔, 세숫대야 등이 그 당시를 그대로 재연해 놓았다. 벽면에는 박영심 할머니의 여러 사진들이 걸려 있는데, 차마 자세히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나라하고 처참했다.
마지막 전시관을 나서는 길에 '마르지 않는 눈물'이라는 제목이 붙은 한 할머니의 조각상을 만났다. 이 조각상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마른 손수건과 함께 '그녀의 눈물을 닦아 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닦아냈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너무 울어서 눈이 멀어 버렸다는 한 중국인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영상이 조각상과 자꾸 오버랩됐다.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을 나서면서 우리는 대부분 말이 없었다. 눈물이 차올라 자꾸 하늘을 올려보곤 했다. 분함과 슬픔이 함께 밀려왔다. 한 선생님은 눈물을 감추려 선글라스를 꺼내 썼지만, 결국 선글라스를 벗고 중앙반점으로 돌아오는 내내 눈물을 닦아내기도 했다.
이것으로 'The-K한국교직원공제회'와 '오마이뉴스'가 함께 진행한 '임시정부 100주년 역사탐방' 3박4일간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공항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탐방단들은 "나를 찾는 여행이었다", "내 꿈을 찾은 것 같아요", "내가 누리는 것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등 저마다의 소감을 나누었다.
이번 일정의 해설을 맡았던 홍소연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자문위원은 모든 일정을 마치면서 "비록 다른 나라 땅에 있지만, 우리나라 역사 최초로 민주공화제를 만들어 대한민국이 탄생한 임시정부 유적지를 더 많이 찾아오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청소년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수학여행을 보내거나 교과과정에 포함시켜 돌아보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그래야 독립운동가들이 찾고자 했던,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을 더 잘 알 수 있고, 더 소중히 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동시에 임시정부 유적을 돌아보는 것은 우리 스스로 국가의 주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으로 매우 중요하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며 "아쉽게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했지만, 우리 땅에는 이를 기념할 만한 기념관 하나 없다. 현재 2021년 완공을 목표로 준비중에 있는데, 기념관이 세워지면 이 곳에라도 많이 찾아와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고마움과 조국의 소중함 느끼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이번 역사탐방에 함께 했던 김태훈 한국교직원공제회 경영지원부 차장과의 미니인터뷰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