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사옥'은 겉모양은 현대 건축물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내부의 공간 구성은 한국의 전통적인 건축 방식을 본받아 절충하여 지은 건물이다.
황정수
김수근 건축의 빛과 그늘
'공간사옥' 사무실에서 한국 건축계를 이끌어온 김수근의 삶은 수많은 영광의 빛을 받기도 했지만, 그의 독주는 부작용을 나타내 사회적으로 어려운 일을 겪기도 하였다. 그는 건축 공부를 시작한 초기부터 승승장구를 하였다. 대학원 재학시절 이미 남산에 국회의사당을 지으려는 설계 공모에 출품하여 1등을 하였다. 하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백지화되는 바람에 건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로 자리 잡은 김수근은 수많은 건물을 설계한다. 그가 설계한 대표적인 건물로는 남산자유센터(1963), 국립부여박물관 구관(1967), 세운상가(1968년), 공간사옥(1971),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1974), 서울종합운동장(1977), 국립청주박물관(1979), 문예회관(1979), 경동교회(1980), 주한미국대사관(1983),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1986) 등 수없이 많다.
이중 초기 작품인 '남산자유센터' 건물은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노출콘크리트 공법이 선을 보인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그러나 이 건물은 당시 사람들 눈에는 짓다 만 미완성 건물 같다는 혹평을 듣기도 하였다.
또한 장충동에 있는 '경동교회' 건물은 그의 종교 건축을 대표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조형은 기도하는 손 모양을 소재로 하였다. 깨어진 빨간 벽돌로 된 고풍스런 외형은 신비한 느낌이 들고, 창문 하나 없이 굴속 같은 내부 공간은 신성함과 경건함이 느껴진다.
김수근의 많은 건물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일부 건물은 국민의 의식과 맞지 않거나, 실용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거나, 도덕적 정당성에 호응을 받지 못해 비판의 대상이 된 건물들도 있다. 그런 대표적인 건물이 1967년에 세운 '국립부여박물관'과 1974년에 건축한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국립부여박물관 건물의 왜색 논란
'국립부여박물관' 건물은 갑작스런 '왜색(倭色)' 논란이 일어나 승승장구하던 김수근에게 성장통을 겪게 한다. 당시 한국 국민들은 '일제강점'이라는 상흔이 채 아물지 않았던 시절이라 일본 색채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던 때였다. 더구나 그가 일본에 유학한 건축가라 그 혐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김수근은 본래 이 건물을 한국 전통 건축을 바탕으로 짓고자 하였으나, 짓고 보니 공교롭게 일본 신사를 닮았고, 정문은 일본 신사의 정문 '도리이(鳥居)'를 닮았다. 많은 문화인들이 김수근의 건축이 일본에서 공부하여 왜색을 보인다며 비판하였다. 김수근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지만 결국 '왜색'이라는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후 김수근은 한국의 대형 건축 프로젝트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생길 정도로 타격을 받는다.
이 사건 이후 김수근은 이때부터 한옥을 접목하는 시도는 완전히 포기하고, 주로 빨간 벽돌로 지은 현대적인 건축에 집중한다. 그는 대학로의 '문예회관'이나 '샘터 건물'을 지으며 빨간 벽돌에 대한 애정을 보였는데, 대학로 주변을 모두 빨간 벽돌 건물로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하곤 하였다고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 건축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