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세력의 남경 이동을 보도한 1935년 2월 1일 치 ‘동아일보’
조종안
1935년 2월 1일 치 '동아일보'는 "(김원봉, 김구 등 민족운동의 거두는) 남경 육군군관학교 일부를 차용하야 군대식 교련으로써 투사를 배양하고 잇어 목하의 조선인 재학생은 제3기생 60명, 제4기생 40명이 잇어 제3기생은 충분한 교련을 실시하야 금년 2월 졸업한 후 만주 조선 각지로 밀령을 받고 잠입해 잇다는 정보도 있어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저 경무국은 물샐틈없는 경게진을 펴고 잇다."라고 전한다.
그해(1935) 7월에는 김원봉, 김규식, 조소앙, 지청천, 신익희, 최동호 등 기라성 같은 독립지사들과 한국독립당·신한독립당·조선혁명당·대한독립당·의열단 대표들이 금릉대학(현 난징대학) 대례당에 모여 민족혁명당을 결성한다. 이 조직은 동맹연합체 성격을 넘어서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통일전선체제 구축을 목적으로 하였다. 김구는 임시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불참한다.
민족혁명당 조직체계는 중앙집행위원회 아래 서기부·조직부·선전부·조사부·훈련부·군사부·국민부 등을 설치하고 중국과 한국에 지부(支部)와 구부(區部)를 둔다. 1936년 초에는 화중·화남·화동·화서·화북·만주·조선 등의 7개 지부가 있었다. 강령은 민주공화국, 삼균주의, 토지 국유화, 대규모 생산기관 국유화, 민주적 권리보장 등을 삼았다. 기관지 <민족혁명>도 간행한다.
난징대학, 1888년 미국 선교사가 설립
지난 6월 1~8일, 기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26년의 발자취(상하이에서 충칭까지)를 따라 걷는 '임정로드 탐방단 1기' 단원으로 중국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