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문해력의 나라

반일종족주의 서평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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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cannabis82)등록 2019.08.20 07:36
낮은 문해력의 나라 - 반일종족주의 서평①
 
반일 종족주의. 이영훈 씨의 책이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영훈 씨의 그릿(GRIT, aka 존버정신)에 존경의 인사를 보냅니다. 이영훈 씨의 주장은 현재 일본 경제침략 국면에 편승한 즉흥적 발산이 아닌 그의 오랜 주장이었습니다.
 
복잡한 세상(Complex System)이기에, 현실에서 '대박'은 상당 부분 '운'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번 반일 종족주의의 흥행을 보면서 다시 한번 배웁니다. 이영훈 씨 본인이 장점이라고 강조한 바로 그 '사료에의 충실', '연구자적 태도'의 부족 때문에 오랜 기간 역사학계에서 퇴출되었던 그의 주장이 부활한 것은 아래의 요인 때문이지 않나 싶습니다.
 
첫째, 이영훈 씨의 존버 정신입니다. 복잡계에서 운의 창발의 '전제' 조건은 '계속 하는 것' 입니다. 이영훈 씨는 주류 학계의 무시에도 불구하고, '지식의 반감기'에 따라 자연스레 학계에서 퇴출된 '식민지 근대화론'에 근거해 '친일 인종주의적' 주장을 고장난 테이프처럼 반복해 왔습니다. 최근엔 유튜브로 연재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타이밍입니다. 일본의 경제침략 국면이 지속되고, 이것이 현 정권의 승패를 가름할만한 이슈로 부상하자 각 진영은 이를 정쟁화하며 '사실 관계', '합리적 추론', '실질적 대책'을 넘어 자기 진영의 주장을 뒷받침 할 근거를 취합하는데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셋째, 대한민국의 낮은 문해력 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영훈 씨는 반일 종족주의의 프롤로그에서 대한민국을 '거짓말의 나라'로 묘사했는데 저는 '낮은 문해력의 나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거짓말의 나라면 진작 이영훈 씨의 주장이 우리 나라의 주류 이데올로기가 되었겠지요.
 
낮은 문해력이란 한 마디로 '글자는 읽지만 그 행간, 맥락의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첨단 자본주의 국가로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점차 심해지고 있는 현상인데 '책을 읽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정보취합, 취사선택 능력이 저하되어, 남이 무슨 말을 하는 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낮아지는 현상' 입니다.
 
낮은 문해력은 조립가구를 샀을 때 딸려오는 조립설명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일상적 예부터, 포털의 기사 내용과 어긋난 베스트 댓글 등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지만, 위의 둘째 이유에서 언급한 '자기 생각을 뒷받침 할 근거에만 집착'하는 '확증편향적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는 특정 개인의 고집과 성격이라기보다는 SNS의 알고리즘에 근거해 비슷한 성향의 네트워크만 확장되는 환경이 큰 영향을 줍니다.
 
따라서 스스로의 성향에 따라 이미 내리고 있던 직관적 판단에 힘을 실어줄 근거를 접하게 되면(특히 자신의 판단이 주류적 흐름과 다르다면 더욱) 지적 우월에 취하게 되어 스스로가 대단히 논리적이고, 선진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근거와 정보라는 것은 사실 널려있기에 조금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이영훈 씨의 '반일 종족주의'는 위 세 가지 연유에서 대박을 터뜨린 것으로 보이는데 저는 첫째, 둘째 이유인 이영훈 씨의 존버와 적절한 타이밍은 그렇다 치더라도 마지막 이유인 낮은 문해력은 대한민국에서 반드시 극복되어야 할 지점이라 생각되기에 담벼락에 욕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글을 끄적여보려 합니다.
 
오늘 적는 이 글은 반일 종족주의의 프롤로그를 겨냥한, 제 담벼락 욕의 프롤로그 격이라 볼 수 있는데 이영훈 씨가 반일 종족주의 프롤로그에서 언급한 '저신뢰 사회'를 극복하기 위한 필부의 몸부림이라고 보면 좋을 듯 합니다. 저신뢰 사회는 이영훈 씨 주장처럼 대한민국 국민들이 온통 거짓말쟁이라서가 아니라 낮은 문해력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협력'하지 못하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대한민국이 '고신뢰 사회'로 가려면,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가 파생시키는 각종 '갈등'을 중재하는 '협력'의 창발이 필수입니다. '갈등' 구도에서의 '협력'은 '소통'에서 시작되는데 그 '소통'의 절대적 조건이 바로 '팩트'의 '올바른 취사선택'과 '맥락적 이해'입니다.
 
대한민국이 '거짓말의 나라'라고 주장한 이영훈 씨 본인의 각종 반일 종족주의 주장 근거들은 제가 봤을 때 아이러닉하게도 거짓말은 아닙니다. 본인의 '입맛에 맞게 선별적 팩트 취합'과 '맥락의 거세'로 점철되어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종 정파적 주장의 근거로 활용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저열한 것입니다.
 
이영훈 씨는 반일 종족주의 프롤로그에서 거짓말의 정치를 언급하며 박근혜 탄핵 시기 각종 루머를 인용합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의 명백한 탄핵 근거들은 빼놓습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납치가 아님을 주장하면서, 종군위안부 고용문서의 명백한 사기성은 빼놓습니다. 한일병탄의 책임을 친일 대신들이 아닌 도장 찍은 황제 일가에게 물으면서, 당시 찍힌 도장이 국새가 아닌 고종 강제 퇴위 때 일본이 뺏은 도장임은 빼놓습니다. 헤이그 특사를 파견한 고종의 의사는 빼놓습니다.
 
이것이 거짓말의 나라를 살고 있다고 주장한 진실한 이영훈 씨의 화법입니다.
 
심지어 이영훈 씨는 반일종족주의 프롤로그에서 거짓 대한민국의 원인은 '물질주의'에 있고, 물질주의는 '샤머니즘'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입맛에 따른 팩트취사선택, 맥락의 거세를 넘어서는 논리적 비약입니다. 비약도 태평양을 뛰어넘을 만큼의 비약입니다. 대체 샤머니즘과 물질주의는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서구 민족주의와 다른 대한민국의 민족주의는 '일본을 원수로 보는 종족주의'라는데, 이 부분에서는 심지어 근거마저 대지 않습니다, 식민 지배를 겪은 일본으로 한 해 700만명이 관광 가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원수의 집에 놀러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본을 원수로 본다는 '종족주의' 주장은 이영훈 씨 본인 주장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이론인 '식민지 근대화론'과 '사회진화론'으로 모든 걸 연결 짓기 위한 관념적 수사에 불과합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이론을 만들지 않고, 이론에 꿰맞추어 현실을 해석하는 '지식적 변태'의 전형입니다.
 
저는 역사를 전공하지도, 학계에 몸을 담고 있지도 않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자영업자입니다. 다만, 책을 좋아해 우리 나라의 문해력과 소통, 토론 문화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반일 종족주의의 흥행을 보며 정파적 이해관계나 관점의 차이를 넘어 퇴출되어야 할 얄팍한 지식이 힘을 얻는 것에 문제 의식을 느낍니다. 일 하면서 여력이 되는 시간에 반일 종족주의 서평을 이어가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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