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귤 작가의 <판타스틱 우울백서> 중 일부
<판타스틱 우울백서> 텀블벅
서귤 작가의 <판타스틱 우울백서>는 우울증에 걸린 작가의 치료일기다. 작가는 직장에 다니면서 정신병원에 갈 때마다 다른 고통을 핑계로 삼는다.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내과.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을 노동의 기본 값(아무리 갑질 당해도 의연할 수 있는 멘탈, 주 5일 야근과 특근쯤은 거뜬하게 버틸 수 있는 몸)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자신의 병을 숨기는 작가의 모습이 짠하면서도 궁금했다.
몸의 병은 그나마 승인되지만, 정신의 병은 꼭꼭 숨길 일이 되는구나. 프리랜서인 나는 낙인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내 아픔을 내가 믿지 못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 나 그냥 하기 싫어서 핑계 대는 건 아닐까, 성격을 바꾸면 되는 일 아닐까. 실제로 나와 같은 불안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자주 듣는다. 운동을 더 해. 채소를 먹어. 물을 많이 마셔. 영양제를 먹어. 우울 불안 공황 그런 거 다 생각하기 나름이야. 세상에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아. 연애하면 다 나아진다?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도 있다. 약을 오래 복용하면 더 무기력해진다, 살이 찐다, 사람이 갑자기 이상해진다, 내성이 생겨 평생 먹어야 한다. 병원에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신과에서는 공장처럼 일정한 약을 찍어주지 않는다. 그때그때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맞는 약을 찾고, 약을 기반으로 일상을 살아갈 근력을 키워나간다.
내 담당 선생님은 정신과 치료의 목적은 평생 약을 먹이는 게 아니라 개입이 필요한 시기에 치료하고 환자가 약을 끊게 하는 거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덧붙였다. "물론, 살다보면 또 힘든 날이 올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다시 찾아오면 돼요. 감기처럼, 정신 장애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거니까요. 더 문턱이 낮아지면 좋겠어요."
오프라인에서 병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할 때는 공황장애 환우 카페를 통해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료 방법이나 만성적인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 등을 공유하곤 했다. 언제부턴가 친구들과도 적극적으로 서로의 병을 나누게 되었다. C의 강박장애는 어떤 상태인지, D가 새로 바꾼 우울증 약은 어떤지, E는 이제 자살 시도를 하지 않는지, F는 알코올 중독 상담을 언제 받을 건지, 어떤 병원이 괜찮은지, 약은 잘 챙겨먹는지 서로 체크하며 응원해주는 식이다.
내 아픔을 무시하거나 무시무시하게 여기지 않고, 나라는 사람의 부분으로 인정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주는 힘은 크다. 최근에는 '환밍아웃'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각자의 아프고 삐걱대는 몸을 드러내는 서사가 늘어나고 있다. 누구도 달성할 수 없는 '표준의 몸'의 개념에 균열 내고, 건강 중심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서사들이다.
여전히 내 몸은 공황장애와 메니에르(달팽이관 전정기관 이상이 생겨 어지럼증을 느끼는 만성질환), 황반변성(한쪽 눈에 기형 혈관이 자라면서 시력이 떨어지는 질병) 등 다양한 삐걱거림을 겪고 있다. 꽤 오래 달고 살면서도 고통에 익숙해지는 법은 도무지 모르겠고, 아마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아는 유일한 한 가지는 내 하루는 알약 세 알로 시작하고 그 점이 나를 부끄럽게 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알약 세 알은 나를 설명하기도 하고, 나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기도 하니까.
아픈 사람의 시선으로 건강 중심 사회를 기록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조한진희 작가는 "누구도 아픈 것 때문에 아프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가 작가에게 받은 위로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이 글을 건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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