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배반 현상

강남 좌파와 달동네 우파의 생성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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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uje3)등록 2019.07.18 13:32
우리는 어떤 사물과 사회현상을 대할 때 개인 각각의 안목에 의존하여 인식한다. 안목은 초점과 관점으로 나눌 수 있는데, 초점(焦點)을 어디에 맞추느냐, 또는 관점(觀點)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대상의 실체와 뜻이 전혀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초점은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는데 유용하고, 관점은 가치관의 차이점을 명료하게 한다.

​여기서 나는 안목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얘기를 하고자 한다. 즉 좌파 성향의 사람(이하 좌파)과 우파 성향의 사람(이하 우파)이다. 좌파는 사회적 약자(이하 약자)의 안목으로, 우파는 사회적 강자(이하 강자)의 안목으로 대상과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강자, 약자의 구분은 힘의 원천인 사회적 희소가치[재물(부), 지위(신분), 지식(정보), 명예, 권위]의 소유 유무로 나누기로 한다.

​그런데 강자이면서 좌파의 안목(강남 좌파)을, 반대로 약자이면서 우파의 안목(달동네 우파)으로 사물과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등장한 것, 이와 같은 계층 배반 현상이 어떻게 해서 나타날 수 있는가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개천에서 용 났다" "미꾸라지 용 됐다" 등 우리 속담에서 나오는 용이란 단어는 소위 입신양명(立身揚名)으로 표현되는 출세(出世)를 의미한다. 보통 상식적 논리로 말한다면 예부터 지금까지 우리 삶의 목표(꿈)는 용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용이란 앞서 말했듯이 강자로서 힘의 원천인 부(富), 지위, 지식 등 사회적 희소가치를 독점한 사람을 일컫는다.

평생을 두고 용 되기를 갈망하고 노력했지만 성취하지 못한 수많은 미꾸라지와 이무기들은 차선의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용 바라기'가 되는 것이다. 마치 10~20대 젊은이들이 특정 연예인에 매료되어 옷차림은 물론 행동양식까지 모방하듯이-. 용의 생각과 행동을 따라 하면서 자기 위안과 만족을 얻고자 한다. 이런 현상을 프로이트 심리학에서는 방어기제의 하나인 '동일시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게 젊은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환상에서 깨어나기도 하지만, 가치지향적인 삶보다 출세 지향적으로 살아온 장년층 이상의 사람들은 그 현상이 고착화되어 평생을 가게 된다. 여기서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 대상 즉 용의 생각과 행동을 모방하고 따라 하는 미꾸라지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즉 '달동네 우파'의 출현이 그것이다.

​달동네 우파는 자기 자신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기보다는 출세한 용의 시선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고 그것을 내면화한 사람들이다. 내가 여건이 안 되어 용의 위치에 못 이르렀지만 내 의식은 용과 같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여기서 계층 배반의 정치적 선택과 자기 허상화 현상[할배의 탄생(2016) p65, 최현숙 지음]으로 나타난다.

​또 하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약자들(일용직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은 고단하고 힘든 삶에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고 눈앞의 현실 적응에 급급하다 보니 보수적인 우파 성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Thorstein Bunde Veblen)]

현실 적응도 힘겨운데 거기다가 변화가 생기면 더 어렵고 고단해진다고 생각하게 된다. 예컨대 시위가 일어나서 하루 일감을 잃거나 하루 장사를 망치는 일이 생기면 이것은 생존이 걸린 현실 문제가 되어서 시위의 당위성을 논하는 자체가 사치가 된다.

또 인간이 지닌 보편적 욕구로 과시욕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약자에게는 상대에게 약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럴 필요를 더 느끼게 된다. 이런 속물 효과(베블런효과)가 지속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달동네 우파가 탄생하기도 한다.

​강자의 유일한 약점은 소수(少數)인데 이 약점을 보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달동네 우파'이다. 그런 점에서 강자에게는 고마운 존재이다.

달동네 우파와 대척점에 있는 '강남 좌파'는 어떻게 태어났을까. 맹자가 주장한 인간 본성 4단(端) 중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수오지심(羞惡之心)이 기질적으로 강한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선악의 진화 심리학'(저자:Paul Bloom. 심리학자)에 의하면 인류는 수만 년의 긴 세월 동안 다수를 차지하는 약자를 돕는 것이 소수인 강자는 물론 모두의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인지한 결과로 본다는 것이다. 측은지심 즉 약자 보호는 인류의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좌파와 우파의 구분을 삶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공포에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로 설명하는 사람[닥치고 정치, p44~45, 김어준 지음]이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좌파의 작동 원리는 염치가 된다. 염치는 이성적 추론과 논리적 사고에서 나오고 이성적 추론과 논리적 사고는 학습과 양육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강남 좌파는 학습과 양육에 의해 좌의 이념 체계를 머리로만 받아들여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염치는 수오지심의 원형이며 수오지심을 오늘날 말로 옮기면 '사회적 부채 의식'이다. 기득권층이 사회적 부채 의식을 느낄 때 강남 좌파가 될 가능성이 크게 된다.
그러나 좌우파 성향은 생래적이고 기질적 특성이 강해 학습이나 양육에 의해 일시적으로 바뀐 성향은 본래대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삶의 현실과 생각의 괴리 현상은 강남 좌파나 달동네 우파 둘 다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 유독 우파가 언행 불일치의 위선자 또는 이중인격자로 비난의 강도를 높이는 대상은 강남 좌파다.
기득권과 안락함을 포기하지 않고 그러면서 다수 약자의 마음까지 얻고자 인간의 보편적 가치들을 들먹이는 그 이면에는 더 큰 명예나 부를 얻을 속셈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영춘(3선 현 국회의원)은 이렇게 답하고 있다.

"기득권층이면 오직 자기 욕망에 충실하여 다른 사람들을 밟고 살아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성자처럼 살아야 하는가? 둘 다 답이 아니다. 아무리 기득권층이라도 타인을 배려하고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문명사회이다. 그런 강남 좌파가 많은 나라가 좋은 선진 국가가 아닌가" (강남 좌파 p25, 강준만 지음).
그러나 이것은 달동네 우파의 좌파화를 저지하기 위한 '이중화법'[2011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154), p433, 황승현]이라는 주장도 있다.

"자본(강자)의 편임을 들키지 않고 실질적으로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이중화법으로 달동네 서민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대신 좌파를 증오하게 만들고 또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라는 것이다.

​좌파(약자)가 우파(강자)와 대등한 경쟁 상대가 되려면 약자 간의 단결과 제삼자와의 연대가 필수적인데, 이때 강남 좌파의 존재는 단결과 연대를 위한 명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명분 제공이 우파가 강남 좌파를 맹렬히 비난하는 숨은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강남 좌파와 달동네 우파의 생성 과정을 살펴보았다. 강남 좌파와 달동네 우파의 존재가 우리 사회 특히 정치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흥미를 가지고 눈여겨볼 문제가 된다.

다만 계층 배반적 현상이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낼지, 아니면 어떤 부정적인 역할을 할는지는 지켜볼 일이다.

강남 좌파와 달동네 우파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어쩌면 좌파와 우파가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우리 사회에 던져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차피 우리 사회가 소수의 강자와 다수의 약자로 나누어지는 불평등한 사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
또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사회라고 한다면 우리는 강자와 약자 사이에 생겨나는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계층을 배반한 강남 좌파와 달동네 우파가 역설적으로 갈등의 완충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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