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 월드컵 경기장, 여자친구와 '첫 여행' 보다 어렵다는 '첫 축구장'

'축구장' 이라는 맛집 그리고 콘서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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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onlymy91good)등록 2019.06.28 11:35
여자친구와 함께 갈 수 있는 곳을 적어봤다. 영화관, 전시관, 산책하는 공원... 걔 중 대부분은 취향에 맞지 않는다. 지금까지 모든 것을 여친에게 맞춰왔다. 왜 여친이 좋아하는 곳만 가고 있을까? 여친과 축구장 가기는 이 생애 불가능한 일일까? FC 서울과 대구 경기를 보러 상암에 왔는데 여친과 함께 온 다른 남자들을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서울 vs 대구 경기 시작 2시간 전 운동장 모습 ⓒ 사진 = 최진호 기자

 
여친은 내로남불이다. "축구 안 본다", "재미없다"라는 여친의 세상 지치게 만드는 말은 오늘도 이어진다. 축덕들을 죽이는 말. 왠지 오늘따라 더 얄미워 보인다. 아마 축구 경기장에 어렵게 갔다 쳐도 조금만 틈을 보이면 여자 친구는 상암 주변 망원 카페로 날 끌고 갈 것이다.

더 이상 이럴 수 없단 생각에 여자친구를 위한 이라는 '맛집,' '콘서트', '게임' 까지 구미를 당길 3가지 흥밋거리를 찾아봤다.
 

상암 경기장 입구 푸드트럭에 이미테이션 되어 있는 축구공 햄버거 ⓒ 사진 = 최진호 기자

  
여친의 인스타그램은 '축구공 햄버거'를 원해 - 상암 & 맛집

인스타그램과 '축구공 햄버거'는 여친을 상암으로 움직이게 만드는데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여친의 존재 이유는 인스타그램이다. 상암에서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고 못 배길 음식을 찾아냈다. 여자친구에게 맛은 중요한 게 아니다. 예쁜 음식, 특이한 음식, 기록할만한 음식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사진만 수십 장을 찍어대니 사진작가 저리 가라다. 경기 당일, 상암 정문에는 많은 푸드 트럭들이 나타난다.
 

경기 3시간 전부터 즐비해 있는 푸드트럭 ⓒ 사진 = 최진호 기자

 
이 많은 트럭이 한 달에 4번 정도 온다. 심지어 한 햄버거 푸드트럭은 2번만 오는 경우가 있다. 이 푸드트럭이 '축구공 햄버거'다. 축구공 햄버거? 여자친구가 인스타그램에 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름 아닌가. 햄버거가 축구공처럼 생겼다니. 거기다 맛까지 있다. 메뉴는 크게 프리미어리그 세트 A(6000원), 프리미어리그 세트 B(7000원)로 햄버거와 칠리소스가 덧뿌려진 나초는 먹지 않아도 보자마자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여기에 맥주까지 더해진다면 황홀경은 굳이 다른 데서 찾지 말길!

문제는 다음이다. 경기 중에 여친이 이탈하지 않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우연히 발견한 '축구장' 안의 '콘서트'

 

밴드가 공연중인 사진 ⓒ 픽사베이

  
 여친이 원하는 BTS가 올지도 몰라 - 상암 & 공연

경기 쉬는 시간, 급 피곤을 느낄 여친님을 사로잡을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경기장에 계속 있을 명분을 만들어야만 한다. 때마침 오늘 경기 중간에 BTS가 공연한다는 안내 멘트가..! 어쩐지 K리그 경기에 만원 관중이라니. 힐끗 여자친구를 보는데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다. BTS가 이 정도다. 경기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다행히 경기를 끝까지 보고 나갈 것 같다. 경기 중에는 소소 이벤트도 있다. 전광판에서 '키스타임'이라는 글자가 나오고 본인들이 화면에 비치면 주저 말고 딥 키스를 해야 한다. 조금 창피하더라도 뒤엔 상품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중간 이벤트 중 관객들이 환호성을 보내고 있다. ⓒ 사진 = 최진호 기자

 
경기 중 풍선을 열렬히 흔드는 관객에겐 해당 팀 시즌 입장권을 제공한다. 커플이 같이 흔들어댄다면 시즌 입장권 받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 이외에도 플래시 응원, 파도타기 응원 등 그녀가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수두룩하다.
 

외부에 마련된 이벤트 공간들 ⓒ 사진 = 최진호 기자

  
 손흥민은 경기장에만 있는 게 아니다 - 상암 & 게임

경기장 외부에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여친을 위한 체험활동들이 있다. 이는 상암의 매력도를 높일 것이다. 페이스페인팅은 커플들의 필수 코스다. 얼굴에 뭐 칠하는 거라면 사족을 못쓰는 여친에게 이게 딱이다. 그다음은 유니폼에 등번호, 이니셜 등 각종 마킹을 해보자. 본인 이름도 새길 수 있으니 서로의 이름을 새겨준다면 이보다 달달할 수 없다.

상암에 간다면 꼭 가봐야 할 풋볼팬타지움은 커플들이 여유를 가지고 얘기하기 좋다. 전시체험공간엔 손흥민 외 대표팀 입간판이 있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여친이 좋아하는 손흥민은 입간판이라도 매력이 넘친다. 또한 입간판을 지나 체험관에 들어가면 최신 축구장비를 만날 수 있다, 물론 여자친구에겐 360도 VR 체험만 소개해 주자 나머진 관심 없을게 뻔하다.
 

풋볼팬타지움 VR 체험관에서 체험중인 사람들 ⓒ 풋볼팬타지움

  
풋볼팬타지움 내에는 카페/팬숍도 있다. '기념품'이란 단어만큼 여자친구의 여행 욕을 불러일으키는 단어가 있을까? 커피를 마시며 기념품을 사면서 돌아다니자. 미니풋살장도 설치되어 있어 여자친구와 내기를 하면 정말 좋다. 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면 여자친구와 승부차기를 하고 져 주도록. 이제 K리그를 매주 여자친구와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기가 하품을 하고 있다. ⓒ 픽사베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여자친구 하품 경계령

여자친구가 경기 중 하품을 하게 되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 하품은 다음 주에 이곳에 안 올 거란 얘기의 다른 표현이다. 본격적으로 경기를 보는 될 텐데, 이때 남자들은 쉴 틈 없이 공중파 해설 위원처럼 입을 떠들어야 한다. 여자친구가 한 번이라도 하품을 하게 되면 모든 일이 틀어진다. 지금까지 여친을 유혹하기 위해 찾아낸 모든 것들이 의미가 없어진다.

하품을 한 번도 안 한다면 그녀는 결국 상암 경기장에 빠지게 될 것이다. K리그에도 월드컵처럼 사람들을 충분히 매혹할 강한 움직임과 흥미 요소들이 있다. 여친이 하품만 하지 않았다면 다음 주에 상암에 오는 건 시간문제다. 서포터스의 웅장한 응원소리에 여자친구가 빠지게 되는 상상을 하니 환희 웃음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늦은 시간이 되면 전체 관중이 본인들의 휴대폰의 플래시를 켜 응원하는데, 경기 막바지 펼쳐지는 별들은 은하계 한 가운데에 있는 것만 같다.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경기 막바지 관객들이 플래시를 켜 응원하고 있다 ⓒ 사진 = 최진호

  

여자친구가 말했다. "다음주는 상암에서 어떤팀 경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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