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갤러리

고태규의 유럽 자동차 집시여행

검토 완료

고태규(tgko)등록 2019.06.24 14:48
91일째: 6월 3일 (월) 맑은 날씨다
 
영국 그림의 보물 창고, 내셔널갤러리
 
"런던에 일주일이나 머무르면서 대영박물관에 코빼기도 안 비쳤다고 하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겠지?"
 
아내가 대영박물관에는 가보지도 않고 시티투어만 해서 무안했던지, 이렇게 한 마디 던졌다. 그러면서 오늘은 대영박물관에 함께 가겠다고 한다. 나는 그저께 3분의 2밖에 보지 못해서, 나머지를 오늘 마칠 작정이다. 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 다른 곳은 모두 생략해도 대영박물관은 마쳐야 한다. 루브르는 꼬박 이틀 걸렸는데, 여기는 그래도 좀 작아서 하루 반이면 대강은 볼 수 있다. 물론 자세히 보려면 일주일은 족히 걸리고. 정말 루브르와 대영박물관은 일주일은 봐야 제대로 볼 거 같다.
 
그래서 <루브르로의 여행>, <대영박물관으로의 여행>, <루브르의 여인들> 등 이런 책을 따로 쓰고 싶다. 그것도 영어로. 내가 서양 사람들한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서다. 첫째, 식민지 지배시대 때 약탈한 유물들을 당사국에게 하루라도 빨리 돌려주고, 둘째, 세계문명사(미술, 음악, 종교, 문화, 예술 등)를 서양 중심으로만 보지 말고, 셋째, 사람도 서양사람 중심으로만 보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어서 그렇다. 아직은 구상 단계일 뿐이다.
 
세계사의 주류로 등장한 지 2백년도(1840년 아편전쟁부터) 안 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려들면 곤란하다. 유럽문명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 중국문명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유럽의 유수 박물관에 가보면 그 사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로마문명을 유럽문명을 모태로 끌어들이고, 하늘처럼 떠받드는 것이다. 이집트 룩소르 신전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되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유네스코의 로고를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내는 불과 3시간 만에 박물관 관람을 모두 마치고, 쇼핑을 한다며 시내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박물관 앞에 있는 태국 식당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똥냠누들을 먹고 트라팔카광장에 있는 내셔널갤러리로 갔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갔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내셔널갤러리는 영국이 자랑하는 미술관이지만 영국 음식처럼 내가 좋아하는 작품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이 미술관의 체면을 살려주는 그림은 43번 실부터 46번 실에 전시되어 있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다. 그 밖에 렘브란트 <자화상>, 영화 <다빈치코드>에 등장하는 <암굴의 성모>, 터너의 풍경화,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와 화장> 등이 마음에 들었다. 잔 반 에이크의 <아놀피 초상>은 그림 아래 부분에 그려진 귀여운 강아지 때문에 좋아한다. 실제로 보니까 강아지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드는 것 같다. 그 놈을 보고 있으니까 우리 강아지 '파피'가 너무 너무 보고 싶다. 그 놈을 본지가 벌써 세 달이나 되었다. 엄마 아빠도 없이 누나와 혼자 사느라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그 놈을 두고 우리만 여행을 와서 너무 미안하고 안쓰럽다. 나도 조수미씨처럼 돈이 많아서 해외에 나갈 때마다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으면 좋겠다.
 
내셔널갤러리를 나와 트라팔카광장에서 아내를 다시 만났다. 피카딜리 근처에서 쇼핑을 했다고 한다. 광장에서는 터키 사람 수백 명이 모여 반정부 시위를 하고 있었다. 자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는 데모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스레 70-80년대 민주화운동을 하던 우리 생각이 나서 사진도 찍고 한참이나 구경했다. 근처 짝퉁 일식집(중국 사람이 하는 일식집)에서 저녁 식사만 하고 오늘은 일찍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일 귀국하기 때문에 짐도 다시 싸고 해야 하니까.
 
어느덧 90일이 다 지나갔다. 올 초에 나 혼자 돌아다닌 동유럽까지 합치면 120여일이다. 90일만 더 유럽에서 여행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마누라가 펄펄 뛰겠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고. 그게 결혼생활이고 인생이다. 나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없는 것이. 이제 내 여행은 일본 나라를 출발하여 중국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이란 터키 그리스 이태리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까지 실크로드를 횡단하는 실크로드 문명기행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실크로드 여행과 유럽 여행의 연재 순서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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