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의 멸망

예고된 미래를 바꿀, 협력의 진화가 필요하다.

검토 완료

김민석(cannabis82)등록 2019.06.23 16:17
한 동물권 운동가의 영상을 보았다. "거대 서사가 깨진 사회는 어디까지 파편화 될 수 있는가." 생각에 잠긴다. 포스트 모던의 '이론'은 깨졌지만 자본으로 무장한 냉정한 '현실'은 여전히 모든 것을 쪼개고 있다.
 
진실? 신념? 정의라는 것도 파편화 되었다. '모두'에게 존재하지만, '모두의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이런 '각자도생'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의 인간관에 힘을 실어주며, '약육강식'이라는 파멸로 현실을 이끌고 있다.
 
돈을 벌어, 저택을 사겠다는 기생충의 '계획적'인 '기우'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은 결국 '노력'과 '자유'라는 수석에 취해 자신의 운명을 바로 보지 못하고, 서로의 치부가 담긴 핸드폰만 뺏으려는 '아귀다툼'으로 귀결되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기초로 로버트 액설로드가 도출한 '팃포텟' 전략은 '협력'이야말로 인류 최강의 기술이라 주장한다. '협력'을 기초로, '배신'에 대한 '응징' 및 뒤따르는 '관용'이야말로 인류가 여기까지 온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액설로드는 '협력'은 '도덕'이 아니며 '적대적 관계'에서조차 발생하는 '강건'하고 '안정'적인 최고의 전략이라 논증했다. 이는 '사피엔스'가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 '협력'이었다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자본'과 '권력'이 결합한 '21세기 과두체제'는 끊임없이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을 쪼개고 있다. 이는 '팃포텟'의 전제 조건인 '사회적 관계의 지속성'을 파괴한다. '혐오'와 '갈등'은 협력의 '팃포텟'에 대항하는 과두체제의 필승 전략이다.
 
'협력'의 전제인 '관계의 지속성'은 '거대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 거대서사를 '뒷담화'라 별칭했다. 각자도생의 개인들에게 '관계의 지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공통의 이야기, 뒷담화, 추상적인 '거대 서사'다.
 
'21세기 과두체제'는 '인종', '성별', '지역', '나이'로 혐오와 갈등을 촉발시키는 것과 동시에 포스트 모던적 이데올로기를 끌어들여 '거대 서사'마저 짓뭉개고 있다. 스스로 정의의 대변자라 여기는 이들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파편화된 정의는 진짜 정의가 아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포스트 모던의 명제는 과두체제의 견고함만 불러왔다. 나는 영남의 자유한국당과 호남의 민주당의 차이를 알지 못하며, 5.18 모독 김순례 비판에 재갈을 물리는 페미니즘과 세월호 유족 앞 폭식 투쟁 무리들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유발 하라리는 지구의 새로운 지배자 '호모데우스'의 출현을 예고했다. 이는 '21세기 과두체체'를 구성한 자들이 '생명과학'을 무기로 진화한 모습일 것이다. 호모데우스는 과거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에게 그랬듯, 현재의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다.
 
어쩌면 '예비 호모데우스'들의 '평범한 사피엔스'들에 대한 학살은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사피엔스의 무기, '협력'의 근간을 이루는 '거대 서사'와 '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파괴가 그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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