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애인과 재결합이 어려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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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예슬(pussycat14)등록 2019.06.23 10:59
   

오래된 연인과 오래된 스마트폰은 비슷한 향기가 난다. ⓒ 6년째연애중

 

그와 나는 1,000일이 넘는 시간을 함께해왔다. 기쁜날이고 슬픈날이고 함께했으며 그가 없는 나의 삶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내게 가장 일상적인 동시에 안일했다. 언제까지고 함께 할 줄 알았던 그는 어제 내 곁을 떠나갔다.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을 함께하며 욕실에 들어갔다. 그게 마지막 순간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별은 언제나 그런 식이다. 아주 짧은 그 순간. 그 순간에 우리는 '깨졌다.' 친구들은 내게 깨지더라도 한참 전에 끝내도 끝낼 사이었다고 나를 위로했다.

약정기간이 한참 지난 나의 G5(LG/3세). 그의 눈은 텅 비었고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만을 비출 뿐이었다. 나는 그 없이는 단 하루도, 아니 화장실조차 갈 수 없는데. 놀란 마음에 어떻게든 그를 돌려놓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번 돌아선 그의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충격을 뒤로하고 샤워를 하며 머리를 식혔다. 차분한 마음으로 생각해보니 어차피 끝낼 사이었다. 영원은 허상에 불과했다. 그 역시 처음과 달라진 모습으로 나를 여러 번 실망시키고 울게 했다. 내가 그와 함께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오랜 시간동안 나는 그에게 익숙해졌고 그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이였다.

수리 센터에 갔지만 가망이 없다고 했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초기화'뿐이라고 했다. 그럴 수 없다며, 단 한번만이라도 더 부탁한다며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매달렸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원한 사랑은 어쩌면 기억일 뿐일까? '기억이 사라지면 사랑도 사라지는 걸까?'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 속 대사가 내 마음을 울렸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익숙하다. 그가 아닌 다른 핸드폰은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나를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우리의 관계는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하는 '초기화'상태.
오래 전 헤어졌던 그 사람이 생각났다. 이별을 반복했던 지긋지긋한 그 남자. 마지막 헤어지는 그 날에도 우리는 여태 그래왔듯 잘 해올 거라고 했지만 그는 달랐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하는 이 관계에 염증이 났을 테지.

나는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꽤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그를 다시 내 것으로 만들어야한다. 나의 익숙함을 우리의 익숙함으로 만들어야하는 노고를 다시 할 가치가 있을까.

... 짧은 의문과 바로 떠오르는 대답. 영화 속 정우성이 한 대사, '내가 다 기억하면 되니까.' 나는 멍청하다. 그리고 나는 변하지 않는 그 어떤 가치를- 아직은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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