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말뫼 시의 상징 '터닝 토르소'. 1980~1990년대 조선업 고용위기를 잘 넘기고 혁신을 이룬 데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황세원
알다시피 '맞춤형 지원'이란 한국에 없기는커녕 너무 많아서 하나도 새롭지 않은 형태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중앙부터 기초 단위까지, 공공부터 민간까지, '맞춤형 지원'을 한다는 기관들을 숱하게 찾을 수 있다. 이 정도 숫자라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내가 어려움에 처하면 어떤 형태 건 그에 맞는 지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안심할 수 있어야 맞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그런 제도를 평소에 의식하고 사는 사람도 거의 없고, 실직 등의 상황에서 지원 제도를 알아봤는데 '당신은 지원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거절당했다는 경우가 더 흔하다.
리팔루 전 시장과 대화 중에 "조선소 실직자들에게 했던 맞춤형 지원을 좀 더 설명해 달라"고 하자 그는 "말 그대로, 공무원 또는 전문가가 실직자 한 명 한 명을 만나서 무엇이 어려운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들어본 뒤에 그 문제를 해결해 줄 방법을 최대한 찾아주는 것이죠"라고 했다.
나중에 기록을 찾아보니, 조선소가 폐쇄된 1987년보다 1년 앞선 1986년, 스웨덴 고용국이 코쿰스 조선소 안에 본부를 차리고 21명의 전문가를 상주시키면서 이직 및 교육훈련 지원을 했다고 돼 있다. '코쿰스 액션 패키지'라고 불린 이 프로그램을 운영한 1년 후에는 대상자 2300여 명 중에서 570여 명은 이직에 성공했으며 40명은 창업을 했고 25명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는 등 결과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조선소 폐쇄, 스웨덴 말뫼가 고용위기를 대하는 방식
리팔루 전 시장 인터뷰 다음날, 말뫼 시가 속한 스코네(Skåne) 주가 운영하는 고용 서비스(Arbetsförmedlingen) 기관을 찾아갔다. 스웨덴에서는 주 정부가 실업자 지원, 이직 및 훈련 지원 등 고용서비스를 담당하고, 시 정부는 생활안정 지원에 주력하는 식으로 광역·기초 간 역할이 구분돼 있었다.
이날 만난 직원은 가장 최근 사례를 들어서 실직자 지원 제도를 설명했다. 1년여 전, 직원 450명 규모의 식품제조업체가 문을 닫은 사례였다. 한 마을에 이웃해 살던 중장년들이 대거 실직한 만큼 중대 사안이라 판단한 이 기관은 공장 안에 대책본부를 차리고 5~6명의 전문가들을 상주시켰다.
이들이 실직자들을 상대로 일일이 인터뷰 하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기관은 인근의 다른 일자리들을 수소문했고, 이들이 돌봄 등 다른 분야로 전직할 가능성, 그에 필요한 교육 훈련 프로그램도 알아봤다. 그렇게 1년여의 시간이 지난 후, 도움이 필요한 모두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했다고 판단한 뒤에 본부는 철수했다.
물론 우리나라와는 다른 기반이 있어서 가능한 일들도 있다. 실업수당을 충분히 받을 수 있고 모든 학비가 무료인 스웨덴의 환경, 고용에 있어서 연령을 잘 따지지 않는 문화 등이다.
그래도 고령자나 이민자의 이직은 어렵지 않았을까 싶어서 물어보니 담당자는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해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구인 기업들이 정부 기관에 의뢰해서 구직자를 소개받을 때는 연령이나 성별, 출신국가를 따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만일 소개를 받아놓고 그런 차별을 했다가는 다시는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분명 수천억 예산은 갔는데, 받은 사람이 없다?
이런 지원이 우리나라에서는 왜 불가능할까? 별다른 특별한 능력과 노하우가 필요해 보이는 일들도 아니다. 의지와 성의만 있다면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수준 같았다. 그렇지만 실제로 이런 식의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17년 현대중공업 군산 조선소가, 2018년 한국GM 자동차 군산 공장이 문을 닫은 군산의 고용위기 상황은 한동안 숱하게 언론에 보도됐고, 우리나라 최초로 고용위기지역,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지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해 정부는 추경을 통과시켜서 1조9000억 원을 고용위기 대응에 사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고용종합지원센터를 만들어, 실직자를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
이 정도면 당연히 군산에서도 말뫼와 유사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지고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지원센터가 실직자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원센터는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민간'이었고, 이들은 실직자에 대한 개인정보 접근권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애초에 정부가 '민간위탁' 방식을 택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실직자가 찾아와도 해줄 게 별로 없는 것도 큰 문제다. 이직 및 훈련 지원 등은 이미 다른 기관을 통해서 지원되고 있기 때문에 해줄 수 없었다. 결국 센터가 독자적으로 수행 가능한 것은 심리상담 정도였다. 그런데 왜 '종합지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실제로 GM 군산 공장이 문을 닫은지 3개월쯤 지난 시점인 지난해 8월 실직자 4명을 인터뷰 했을 때 이들은 하나같이 "정부에서 어떤 지원도 받지 못 했고 어떤 지원제도가 있는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최근 다른 실직자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확인했는데, 역시 특별한 정부 지원을 받은 바는 없다고 했다.
실직 문제 해결이 아닌, '예산 쓰기'가 중요한 이상한 시스템
정부는 분명히 특별 편성 예산을 내려보냈고, 많은 일들이 수행됐는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돈이 빼돌려졌다거나 담당자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한다는 식의 문제제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 행정 체계를 통해서 적법하고 정확하게 일처리가 되고 있을 것이 분명한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는 문제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실제 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행정 시스템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예산이 투입되고 프로젝트가 실행된다면 당연히 그 성과는 문제가 얼마나 해결됐는지에 따라 평가돼야 한다. 대량실업 상황이라면 말뫼에서처럼 실직자 중에서 몇 명이 이직을 했는지, 몇 명이 훈련을 받았고 다른 길을 찾았는지 등이 평가 지표 중 기본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당초 배정된 예산이 계획된 항목과 절차에 맞게 쓰여졌다면 그것이 곧 성과다. 실무 담당자는 예산 집행할 중간 기관을 선정해서 계약 체결하고, 당초 예산대로 운영되도록 관리한 뒤 이를 잘 보고하면 '사업 잘 했다'고 평가를 받는 것이다.
물론 보고서 어딘가에 '연인원 몇 명 이용, 언론보도 몇 건' 식의 성과가 표기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실제와 다르거나, 문제 해결과는 동떨어진 성과였는지에 대한 검증은 약하다. 지역 고용위기가 얼마나 완화됐는지, 실직자들과 그 가족들이 당면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공무원, 실무자들이 굳이 실직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최대한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할까? 다시 말하지만 이 사람들이 임무를 해태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다. 아마도 다들 '너무 처리할 일이 많다'고 할 만큼 바빴을 것이다. 실제 문제 해결과 상관없는 방식으로 일했을 뿐이다.
부처간 칸막이... 협력보단 하던 일 하는 것이 승진에 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