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우리가 건축주.

유현준 교수님의 <도시란 무엇인가> 특강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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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호(bookjino)등록 2019.06.14 09:28
5월 말 <2019년 국토교통기술대전>에 참석하면서 <유현준 교수님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주제는 <우리가 만들고 만날 미래도시>였다. 참 재밌게 강의를 잘하신다. 알고 보니 베스트셀러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저자였다. 책은 알고 있었는데, 작가가 유현준 건축가님이신 줄은 몰랐다. 몇몇 분들이 강의 후 저자 사인받으시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알쓸신잡에 출현하셨다는데, 내가 원체 TV를 안 보니, 누군지 잘 몰랐다.
 

유현준, '도시란 무엇인가', 2019 국토교통기술대전 ⓒ 이진호

 
​특강은 과거의 건축부터 현대와 미래 건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재치있는 입담으로 풀어나갔다.

내가 세 아이의 아빠라 그랬던 걸까? 그중에서도 아이들 학교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교수님은 우리나라가 현재 복합적 위기를 겪고 있으며 그 위기의 원인으로 '다양성 말살'을 주장한다. 또한, 사람들의 다양성이 말살되고 획일화되면서 '전체주의'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창의성, 다양성 말살의 주범으로 교육부와 LH(한국토지주택공사)를 지목한다. 두 기관에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얼굴은 얌전하게 생기시고 말씀도 차분하게 하시는데, 내용은 좀 거치시다.

왜 뜬금없이 교육부와 LH를 지목했을까? 바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건물 형태 때문이다. 전화, 자동차, 비행기는 100년 전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학교는 어떤가? 우리 아버지가 다닐 때나, 내가 다닐 때나, 내 아이가 다닐 때나 다 똑같은 건물 모습이다.

대부분 학교는 일자형 또는 'ㄴ'형의 3~4층 건물이 운동장을 둘러싸고 있다. 이런 건물은 학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놀랍도록 똑같은 건물 형태를 가진 곳이 또 있다. 바로 교도소다. 학교와 교도소를 비교한 발표자료를 처음 봤을 때 둘 다 똑같은 학교인 줄 알았다. 사진 위에 교도소라는 타이틀이 표시되기 전까지 말이다. 남학생들이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서 공놀이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충격적이었다.
 

너무나도 비슷한 형태의 두 건물. ⓒ 세바시 1004회

 

아이들 학교는 10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판상형'(널빤지꼴형)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판상형' 아파트 → '판상형' 학교' → '판상형' 학원 → 다시 '판상형' 아파트를 전전긍긍 하게 되는 것이다. 유 교수는 이런 환경이 아이들의 다양성을 말살할 수 있는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획일화된 건축 공간에서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음식(급식)을 먹는 상황이다 보니, 아이들이 창의적인 활동이나 생각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교도소랑 똑같은 모습의 학교니 말이다.

그럼 왜 이렇게 된 것일까? 그 이유로 유 교수는 사람들이 '평등한 사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평등한 사회'는 '획일화'를 추구한다. 그리고 '획일화'는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정량화한다. 즉, 나만의 가치가 상실되는 것이다. 결국 나만의 가치가 상실되니 자존감도 상실된다. 최근에 자존감 관련된 책들이 판매 부수가 높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듣다 보니 참 심각한 문제다. 얼마 전 읽었던 홍성국 작가의 <수축 사회>의 특징 중 이기주의가 불현듯 떠오른다. 책에서는 우리 사회가 수축 사회로 접어들면서 세대 간 갈등과 이기주의가 심해진다고 지적했었다. 유 교수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아이들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창의력을 길러주려면 학교는 변해야 한다. 어떻게 변해야 할까? 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해 줘야 한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빈 교실이 늘어나고 있는데, 빈 교실을 테라스로 만들어 아이들이 쉬는 시간 10분 동안만이라도 변화하는 자연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빈 교실을 테라스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옥상이라도 개방해서 하늘이라도 보게 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옥상에서 담배 피우는 것이 문제면 CCTV를 설치하면 되고, 안전사고가 걱정되면 유리 담을 높게 설치하면 된다. 안전문제나 건전한 학습환경 조성 같은 핑계를 대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교실들도 한 건물에 다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 분리해서 작은 규모와 다양한 모습으로 건축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아래 그림처럼 고급펜션이 동별로 분리된 것처럼 말이다. 1학년은 세모 건물, 2학년은 네모 건물, 3학년은 원형 건물. 매 학년마다 다른 건물에서 수업하는 것이다. 학교가 저렇게 만들어진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내게 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교도소 같은 학교 건물을 이렇게 바꾸면 얼마나 아이들이 좋아할까요? ⓒ 세바시 1004회

 

그런데 이런 멋진 모습의 학교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유 교수가 겪은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 아이들이 자유분방함을 두려워하는 학부모와 선생님들 그리고 교육부 시설담당자들까지 다양한 현실의 벽에 부딪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학교 건물의 모습만 충격적인 것은 아니다. 학교 건축비도 놀랄 노자다. 그동안 아이들 학교를 짓는데 막대한 예산을 퍼붓는 줄 알았다. 하지만 2016년 조달청 자료에 따르면 아이들 학교의 단위면적 당 공사비는 시청, 도청 청사는 물론이고 교도소보다도 적다. 심지어 비행기 주차장인 격납고 보다도 적다. 아이들보다 비행기가 더 귀한 몸이신가 보다. 뭐라 할 말이 없다. 역시 모르는 게 약이고, 무식한 게 속 편한 삶이었다.
 

아이들 학교 공사비는 턱없이 저렴하다? ⓒ 조달청

 

학교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지어진다. 유 교수님 말대로 우리가 건축주다.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격납고 공사비보다도 적은 비용으로 학교를 건축하면서 아이들이 우리 미래의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유 교수는 평당 공사비를 성북동 고급 주택들처럼 평당 1,500만 원으로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여기저기서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아이들이 학교 다니는 12년간 가장 좋은 집에서 살게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정말 멋진 아이디어다.

쉽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어쩌면 꿈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씩 관심을 가지면 바뀔 수 있다.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들이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하며, 교수님의 주옥같은 말씀으로 기사를 마무리해본다.
 
지식은 책에서, 지혜는 자연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모든 지식을 선생님들이 책으로 다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60~70%만 가르치고 나머지는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과 대화하고
자연과 생활하면서 알아가면 됩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돌려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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