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 - 세인트 식스투스 수도원

고태규의 유럽 자동차 집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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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태규(tgko)등록 2019.06.09 14:13
86일째: 5월 29일 (수) 흐리고 비에 강풍이 몰아친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트라피스트 맥주 - 벨기에 세인트 식스투스 수도원
 
오늘은 벨기에 부르헤와 웨스트블레테렌 그리고 프랑스 깔레를 거처 영국 도버까지 가야 한다. 갈 길이 멀다. 만일 영국으로 건너가는 배편이 여의치 않으면 깔레에서 자야 한다. 차를 깔레에서 반납할 것인지, 아니면 영국으로 가지고 가서 런던에서 반납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 또 세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맥주를 생산하는 세인트 식스투스(The Abbey of Saint Sixtus) 수도원도 찾아가야 한다. 다행히 코스가 모두 같은 방향에 있어서 시간 낭비는 없다.

먼저 서쪽으로 120킬로쯤 떨어진 브뤼헤로 갔다. 이 도시는 '서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운하의 도시로 유명하다. 암스테르담만큼은 아니어도 도시 곳곳에 운하가 많다. 운하에서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떠다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내리는 비 때문에 우산을 쓰고 배를 타고 있어 사람은 안보이고 형형색색의 우산만 보인다. 비오는 날 거리에서 수많은 우산만 왔다갔다 하는 영화 <쉘부르의 우산>이 연상된다. (우리는 몽셀미셸 가는 길에 있는 쉘부르에는 들르지 못했다.)
 
마르크트광장과 종루를 둘러보고 성혈교회를 방문했다. 이 교회는 1146년 제2차 십자군원정 때 티에라 달사스가 예루살렘의 대주교에게서 받았다는 예수의 피를 크리스탈 용기에 담아 전시하면서 유명해졌다. 불교에서도 부처님 사리를 보존하고 있는 절이 수도 없이 많듯이 유럽의 교회도 예수님이나 성인들의 신체나 피를 보존하고 있는 교회가 셀 수도 없이 많다.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어차피 신앙은 믿음이 중요한 것이니까.
 
세계 최고의 맥주를 맛보기 위해 웨스트블레테렌에 있는 세인트 식스투스 수도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찾아가는 길이 대강 난감이다. 네비가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는 것이다. 우선 깔레 가는 길목에 있는 붸르네(Veurne)로 가서 거기서 수도원이 있는 웨스트블레테렌(West-Oostvleteren)으로 가기로 했다. 일단 거기까지 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한 것이다. 웨스트블레테렌은 붸르네와 레퍼(Leper) 중간에 있는 아주 작은 국경 마을이다. 마을 광장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친절하게 뭐라고 뭐라고 알려준다. 그러나 너무 시골길이라 그 정보 가지고는 찾아갈 방법이 없다. 중간에 묻고 묻고를 반복하고 이정표를 보면서 마침내 수도원을 찾아냈다. 이정표에는 'Abbey of St. Sixtus'가 아니라 'Abdy of St. Sixtus'로 되어 있어서 조금 헷갈렸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정확한 수도원 주소는 Donkerstraat 12, B-8640 Westvleteren이다. 우리는 이 주소를 수도원을 방문한 이후에야 알아냈다.
 
마침 수도원 앞에서 예약한 맥주를 받아가는 30대 남자 윌리엄(빌리)을 만났다. 차 트렁크에는 두 박스의 트라페스트 맥주가 실려 있었다. 사진도 흔쾌히 허락해준다. 이 맥주는 차 번호판 1개당 2달에 2박스(1박스에 200밀리그램 24병)만 예약 판매한다. 그러니까 차 한 대 당 2달에 2박스만 구매가 가능한 것이다. 예약은 전화로만 가능하다. 그리고 전화도 역시 한 대당 2개월에 한 번만 예약을 할 수 있다. 나도 사전 예약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가 언제 여기에 도착할지를 몰라 예약을 할 수가 없었다. 수도원 뒤쪽으로 돌아갔더니, 창고 같은 건물에 맥주를 받아가기 위해 차 대여섯 대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수도원 직원이 차 번호판을 확인하고, 수북이 쌓인 맥주 상자 더미에서 차 1대당 2상자씩 실어주고 있었다. (자세한 예약 방법은 www.sintsixtus.be, claustrum@sintsixtus.be를 참조할 것.)

우리는 이 트라피스트(Trapist) 맥주를 시음하기 위해서 수도원 맞은편에 있는 팝 레스토랑 인 데브 레데(In De Brede)로 들어갔다. 실내는 꽤나 넓고 깔끔했다. 서빙 데스크도 현대식으로 단순하면서도 깨끗하다. 천장에는 Claustrum이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Claustrum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까 중세수도원의 전형적인 정원으로 예배실을 비롯한 교단의 공공건물에 의해 둘러싸인 네모난 공지를 말한다. 폐쇄형 정원(cloister garden)의 라틴어 원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수도원 맥주 전시홀 쯤 되겠다. 이렇게 외진 마을에 있는 작은 팝에 손님들이 엄청 많았다. 대강 잡아 2백여명? 어떤 장애인 단체는 대형 장애인 전용버스를 타고 왔다. 이 맥주가 그 정도로 유명한가 보다.

우리는 맥주를 박스로 사지 못하는 대신 이 팝에서 따로 판매하는 6병들이 한 박스를 사기로 했다. 그런데 월요일에만 판단다. 나는 여기서 예약을 안 한 사람들에게 6병씩 판다는 것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월요일에만 판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오늘은 수요일. 이렇게 허망할 수가.... 아내가 이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웨이터에게 한 병만 팔라고 사정사정 했는데도 안 된다고 한다.
 
할 수 없지, 다 마시고 가는 수밖에. 메뉴판을 보니 여기 맥주는 세 가지가 있었다. 웨스트블레테렌 블론드 5(5.8도) - 1병 3.7유로(24병 들이 한 박스에는 30유로), 웨스트블레테렌 브루인 8(8.0도) - 1병 4.3유로(24병 들이 한 박스에는 35유로), 웨스트블레테렌 브루인 12(10.2도) - 1병 4.9유로(24병 들이 한 박스에는 40유로). 병이 200밀리리터 정도 되는 작은 사이즈니까, 가격은 꽤나 비싼 편이다. 브루인 12가 바로 2005년과 2012년에 세계 최고의 맥주로 뽑힌 맥주다. 나는 브루인 12와 8, 그리고 블론드 5 순서로 마셨다.
 
선입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12는 정말 맛이 좋았다. 색깔은 기네스 흑맥주 비슷하게 검은 색에 가까운데, 희미하게 느껴지는 은근한 향이 좋았다. 술이 세련되게 잘 숙성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는 10.2도인데도 마시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적당히 쌉쌀한 맛에 잘 숙성된 향기, 그리고 부드러운 목 넘김. 하, 좋다! 시간만 있으면 여기 앉아서 밤 새 맥주를 마시고 싶다. 세 잔을 연거푸 마시고 나는 취해버렸다. 어차피 점심 후에는 아내가 운전할 거니까, 나는 차에서 자버리면 된다. 이 맥주는 벨기에 맥주가 주로 그렇듯이 전용잔이 따로 있다. 와인 잔처럼 생긴 전용 잔에 딱 한 병이 들어간다. 안주는 전혀 없고, 점심 메뉴도 샌드위치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팝을 나오면서 출입문 입구에 있는 선물가게에서 전용잔 4개가 들어 있는 맥주컵 1박스를 선물용으로 샀다. 이 맥주를 꼭 사오라고 부탁한 친구에게 술은 못주어도 잔은 하나라도 선물로 주기 위해서다. 출입문 밖에서 할아버지 싸이클러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한 열 명쯤 되는 자전거를 타는 할아버지들이 운동 중간에 맥주 한 잔 마시러 이 팝에 들른 것이다. 나이 들어서도 저렇게 운동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중에 수도원 홈피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예약 판매 조건과 함께 팝 오픈 시간도 엄청 까다로웠다. 우리는 아예 이 팝에 들어가지도 못할 뻔했다. 우리가 간 날이 5월 29일이고 수요일이었으니까. 하루만 늦었어도 못 들어갈 뻔한 것이다. 그렇다고 토요일까지 기다릴 수도 없고. 홈피에 나와 있는 오픈 시간과 휴일은 다음과 같다.
 
팝 오픈 시간: 매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휴일: 매주 금요일, 매주 목요일(9월 1일부터 7월 1일까지), 1월 전반기, 9월 후반기,
        2013년 1월 16일(월)과 9월 30일(월)
 
눈을 떠보니 깔레 항구다. 깔레는 프랑스 북부에 있는 항구도시로 영국 도버로 건너가기 위해 들르는 곳이다. 아내가 빗속에 두 시간 넘게 운전하여 깔레에 도착한 것이다. 나는 차에 타자마자 곯아 떨어져 코를 골면서 잤다고 한다.
 
"이런 빗속에 생판 모르는 외국의 시골길에서 마누라에게 운전대를 맡기는 남자가 사람이냐?"
"당신의 실력을 믿으니까 그렇지."
"실력 좋아하시네, 대낮부터 맥주를 그렇게 퍼마셔대더니.... 아이고 저런 화상을 남편이라고 데리고 살고 있으니, 내 팔자도 참 한심하다."
"세 잔 밖에 안마셨는데, 맥주가 독해서 그렇지."
"대낮에 세 잔이 조금이냐?"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으면 됐지, 내가 마누라 하나는 잘 얻었지?"
"잔소리 그만하고 호텔이나 찾아봐, 이 웬수야."
 
아내가 호텔을 찾으러 시내로 가더니, 다시 항구로 되돌아왔다. 차를 여기 부두 주차장에 두고, 영국에 몸만 가서 여행을 하고 되돌아오자는 것이었다. 런던에서 귀국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그건 말이 안 된다고 내가 반대했다. 항구 터미널 앞에서 영국에 차를 가지고 가느냐 마느냐 문제로 거의 1시간 동안이나 싸웠다. 아내는 원래 계약대로 깔레에서 차를 반납하고 영국으로 건너가자는 것이었고, 나는 이 많은 짐 때문에 런던까지 차를 가지고 가자는 주장이었다.
 
특히 아내는 운전 방향이 지금까지의 국가들(오른쪽 주행)과는 반대쪽인 영국(왼쪽 주행)에서 어떻게 운전을 하려고 하느냐고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나는 영국과 같은 호주에서 십년이나 운전을 했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박박 우겼다. 마침 도버로 넘어가는 배가 있어서 결국 차를 가지고 가기로 아내가 항복했다. 항구에 있는 자동차 에이전시에게는 런던에서 6월 4일에 차를 반납하겠다고 말하고, 본사에도 그렇게 전화로 통보했다. 아직도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저녁 8시 반에 깔레항을 출항해서 9시 반에 도버에 도착했다. 한 시간 밖에 안 걸린다. 출항 하기 전에 입국 심사에서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까다로운 심사를 받았다. 왜 영국에 가느냐, 어디 어디 가느냐, 숙소는 어디냐, 일행은 몇 명이냐, 한국에서 직업은 무엇이냐 등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마도 1주일 전에 런던에서 일어난 테러사건 때문에 입국심사가 까다로워진 거 같다. 1주일 전에 영국 군인 한 명이 무슬림 청년들에 의해 도끼와 칼로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났었다. 우리는 BBC와 CNN을 통해 이미 그 사건을 알고 있었고,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질 것 같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호텔이 도버항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왼쪽 주행의 어려움은 없었다. 단지 어두워서 길과 표지판이 잘 안보일 뿐이었다. 도버항에서 1킬로쯤 떨어져 있는 Premier Inn에 투숙했다. 89파운드, 아침 별도, 주차 포함, 인터넷 30분 무료, 객실 넓고 시설 좋음, 접근성 매우 양호.
 
*주행 및 숙박 내역
 
주행 경로: A10-A18-지방도-지방도-A16
주행코스: 브뤼셀-브뤼헤 -웨스트블레테렌-깔레-도버
주행거리: 300km
주행시간: 6시간
도로유형: 고속/무료, 국도/무료
숙박(유로): Premier Inn(89)
주차장(유로): 지상/무료
아침식사: 별도
인터넷: 가능/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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