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과 운현궁을 가로 막고 서 있는 현대사옥
황정수
1983년 10월 우여곡절 끝에 휘문고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건물 두 동이 완성된다. 공원이 될 것이라 기대한 곳에 뜬금없는 거대한 대기업 사옥이 들어서자 시민들 사이에는 정권과 경제계가 서로 담합을 하여 이루어진 일이라 의심하며 달갑지 않게 생각하였다. 사람들이 현대사옥을 정경 유착의 결과물로 이야기 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지정학적 위치에 따른 건축의 허가가 정당했는지의 문제이다. 지금 존재하는 현대사옥 건물은 정상적으로 이곳에 들어설 수 있었을 지 누구나 의심할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큰 규모이다. 지금도 너무 커 위압감을 느낄 정도인데 1983년에는 어떤 정도였을지 상상이 될 것이다.
이곳은 고궁인 창덕궁이 바로 옆에 있어 건축법 상 이렇게 높고 큰 규모의 건물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다. 실제 주변에 이런 규모의 건물이 들어서지도 않았고, 주변 다른 곳의 경우 실제 많은 고도의 제한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높은 규모의 건물이 어떻게 허가가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정경유착이 의심받은 가장 큰 이유이다.
둘째, 이 장소는 오랜 역사를 가진 휘문고 자리일 뿐 아니라 조선시대 천문대인 관상감이 있었던 역사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공사를 시작하며 지역에 대한 충분한 미술사적 조사와 보존에 대한 고민을 했을 텐데, 이러한 문화재 보존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알 수 없다. 분명 이곳 지표를 조사하며 발굴했을 때 많은 건축에 장애가 되는 유물들이 나왔을 텐데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험했던 군사정권 시절을 의심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건축의 결과물이 주변과의 조화가 잘 되는가의 문제이다. 주변 환경과 규모와 디자인 면에서 어울리는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현대그룹은 휘문고의 오래된 건물들을 고민도 없이 모두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엄청난 규모의 단순한 사각 형태의 건물 두 동을 세웠다. 미학적 고려는 전혀 없이 단순하게 사각으로 반듯하게 공간의 효율성만을 고려하여 지은 사무실용 건물이다.
문제는 이 거대한 건물이 들어서자 이 지역이 모두 초라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임금이 살았던 창덕궁은 왜소한 공간이 되어버렸고, 바로 옆에 있는 건축계의 거장 김수근의 '공간사옥'은 현대 건물 숙직실 같이 되어버렸다. 관상감 자리임을 알려 주는 관천대는 어느 대갓집 굴뚝을 뜯어다 놓은 장식물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무지막지한 건물이 문화 유적이 많은 문화보존 지역에 어떻게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인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필자는 이제라도 이 무지막지한 건물이 지금이라도 다른 어느 곳으로 이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일부 미술계 인사들이 좋아하는 풍수지리 관점이 아니더라도, 이곳은 이런 큰 규모의 건물이 들어설 자리가 아니다.
바로 옆에 창덕궁이 있고, 건너편에 운현궁이 있는 데다 북촌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조선시대 정신을 지탱하고 있는 북촌 지역을 짓누르고 있는 형상이다. 이런 건물이 존재하는 한 창덕궁이나 운현궁이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기 어렵고 북촌이 전통 문화 보존 지역으로 유지되기는 더욱 요원하다. 그런 면에서 현대사옥은 문화적으로는 괴물과 같다.
필자는 감히 말한다. 조선총독부의 건물이 경복궁 앞에 자리 잡아 조선의 좋은 기운을 막아버린 것이나 현대사옥이 창덕궁 옆에 자리 잡아 창덕궁의 기운을 죽인 것이나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일제하의 조선총독부 건물 배후에 식민지 아래 민족 수탈의 주체인 제국주의가 있다 한다면, 이 현대사옥은 유신시대에서 이어지는 독재 정권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이제라도 현대사옥을 북촌에서 멀리 떨어진 제격에 맞는 곳으로 이전하라. 이런 괴물 같은 건물이 대한민국의 전통이 숨 쉬는 곳에 존재해서는 국가의 위엄을 세울 수 없다. 이 또한 지난날의 비극적인 적폐이고 슬픈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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