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압의 역사 노동권 보장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서의 노동권. 그 기나긴 국가 탄압의 시간

검토 완료

박민경(jude0922)등록 2019.05.01 11:25

1970년 전태일은 대한민국 법에 노동이 의무만이 아니라 권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헌법에 개별법령에 시퍼렇게 살아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국가는 보장하라고 목숨과 함께 외쳤다.
1979년 무더운 8월의 여름. YH무역 노동자들은 부당한 노동환경에 항의하고, 생존권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강제연행된다. 연행과정에서 스물을 갓 넘긴 무방비의 여성 노동자를 경찰은 때려죽인다.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따 이름 지은 YH무역의 사장은 커피 한잔 값인 220원을 일당으로 제공했다.
1980년 노동절을 열흘 앞둔 강원도 사북, 육천명이 넘는 동원탄좌의 광부들과 가족들은 대한민국 최고이자 최대의 탄광에서의 열악한 노동자로서의 삶을 거부하며, 노동자로서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를 요구했다. 국가는 계엄령까지 검토하며, 탄압했다. 주도한 이들에게는 경찰의 가혹행위와 고문이 가해졌다. 국가는 광부난동사건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기록에 새겨 넣었다.
2009년 평택의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발하며, 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다. 노동자들은 삶을 영위했던 일터에서 밖으로 나올수도 일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저항한다. 대화의 진전은 막혀있고, 폭력행위 노조원 1명이 구속되자 경찰이 등장한다. 법원도 힘을 보탠다. 인간의 생존에 가장 필수요소인 물과 음식도 반입금지된다. 물과 가스의 공급이 중단되었다. 몇 차례의 강제진압을 거쳐 노동자들은 무너졌다. 끝은 아니었다. 수많은 소송이 이어지고, 이에 노동자들과 가족의 목숨이 끊어졌다. 살아남은 이들도 온전할 수 없는 진을 빼는 탄압이었다.
 
국가가 노동을 권리로 보장하겠다는 의지보다, 통제하고 억압해야할 집단적인 정치행위로 간주한 것은 한국 뿐만은 아니다. 영국의 마거릿대처수상은 신자유주의를 천명하고 수익성이 낮은 사업장을 폐쇄하기 시작했다. 노조는 저항했지만, 민사소송을 걸어 배상책임을 물었다. 돈 앞에 장사가 없었다. 결국 국가의 힘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무력화시켰다. 그 기가 막힌 효율적인 방법을 우리는 가져와 적용하기 시작했다. 국가의 공권력과, 법과 제도를 통해서 말이다. 정당한 노동자의 권리, 당연히 국가가 보장해주어야 하는 노동의 환경도 법으로 규정해 놓고 저항하면, '불법파업'으로 규정한다. 불법은 언제나 단호히 대처해야 하는 공공의 선을 위협하는 공동체 파괴범으로 몰아간다.

노동이 항상 선의 가치일 수는 없다. 하지만, 사측에 대항한 노조는 상대적 약자일 수 밖에 없다. 국가는 인권이라는 틀 안에서 상대적인 사회적 약자들 편에서 권리를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는가?

전태일이 피를 토해가며 마지막까지 함께한 근로기준법은 대한민국의 법이다. 너무나도 훌륭한 대한민국의 법이다. 전태일이 산화하던 날, 여성공장노동자가 몽둥이에 맞아죽던 날, 수많은 가족의 아버지가 공장안에서 갈증할 때도 대한민국의 훌륭한 헌법에는 노동의 권리를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귀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노동절 129주년인 오늘에도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노동과 관련한 수많은 국가의 제도와 법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욱 영리하게 침범해가고 있다. 다만, 오늘의 한유미와 구의역 김군과 태안의 김영균의 죽음위에서 더디게 더디게 노동이 의무이기보다 권리로서의 무게를 더 지니게끔 천천히 나아가고는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 확인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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