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부르하드박사 (좌측), 1923년 독일신문 ‘보시헤’에 보도된 관동대지진 이후 재일조선인 학살 기사 (우측)
권은비
1936년 손기정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에 도착하기 이전에, 일찍이 베를린에는 이극로와 이미륵, 그리고 안봉근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1921년에 세워진 최초의 재독한인단체 '유덕고려학우회'를 짚고 넘어가야한다. 다소 생소한 이 이름의 단체는 최근 영화 <말모이>의 주인공 이극로가 서기를 맡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 민족 언어를 지키기 위한 한글운동을 펼친 이극로는 해방 이후, 남한에서 조선어학회를 재건하고 결국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께 활동한 이미륵은 독일에서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출판하여 일약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독일에서는 최근 이미륵을 '한국의 토마스 만'이라고 평가하며 그의 기념 현판을 뮌헨 인근의 플라네그 지역에 설치하기도 했다.
1923년 10월 26일, 이들은 베를린에 있는 한인들과 독일어로 쓴 선언문을 뿌린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폭압 통치"라는 제목의 이 선언문은 일본 관동대지진 이후 조선인들이 무참히 학살된 사실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말'로 항일운동을 펼친 이극로의 행보답다.
유덕고려학우회가 이 선언문을 발표하기에 앞서, 베를린에 있는 한인들은 1923년 독일신문 <보시헤>를 통해 관동대지진 이후 일본에 있는 조선인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오토 부르하드'라는 이름의 박사에 의해 세상에 공개된 사실이었다.
그는 직업 기자가 아니었다. 독일의 유명 미술작품 수집가이자 동양미술전문 큐레이터였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에 미술품 수집을 위해 머물던 중, 일본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조선인들을 보게 됐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유덕고려학우회는 오토 부르하드 박사의 기사를 본 후, 그와의 면담을 진행하여 1923년 10월 독일 최초의 한인운동인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했다.
아직 발굴되지 못한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