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짜리 유토피아

평당2천만원 아파트, 지폐로 환산하면 7만원의 고액권

검토 완료

서윤영(reekazzang)등록 2019.04.22 08:46
이번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강북의 어느 동네에서 오래도록 살고 있는 저는 이번에도 같은 동네에서 집을 옮기는 동네이사를 하였습니다. 흔히 국민주택이라 일컬어지는 33평아파트, 전용면적 85m2 아파트의 우리동네 시세는 6억6천이었습니다. 그나마 강북의 조용한 동네라서 그 정도라고 했습니다. 강남은 더 비싸겠지요. 그러고보니 평당 2천만원 입니다.
평당 2천만원, 이게 어느 정도 가격인지 감이 잘 오지 않습니다. 한 평의 면적은 가로 세로 1.8미터의 정사각형 넓이로 3.0325 제곱미터 입니다. 안방에 놓는 더블 침대의 크기가 가로 세로 1.5 X 2.0 미터이므로 더블침대 크기가 한 평이고 그것이 2천만원입니다. 그리고 반 평 크기인 0.9 X 1.8 미터의 가격이 천만원 입니다. 대개 중고생들이 사용하는 책상 중에 작은 사이즈가 0.6 X 1.2 미터인데, 그 앞에 의자도 놓아야 하고 책장도 함께 있어야 하므로, 책상과 책장 하나를 놓을 수 있는 면적이 반 평입니다. 그러고 보니 더블 침대 하나를 놓기 위해서는 2천만원이 필요하고 책상 하나를 놓자면 1천만원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크기를 조금씩 줄여나가 보았습니다. 0.9 X 0.9 미터 크기는 1/4평이고 500만원이며, 0.45 X 0.45 미터의 면적은 125만원 입니다. 가로 15cm, 세로 7.5cm 크기를 계산해보니 약 7만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갑 속에서 1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크기를 재어 보니 가로 14.8cm, 세로 6.7cm입니다. 이는 1만원짜리 지폐로 한 평을 빈틈없이 뒤덮는다 해도 2천만에는 결코 이르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한 평을 2천만원의 돈으로 덮자면 5만원 지폐로도 안되고 약 7만원의 지폐가 필요합니다. 현재 유통되지 않는 고액권입니다. 만약 지금 평당 2천만원짜리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고 할 때 온 바닥을 7만원짜리 지폐로 뒤덮어 사용하고 있다는 계산에 이릅니다.
 

2천만원짜리 베란다 한평짜리 베란다. 평당 2천만원인 서울 강북의 아파트 시세를 생각해볼 때 2천만원짜리 공간이다 ⓒ 서윤영

 
지난 한 달은 이사를 가기 위한 준비와 이사를 온 뒤의 짐 정리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한가해진 어느 날 오후 베란다를 깨끗이 치우고 의자와 조그만 탁자를 두었습니다. 그러고도 문득 냉기가 올라온다는 생각에 급히 침대 시트를 깔아 보았습니다. 더블침대에 쓰던 시트가 그런대로 베란다에 딱 맞는 것이 꼭 이 만큼이 한 평인가 봅니다. 2천만원짜리 공간입니다. 예전 같으면 짐을 쌓아두던 곳으로 사용했지만 저 한 평짜리 공간, 2천만원짜리 공간을 알뜰살뜰 쓰기로 했습니다. 볕이 좋아서 책을 꺼내 읽기로 했습니다. 집어 든 책은 공교롭게도 "콘크리트 유토피아" 였습니다. 사방이 콘크리트로 뒤덮인 한 평짜리 베란다, 아니 한 평짜리 유토피아에서 읽기에 적당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층의 허공위에 매달린 유토피아는 정말로 콘크리트처럼 굳건했습니다.

 

한평짜리 베란다 짐을 쌓아두는 공간으로 쓰는 베란다지만, 알뜰살뜰 생활공간으로 악착같이 쓰기로 했다. 2천만원짜리니까. ⓒ 서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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