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화씨와 그의 아이들.
한정화 제공
- 단도직입적으로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아...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사람? 하하. 너무 추상적인가? 어쩔 때는 우리 단체(코리아페어반트)가 너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나,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위안부, 노동, 인권, 여성문제, 성소수자, 인종, 한반도, 장애인 차별 문제 등을 다양하게 다루고 포용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여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해봤다.
내가 일하는 '코리아페어반트'는 말하자면 '중세기 컨셉'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기의 도시 형성을 보면 정말 여러 가지가 있다. 마을에 농장도 있고, 푸줏간도 있고, 주거지도 있고, 식당도 있다. 그렇게 도시에 여러 영역이 함께 할 때 창의적인 힘이 나온다고 한다. 현대 도시처럼 농촌은 농촌, 공장지대에는 공장, 쇼핑몰은 쇼핑지역에만 있는 경우와는 다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부산에 있는 시민단체 '이주민과 함께'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는 정말 없는 것이 없다. 한쪽에는 이주민 치과 진료를 위한 치과장비가 있고, 한쪽에는 식당이 있고, 공지사항도 여러 국가의 언어로 배포된다. 그곳에는 정말 이주민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다 있다. 우리는 각자 모자란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내가 모든 문제에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다.
한편으로 나는 아이를 낳은 후에 대충 사는 것을 배웠던 것 같다. (웃음)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지 않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온 것 같다."
베를린에 있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위안부 문제 시위를 할 때에도, 세월호 참사 이후 진상규명을 위한 해외 연대 활동과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한 베를린 촛불 시위 등 한국문제를 독일사회에 알리는 일에는 늘 그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일하는 코리아페어반트 창고에는 아직도 여러 시위 도구들과 플래카드가 가득하다. 현재까지도 그는 베를린에서 가장 바쁜 활동가이다.
한국의 분단과 유신독재를 경험하고, 독일의 분단과 통일을 경험한 그의 정체성은 어디에도 한정되어 있지 않으며 동시에 독일과 한국 사회 양쪽을 정주하고 있다. 한국의 뼈아픈 역사는 자주 그의 입을 통해 독일어로 다른 세계에 전해진다. 즉,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언어가 아닌, 독일과 한국 사이의 서로 다른 세계를 가로지르며, 두 세계의 거리를 좁히는 작업을 그는 하고 있다.
안락한 삶을 마다하고 '여성'으로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공감하고 그 고통의 언어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달하려는 그의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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