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선발 이야기> 백기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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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선발'은 머슴의 아이다. 이 책에 나오는 머슴은 내가 아는 머슴과는 조금 달랐다. 아마도 근대 이전의 노비를 말하는 것 같다. 평생을 주인을 위해서 뼈 빠지게 노동을 해야 하는 존재. 가족의 결합과 이별도 주인 맘대로인 세상에서 머슴은 무권리의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목숨을 살리기도 하고, 빼앗기도 하는 그런 주인 밑에서 머슴은 산목숨이 아니었다. 그때 버선발의 어머니는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는다. 버선발은 어머니를 빼앗기고 세상을 저주하는 마음에 바위를 짓이기는 힘을 기른다. 그런 그도 주인 놈들의 마수에 걸려서 죽음의 노동을 견뎌냈다.
드디어 그가 자신의 힘을 가졌을 때, 바다를 없애 땅을 만들어 나누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땅이 없어서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을 보아온 터, 하지만 그렇게 만든 땅에 차지하고 군림하는 자들을 본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깨닫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이런 말을 듣는다.
"거 내 거라는 거, 그거 말인가. 그 내 거라는 걸 똘똘히 꼬집으면 말일세. 그게 바로 거짓이라는 것이라네. 모든 거짓의 뿌리요, 모든 거짓의 알짜(실체)지." (<버선발 이야기> 188쪽)
'내 거'는 썩물(부패)이고 막심(폭력)이다. 내 거에 기반한 틀거리(체제)와 쥘락(권력)을 짓부수지 않고는 이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내 거를 거부하고 노나메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노나메기는 이제 사람들끼리만 노나메기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그런 몹쓸 된깔일랑은 그대로 찢어 팡개치고는 참목숨, 다시 말하면 목숨 아닌 댄목숨(반생명)과 싸워 틔운 참목숨인 살티를 살려내야 합니다. 그게 무엇이겠어요. 그게 무엇이겠느냐구요. 그게 바로 노나메기입니다." (<버선발 이야기> 269쪽)
굳이 여기서는 책의 줄거리를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게 책에 나오는 버선발은 유가족처럼 보인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울고만 있는 유가족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일어서는, 그래서 노나메기의 삶을 위해 연대해가는 유가족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유가족들에게 빚지고 사는 것일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 한 발 내디디는 만큼 세상은 변화해왔다. 유가협의 어머님, 아버님들의 한 발이 그랬고, 세월호와 김용균 어머니의 한 발이 그랬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서, 내 거를 추구하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거를 잃고 노나메기의 삶에 나선 유가족들이 있어서 이 세상은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리 놓고 보면 내 거만 추구하도록 부추기는(그걸 유행하는 말로 각자도생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세상을 거부해온 모든 이들이 버선발인 것 같다. 동료의 죽음을 두고 울고만 있는 사람들, 동료를 묻고 뿔뿔이 흩어지는 게 아니라 동료의 죽음을 지키고 끝내 동료의 염원을 실현하려는 사람들, 끔찍한 막심을 겪으면서도 그리고 온갖 모독을 견디면서도 버티어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은 노나메기 세상으로 가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 연대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니 백기완의 혁명론은 뜨겁다. 그 연세에 그토록 뜨거운 혁명론을 간직하고 있다는 건 부러운 일이다. 내 거의 세상에서 노나메기의 세상으로 한 발 나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버선발 이야기 - 땀, 눈물, 희망을 빼앗긴 민중들의 한바탕
백기완 지음, 오마이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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