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안전사회건설에 앞장서는 행동가, 세월호 가족협의회 정성욱 아버님

단원고 고 정동수 군의 아버지, 정성욱 아버님 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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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은(agseulgi)등록 2019.04.04 08:36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①] 안전사회건설에 앞장서는 행동가, 세월호 가족협의회 정성욱 아버님
 
지난 2일 동국대학교에서 단원고등학교 고 정동수 군의 아버지이자 세월호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부서장을 맡고 있는 정성욱 아버님과의 간담회가 진행되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이하는 지금, 안전사회건설에 앞장서시는 아버님께서 대학생들이 앞으로 무엇을 유념하고 또 어떻게 행동해 나가야하는지에 대한 좋은 말씀들을 전해주셨다. 동아리 <너나들이>에서는 이번 간담회에서 주요한 내용들을 발췌해 정리했다.
 
 

지난 2일 동국대학교에서 세월호 5주기를 맞아 정성욱 아버님을 모시고 간담회를 진행했다. ⓒ 윤태은

 

Q. 그간 여러 가지 힘드셨던 부분들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가족 분들께서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A. 일단 안산에서는 안전 공원에 대한 활동을 많이 했었다. 3년 전, 진도 쪽에서는 인양 전이라 동거차도에 머물며 계속 세월호 인양에 대해 모니터링을 했었다. 인양 이후에는 목포 신항에 1년 8개월 동안 가족들이 상주하며 조사와 수습, 그 내용물까지 꼼꼼히 체크, 기록하고 영상으로 남겼다. 아이들의 유류품, 블랙박스, 핸드폰 등등 수거를 가족들이 현장에서 직접 다 하기도 했다.
 
Q.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던 일이 있으셨다면?
 
A. 가족 분들마다 다르시겠지만, 제 경험으로는 가장 힘들었던 것이 17년도 7월 달에 처음으로 미수습자가 나왔을 때였다. 제가 그 아이를 봤을 때 어떻게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심적으로 힘들었다. 더불어 해수부, 선체조사위와 매일 싸우다시피 한 일상도 힘겨운 부분 중 하나였다. 가족들이 거기서 가장 신경 썼던 게 바로 안전 문제였는데, 아이들을 수습하는 것도 좋고, 증거 찾는 것도 좋지만 거기서 안전사고 일어나면 무조건 올 스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 안전은 가장 가족들이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다. 또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핸드폰과 블랙박스 직접 수거하는 과정이었다. 이후 부모에게 돌아가 복원 된 영상들을 볼 때 마다 힘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세월호를 직립했다는 나름대로의 큰 성과가 있지 않았나 싶다.
 
Q.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 5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 동안 가장 답답했던 부분은 어떤 것이셨는지 궁금합니다.
 
A. 가장 답답한 부분은 배가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를 아직까지 모른다는 것이다. 블랙박스 동기화로 침몰 시간을 대충 알게 됐지만 무엇에 의해 침몰이 되었는가에 대해선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 또한, 침몰 당시 한 시간 45분 정도 구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정부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해경들은 왜 세월호에 올라가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혹이 너무나도 많다. 해경들이 현장에 왔다고는 하지만, 직접 안에 들어가서 나오라는 등의 구조 행동을 일체 하지 않았다. 왜 소중한 골든타임을 허비해가면서 까지 그런 쇼를 했을까. 도대체 무엇을 감추기 위한 것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 부모들이 아직까지 열심히 싸우고 있는 것이다.
 
Q. 5번째 4월 16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아 유가족 분들께서는 어떻게 활동 중이신지?
 
A. 지금 유가족들이 하고 있는 활동 중 첫 번째가 바로 416 세월호 안전공원이다. 단원고 근처 화랑유원지 부지에 생명안전공원을 준비 중이다. 2주 전에 정부에서 화랑 유원지 내의 부지를 공식적으로 확정했다. 현재 안산시와 정부, 가족협의회가 어떻게 안전공원을 꾸밀 거냐에 대해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최근 서울 광화문에 세월호 천막이 철수되었다. 하지만 완전 철수는 아니고, 현재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기억공간으로 4월 12일에 다시 오픈을 하게 되는데, 그 곳에 분향소는 없지만 아이들은 기억의 공간으로 다시 돌아올 예정이다. 사진도 단순 영정사진이 아니라 아이들 사진 안에 말린 꽃을 넣어 화려하게 장식할 예정이다. 서울시가 광화문 광장 전체를 리모델링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기 때문에 올해 말까지만 임시적으로 운영된다. 그 이후의 방향은 서울시와 계속 협의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진상규명'이 가장 유가족들 활동의 중점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특조위와 가족협의회가 함께 활발히 활동 중이다. 목포 신항에 현재 세월호가 그대로 있고, 세월호와 관련해서 1기 특조위와 선체 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해왔지만 결론이 제대로 나질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2기 특조위에서 재조사 중이다. 올해부터 2년 간 목포신항에 세월호가 그대로 있을 예정이며, 2기 특조위가 서울에서 목포까지 왔다 갔다 하며 꾸준히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특조위는 현재 크게 다섯 가지를 조사하고 있는 중인데, 먼저 첫 번째가 언론에 대한 부분이다. 2014년도 참사 이후 언론에 의해 가족들이 희생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는 국정원 기무사, 즉 정부가 있다. 세 번째는 정확한 참사시점을 재조사하는 것. 네 번째는 세월호의 침몰 원인이다. 선체조사위원회에서 이전에 내놓은 보고서 내용을 좀 더 보충 조사하는 방향으로 진행 될 예정이다. 다섯 번째는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세력이다. 그 중 하나가 최근 발표된 DVR인데, 이는 처음부터 저희 유가족들이 가지고 있던 의혹이었다. DVR에는 64개의 채널들이 나오는데, 선내 영상의 시간대는 맞지만 그 이후 기관실이라든지 바다 쪽의 영상들이 없다. 지워진 것이다. 1기 특조위 때 가족들이 이에 대해 조사 신청을 했지만 정부에 의해 특조위가 강제 해산 당하면서 조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서 2기 특조위 발족과 동시에 DVR과 관련된 조사를 시작했고, 얼마 전 의혹이 있음이 다시 한 번 발표되었다.
 
Q. 그동안 특조위의 활동은 세월호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세력들에 대한 수사권이 없다는 분명한 한계점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세월호 특별 수사팀을 꾸린다고 들었는데, 세월호 특별 수사팀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A. 꾸린다는 건 아니고 꾸려졌으면 좋겠다고 가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여러 가지 의혹은 많지만 특조위에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없어서 조사에 한계가 있다.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이런 의혹들을 조사하는 주체는 정부가 되어야 하며, 정부가 직접 진상규명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세월호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함께 특별수사단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Q. 최근에 세월호 CCTV DVR이 조작이 되었으며, 기존에 나왔던 결과와는 전혀 다른 내용들이 밝혀졌다는 게 기사로 나왔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자세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A. DVR이 원래 세월호 선체 안내데스크에 있었다. 해군이 그것을 꺼냈다고 6월 22일에 이야기를 했었는데, 최근 특조위가 DVR 영상을 확인하는 도중에 의문점이 드는 몇 가지를 발견했다. 첫 번째로 DVR 커넥터를 푸는 장면이 잠수사 영상에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잠수사의 헬멧 좌측에는 카메라가 달려있기에 무언가를 손으로 풀면 분명히 그 장면이 찍혀야 하는데 없었다. 두 번째는 잠수사가 DVR을 어떻게 들고 올라왔는지에 대한 첫 번째 진술과 두 번째 진술이 다른 것이다. 세 번째는 고무패킹이다. 분명 올라올 때는 고무패킹이 없었는데 올라오니 있었다. 고무패킹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해군은 분명히 DVR을 가지고 올라왔으면 가족들과 국민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그것을 24시간 동안 숨겼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의문점들과 틀린 진술들이 있었다.
 
DVR은 원래 키 박스라는 걸로 잠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물속에서 올라올 때는 키 박스가 분해되어 있었다. 이는 DVR이 분명 누군가의 손을 탔다는 뜻이다. 불과 3~4시간만에 키박스가 분해된 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까도 말씀드린 것처럼 64개 채널 중 선내 영상은 있지만 바깥 쪽을 비추는 외부의 영상이 거의 없다. 우리는 해군이 먼저 DVR을 수거해 본인들 입장에서 국민들과 가족들에게 보여주면 안되는 영상들을 지운 게 아니었을까 하는 판단을 하고 있다.
 
Q. 대한민국 안전사회 건설에 있어 가장 앞장서시는 행동가로써 안전 사회가 왜 필요한지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A. 세월호가 정확히 왜 침몰했는지는 모르지만, 여러 문서와 지류를 복원하면서 일부를 본 결과 세월호에는 많은 잔고장이 있었고 안전에 관한 조치 사항들이 미비했던 게 밝혀졌다. 안전이 왜 중요하냐면, 얼마 전 생존 학생이 일본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만약 세월호에 대해 고치고 싶은 게 있으면 무엇을 고치고 싶냐" 묻자, "배에 탔는데 설명이 없었다"고 그 학생이 답했다. 대피로가 어디에 있고 구명보트, 조끼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만 있었어도 조금은 낫지 않았을까 싶다.
 
저희 가족들이 안전을 외치는 이유가, 학생들은 학교, 학원만 반복적으로 다니다 보니까 안전에 대한 의식은 저 뒤편에 있다. 그러니 사고가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단편적인 예로 참사 당시, 선생님들도 지식인들이지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에서 이야기하니까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도록 지도하고 불러 모으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생님들도 몰랐던 것이다. 그런 것들이 저희 가족들에게 가장 큰 상처가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안전에 대한 교육이 너무나도 부족한 대힌민국이다. 오로지 좋은 대학, 좋은 기업에 들어가는 게 목표가 되는 현실이다. 사고가 나면 어떻게 대처할 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최근 저희 가족들이 교육청에 요구한 내용이 있다. 학교에서 안전의 날에 안전에 대해 제대로 교육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초, 중, 고, 대학교 수준에 맞는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되어야지 자기 몸은 자기가 스스로 지킬 수 있다. 초등학교부터 안전교육이 기초적으로 이뤄지면 자연적으로 몸에 배일 것이다. 그래서 두 번 다시는 다른 이들이 세월호 유가족과 같은 아픔을 겪지 않도록 안전교육을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많은 대학생들이 강의실의 자리를 메웠다. ⓒ 윤태은

 

Q. 처음에도 말씀하셨듯이 적폐 청산이 우선적으로 되어야 세월호 진상규명이 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과거 새누리당이 현재 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면서 적폐세력들의 몸집이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적폐 청산을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A. 국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적폐청산이다. 일단 내년 총선에서 표를 안 주면 된다. 근데 그게 잘 안 되더라. 적폐청산을 잘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투표권을 행사 안 하기 때문에 계속 이런 문제들이 반복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한 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스스로 깨달았으면 좋겠다.
 
자유한국당을 보면 계속 지지율이 올라가는 중이다. 이러다간 내년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이전과 다름없이 문제들을 감추기 급급하고 맨날 비리가 터지는 똑같은 상황이 다시금 발생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내려가고 문재인 정부가 드러선 이후, 달라진 것은 아직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장차관까지는 바뀌었으나, 그 밑의 관료들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이다. 그런 관료들은 '딱 2년만 버티면 되는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단편적인 예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목포 신항에서 뼈 은폐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해수부 관리자들이 미수습자의 뼈를 은폐한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한 표를 부지런히 행사해야 한다. 또한, 우리들의 마인드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마인드는 어쩔 수없이 조직을 따라가게 되어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갖고 있는 주관이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관 없이 조직에 휩쓸려 가는 것과 자기 주관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적폐청산을 위해서는 그런 기본적인 마인드 변화와 함께 소중한 투표 참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흔히들 쓰레기는 완전히 소각해버려야 없앨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적폐세력들이 계속해서 날뛰는 지금 이 시기에 국민들의 연대가 가장 절실하지 않나 싶은데요, 대학생들도 가족 분들, 국민들과 함께 연대해야 할 것인데 과연 대학생들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내가 맡은 위치에서 내가 가진 주관을 실천에 옮기면 된다. 나서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되는 것이다. 저도 지금 딸한테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라"라는 것인데, 그래야만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자기 주관이 생길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가 시키는 것만 따라가게 된다. 여러분들도 자기 주관을 가지고 해 보고 싶은 것 마음껏 해 보는 게 가장 좋다. 그래야 사회 나가서도 자기주장을 떳떳하게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젊은 세대들이 자기 주관으로 당당한 소신을 펼치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Q. 소신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생들에게 사회는 항상 순응하라, 너희 앞가림이나 잘 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변을 볼 기회가 없는 분위기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학생 세대가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와 그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지금 한국 사회에서 권력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권력을 쥐려고 노력하고, 재벌은 끝까지 돈을 가지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을 꺾을 수 있는 이들은 여러분 밖에 없다. 또한 여러분들을 꺾을 수 있는 건 지금 초중고생들이다. 세월이 변하고 세대가 변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활동적인 것도 많이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 다 좋지만, 여러분들은 기성세대들이 했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희 기성세대가 잘못을 너무 많이 했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 뒤를 안보고 앞만 보고 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큰 사회적인 병폐들을 너무 많이 낳았다. 여러분은 그런 조랑말 같은 삶을 살지 말고, 시야를 넓혀 골고루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성세대들의 잘못을 여러분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살아갔으면 한다.
 
세월호 사건 기점으로 전과 후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고 계속 이야기 한다. 그러나 여전히 전과 후가 달라진 게 없다. 정치권이나 언론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제가 여전히 희망이 있다 믿는 것은 목포 신항에 1년 8개월 동안 있으면서였다. 목포 신항까지 굉장히 먼데도 찾아오는 학생들을 보면서 저는 희망을 느꼈다. '아 변할 수 있겠구나,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겠구나'를 느낀다.
 
Q. 저희가 다 함께 그려보면 좋을 미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A. 일단 잘 먹고 잘 살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그렇게 가기가 상당히 힘들 것이다. 못 산다고 해서 비관하지 말고 잘 산다고 잘난 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라는 것은 공동체 의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도와주고 받아주고,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다른 사람이 못 났으면 그 부분을 자기가 채워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분명 지금보다 좋은 사회가 된다. 서로 돕고 연대하면서 살아간다면 지금보다는 백배천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또한, 조금은 평등하고 조금은 안정적인 삶을 우리가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이어서 자리에 모인 대학생들이 정성욱 아버님께 자유롭게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Q. 5년 째 유가족 분들이 거리에 계시면서 건강도, 몸이 많이 안 좋은 걸로 알고 있다. 그 와중에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적폐세력들이 도를 지나치게 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런 것은 개소리니 무시하자 라는 것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상처가 심하실 것 같아서 건강이 많이 걱정되는데 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A. 솔직히 건강은 좋지가 않다. 저를 단편적 예로 들면. 목포 신항에 1년 8개월 있으며 총 5번의 기억을 잃었다. 그 중에 워낙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단편 기억 상실증을 3개월 동안 앓았다. 5년 동안 있으면서 치아가 9개나 빠지기도 했다. 대부분 스트레스 받으면 치아부터 무너지기에, 많은 유가족 분들의 치아가 부서졌다. 저녁에 집 가면 맨날 파스를 붙이고,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도 수술하면 활동을 못하니 수술을 미루기도 한다. 아픈데 별이 된 아이들에게는 그것도 사치라고 생각해서 하지 않으시는 부모님들이 상당히 많다.
 
트라우마는 말할 수도 없다. 2015년도 정부가 합의금 내세웠을 때 가장 극심한 트라우마를 겪었던 것 같다. 한창 시체 팔이 장사 한다고 했을 때. 그 때가 가장 힘들었다.
 
Q. 이전에 기무사에서 혈액형, 정치성향 등 일일이 유가족들에 대해 조사하고 보고했던 일이 있었다. 그것과 관련해서 아버님께서 겪으셨던 일이나 주변에서 들었던 일이 있으신지.
 
A. 참사 이후부터 바로 사찰을 당했다. 당시에 뭔가 의심은 됐는데 본격적으로 사찰 당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은 4월 23일에 팽목항 대합실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회의 내용이 부모님께 전달이 안 되니까 당시 해경청장, 부청장, 해수부장관 세 사람을 밖으로 끌어놓고 텐트 안에서 정보관은 빠지라고 요구했다. 그래도 빠지지 않자 실랑이 끝에 해수부장관의 지시로 텐트 안에 있던 사람 절반이 빠졌다. 누구 삼촌 어쩌고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하던 사람이 다 정보관이었던 것이다. 팽목항, 진도, 단원고까지 들어가 있었으니 얼마나 심했는지 감도 오지 않는다. 가족협의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때도 우리가 어디를 갈 때마다 따라다녔다. 저희 가족이 새벽에 목포 신항에 내려가는데 경찰 두 명이 쫓아오기도 했었다. 휴게소에서 다른 가족 한 분이 왜 따라오냐고 잡아보니 사찰이었다. 거의 참사 직후부터 세월호 가족들을 사찰했다고 보는 게 맞다.
 
Q. 박근혜 7시간의 행적을 30년 동안 봉인했다고 하는데.
 
A. 대통령 기록물 법을 이용해 황교안이 봉인한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그 7시간 동안에 과연 무슨 지시를 했고 무슨 보고를 받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대통령은 사고가 났을 때 컨트롤타워가 맞다. 그렇다면 정확하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뭘 했는지 가족들은 알고 싶은 것이다. 사고 당시 과연 제대로 된 구조 지시를 했는지, 또 했다면 어디까지 내려가서 어디에서 멈췄는지 그걸 알고 싶은 거다. 그래서 대통령 7시간을 공개하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황교안이 봉인을 해버렸기 때문에 황교안도 마찬가지로 조사 대상으로 특조위에 신청한 상황이다.
 
Q. 최근 세월호와 관련된 여러 영화들이 나왔는데 보시면서 어떠셨는지. 추천할 만한 영화였는지.
 
A. 저는 다 두 번씩 봤다. <악질경찰> 같은 경우는 딱 세월호라고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지만 많이 관련 내용을 숨겨 놓았다. 가장 아팠던 장면 중 하나는 친구가 죽은 이후 여자 아이가 방황하다가 친구를 따라서 자살을 하는 장면이었다. 물론 감독이 의도한 건 아니라고 하지만 가족 중에서 실제로 그런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오래된 친구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얼마 후에 본인도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서 실제 그 일이 생각나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생일> 같은 경우에는 저는 울면서 봤다. 어머니의 사랑과 자식에게 못해준 것에 대한 아버지의 미안함이 서료 교차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보는 내내 저희들도 펑펑 울었다. 어떤 특정 가족을 모티브로 한 게 아니라 전체 가족을 대상으로 해서 만든 영화다. 생일 같은 경우는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 잘 만들지 않았나 싶다. 트라우마나 병 같은 대목들을 포함해 세월호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많다. <생일>은 물론 보기 힘들겠지만 가족들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고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화이다.
 
- 아버님과의 간담회를 마치고 소감과 더불어서 세월호 참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이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다짐하는 대학생들의 결심발언 시간을 가졌다.
 
<너나들이 김민정>
처음 세월호에 대한 뉴스를 접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듣고 하면서 슬픔과 분노까지만 있었지 행동해야 한다는 인식까지는 없었다. 또 내가 뭘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용기도 없었는데, 간담회 들으며 그 사람들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안전사회를 건설하고 적폐청산을 이룰 때까지 대학생이 앞장서서 행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나들이 김은지>
세월호 5주기 간담회를 듣고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올바르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올바르지 못한 사회의 고여 있는 문제들 때문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가장 약하고 힘없는 이들이 피해를 본 것이다. 또한 사회에서 좋은 어른이 되지 못하면 누군가는 나로 인해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으로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든 순간이었다. 성인이 되고나서 세월호를 회고하면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5주기를 맞이하는 지금 많은 이들이 세월호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져 간다고 하지만 우리 대학생들이 앞장서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앞장서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다.
 
<흥 박재이>
말씀해 주신 내용 중 안전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 고등학교 때 지진 예방 교육을 받는 것이 너무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사건이 일어났을 땐 대처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초등, 중등, 고등, 대학교 모두 수준에 맞는 안전 교육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목포 신항에 학생들이 방문하는 것을 보시고 희망 느끼셨다는 걸 듣고 감동을 받았는데, 저희 중에서도 그동안 세월호를 많이 잊고 지낸 학생들이 많지 않나 싶다. 저희가 세월호 세대인 만큼 더 많이 알리고 목소리 내고 실천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저희가 한 세대를 만들어가는 만큼, 공동체 의식을 갖고 사람이 소중한 것을 느끼면 더 우리 주변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적폐 청산에서도 우리가 그 세대가 될 테니 투표권을 소중하게 행사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쏘셜메이커 이상혁>
이번 간담회를 통해 화가 났던 것은 정보관들이 그렇게 일찍부터 세월호 가족들을 사찰했다는 것이었다. 너무 분노스러웠고 뉴스를 통해 CCTV 빼돌리는 것들을 통해 공무원들의 부패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며 치가 떨렸다. 그래서 이런 문제들에 대해 대학생과 국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분노하고 목소리 내야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학생들이 앞장설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서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행동했으면 좋겠다. 또 마음이 아팠던 것은 유가족 분들은 누구보다 위로받고 치유 받아야 되는 분들인데, 누구보다 앞장서서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모습들이 마음 아팠다. 신체 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프신 상태에서 얼마나 버티고 계실까 싶어 마음이 계속 안 좋았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행동할 수 있는 대학생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세월호는 끝나지 않았다. 완전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그 이후에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숙제를 우리가 함께 풀겠노라고 다 같이 외치고 새롭게 다짐할 때이다. ⓒ 윤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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