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없음의 의미

기부이야기 1 하남 소망의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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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사랑(itakorea)등록 2019.03.26 15:30
쌀이 없음의 의미

"선생님, 쌀이 없어요. 도와주세요."
소망의 집에 전화가 연결되고 원장님의 첫 말씀.
'쌀이 없다.'라는 문장을 너무 오랜만에 들었다.
쌀이 없을 수는 있다. 가끔 우리 집 쌀통에도 쌀이 떨어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원장님의 '쌀이 없다'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당시, 이타는 지난 2018년 후반기 사업으로 약 390만 원가량의 모금액을 기부처에 전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기부처를 찾는데 난항을 겪고 있었다.
이유는 2016년부터 쭉 기부해오던 심장재단의 제도 변화에 있었다. 2019년 심장재단의 1:1 결연 아동 후원제도는 저출산과 환아 수 감소로 폐지되었다. 재단에서는 성인 환자 결연을 제시했으나, 이를 보류하고 이타의 후원금이 꼭 가야만 할 기부처를 찾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런 데이터 베이스 없이 기부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재단, 법인은 이미 이월금이 있을 정도의 규모로 재정을 관리해오고 있었고, 진짜 필요한 곳에 이타 대원들의 후원금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꽤나 긴 시간을 소모했다. 서울권 내 또는 근교의 시설을 알아보던 중 감사하게도 베이비박스 봉사모임을 주도하는 김남현 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일로 하는 봉사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하는 봉사가 진짜 봉사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분의 추천이어서 더욱 신뢰가 갔다.

남현 님의 첫 번째 소개가 소망의 집이었다.
양말을 직접 트럭에 싣고 다니며 장사를 해서 소망의 집을 운영하신다는 원장님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곳이다 싶어 망설임 없이 전화를 돌렸다.

"소망의 집에 필요한 게 있을까요?"
라는 물음에 답으로 주신 말.

"선생님, 쌀이 없어요. 도와주세요."

여느 집 쌀통이 비어 쌀이 없음과는 다른 간절함이었다.
쌀이 없다는 말씀에 너무 당황해서 두서없이 말을 쏟아냈다.

"아, 쌀이요. 쌀이 없으세요? 쌀이 얼마나 없으세요?
저희는 기부금을 모아서 치료가 필요한 환아 결연 후원을 하는 단체인데.. 치료 비용 후원 위주로 기부처를 찾는 중입니다.
두런두런이라는 기부 러닝을 통해서요. 콘서트도 하구요.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서 모금을 합니다.
젊은 청년들이 주로 기부를 해요. 그런데 저희가 소망에 집도 후원을 하면 좋겠습니다.
쌀은 언제 필요하세요?"

아후.. 정말 아무 말 대잔치.
당황하면 왜 이렇게 말이 두서없이 나오는 걸까.
몇 년을 연습해도 도로아미타불이다.

쏟아낸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원장님, 이타는 300명의 청년들이 함께 뛰어 모은 기부금을 전달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타가 소망의 집에 쌀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원장님도 이 정리된 내용으로 이해해주셨기를 바란다.

전화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최대한 빨리 기부금 내역을 정리했다.
두런두런 시즌 5+와 시즌 6, RASESUP과 메이커 괴짜 축제에서 모금된 기부금을 정리해 300만 원 수술비 지원금을 제외한 98만 원으로 쌀을 구매해야 했다.
소망의 집까지 배달이 되는 곳을 찾아 20포대의 쌀 400kg을 102만 원에 구매하고, 방문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게 예약을 했다.

좋은 일에는 흉이 낀다고 했던가.
전날에도 당일 아침에도 말할 수 없는 감정적 어려움이 찾아왔다.
좋아 시작한 일,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힘들다고 투정할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이런 고비가 올 때면 여러 감정들을 삼켜내기가 쉽지 않다.
어떻게든 감정들을 삼켜내고 경기 하남 고골로에 들어섰다.
 

하남 소망의집 ⓒ 한유사랑

   소망의 집.
창고 단지 마을 어귀에 보이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구불거리는 길을 조금 더 들어서 작은 뜰 안쪽에 자리 잡은 소망이 가득한 집을 만났다.
"누구지? 어서 와, 누구야? 안으로 와."
나지막한 이층 옥상에서 완장(착한 반장)을 찬 친구가 큰 소리로 맞아주었다.

유리로 된 현관 미닫이문을 열자 보행기를 탄 아가가 먼저 나와서는 빤히 본다.
"누구 왔어요!"
8~9살 정도의 원피스를 입은 친구가 소리쳤다.
금세 원장님께서 나오셨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세상에 너무 반가워요."

살짝 섞인 사투리로 반갑게 맞아주시는 원장님이,
코르덴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보행기를 탄 아기가,
쉼 없이 움직이는 장성하지만 어린 친구들이 모두 친근했다.
 

모두가 너무 예쁜 곳 ⓒ 한유사랑

 

오래 머물 만남이 아니어서 간단하게 이타를 소개하고 소망의 집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원장님과의 대화를 메모하기 위해 가방을 열고 펜과 종이를 꺼내자, 원피스를 입은 소녀 은혜가 내 가방 속을 들여다봤다. 다른 친구들도 다가와 가방 속을 들여다보며 뭐가 나오는지 궁금해했다.

"뭐 있어? 그게 뭐야?"
의도를 전혀 몰랐던 나는 질문을 하는 은혜와 친구들에게 우스꽝스럽게도 사진기와 종이, 펜을 설명했다.

"가방 안에 먹을 거 있나 궁금해서 그러는 거예요."
더듬대는 내게 원장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오전에 봉사자들과 함께 밥 먹고, 전에 오셨던 봉사자들이 보내주신 작은 초콜릿을 하나씩 나눠 먹었으니 신경 쓰지 말라 셨다. 가방에 간식들을 넣어왔어야 하는데. 아차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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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의 집 모습 ⓒ 한유사랑

 
봉사자들의 식사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졌다.
뭘 가져오시라는 말에 식사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이 큰 대야를 끌고 오셨다.
이리저리 구겨서 쪼그려 누우면 내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큰 대야였다.

"다 같이 먹으면 보통 저만큼 드세요. 깔깔. 여기 밥이 시골스러워서 맛있다고 두 그릇씩 드십니다. 와서 도와주시니 많이 잡수시야죠."

웃으며 말씀하시는 원장님을 보며 밥이 맛있는 것도 쌀이 모자라는 이유 중 하나겠지 싶었다.

원장님은 29년간의 긴 시간 동안 어려울 때마다 양말과 슬리퍼, 베개, 이불 등을 직접 트럭에 싣고 나가 팔았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기보다는 무엇이든 해서 소망의 집식구들을 돌봤다.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나누고 갚으며 그것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본인은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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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쌀이 도착했다. 도착한 쌀을 내려놓고 보니 쌀이 너무 적다.
실속 없는 이야기들로 원장님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되어 후원자들과 기관에 보고할 사진들을 찍고, 서둘러 이야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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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적었던 20kg의 쌀 20포대 ⓒ 한유사랑

 
 
인사를 하고 돌아서니 마음이 무거웠다.

쌀은 적고, 먹을 사람은 많다.
도착한 쌀이 얼마나 버텨줄까.
쉼 없이 움직이는 장성한 어린 친구들에게 얼마간이나 채워질까.

결핍의 의미를 잘 모르던 시절의 나에게
쌀통에 쌀이 떨어지면 조약돌만 한 아가를 등에 업고
하늘을 보고 울음을 삼켰다고 하셨던 엄마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옛날 옛적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그날의 결핍이 이곳의 현실이고
내가 사는 이 시간의 이야기다.

쌀이 없다는 의미는,
모자람이 넘치고 빌려 내놓아야 할 것이 천지라
그것을 말로 다 하기 어려워
"쌀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쌀이 없음은
"쌀이 없다."가 아니다.
"쌀조차 없음."인 것이다.

더 많은 분들이 쌀조차 없는 이곳을 알게 되길 바란다.
결핍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장으로 살아오신 원장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결핍이 있으나 그곳에서 즐겁게 노래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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