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항쟁 70주년기념 대학생창작집체극 <해난디동동>, 소설연재를 시작합니다

소설 해난디동동 매달 연재됩니다.

검토 완료

윤태은(agseulgi)등록 2019.03.19 15:45
2018년 제주4.3항쟁 70주년을 맞이해 대학생들이 창작한 집체극 <해난디동동>이 서울, 대구 등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고, 2019년부터는 소설로 각색해 매달 연재하려고 합니다.
제주항쟁의 역사를 기억하고 정신을 이어가기위해 쓰여질 소설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소설 <해난디 동동>   

작 신지원 / 교정, 교열 임대한

목차

0.목차
1. 해 저문 바당 -
2. 잠녀의 노래
3. 꿈에게  
4.내 고향에 묻히고 싶어
5. 기다리는 님 돌아오는 해방 
6. 아침이 다가와 
7. 이어도사나 
8. 비명 
9. 봉화 
10. 파도
11. 다시 들어오는 잠녀의 노래 
12. 해난디 동동
13. 에필로그 


1. 해 저문 바당
 
 항아가 애기구덕 보다 겨우 한두 뼘 밖에 크지 않았던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는 항아의 곁에 머무르는 날보다 바다에 사는 날이 더 많았다. 어머니는 밀물처럼 잠시 밀려왔다 이른 새벽이면 썰물처럼 바다로 사라졌다. 아마 바다에서 숨을 참는 것보다 뭍에 사는 것이 더 숨 막혔으리라, 그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항아가 10살이 되던 해 어머니는 영영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파도가 몰아쳐도 어머니의 육신은 끝끝내 밀려오지 않았다. 항아는 해변의 조개를 줍듯 어머니가 어디 갔냐 묻고 다녔다. 아버지는 고년이 집을 나가려고 기어이 물귀신이 돼 버렸다고 돌아섰고, 마을 할망들은 이어도에 갔을 것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항아는 이어도가 어디인지 몰랐다. 다만 오라비인 동진이 어망은 고향으로 돌아간 게 아닐까 하자, 막연히 어머니의 고향이 이어도였구나 생각했다. 바다에 더 오래 살았으니 어머니의 고향은 여기가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하기야 제주 사람 모두 바닷바람 맞고 태어나, 바다와 함께 살고 죽는다. 특히 제주 여자들에게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제주의 땅은 아무리 일구어도 거칠었고 삶은 그만큼 더 모질었다. 하필 섬에서 태어난 어린 것들을 먹이고 키우려 여자들은 얼굴의 솜털도 가시기전부터 물질을 시작했다. 항아의 어머니가 그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그렇게 살다 갔다. 제주 여자들 핏줄엔 소금기 머금은 잠녀의 운명이 흐르고 이어졌다. 어머니의 장례가 끝나던 즈음 아버지마저 숙환으로 자리에 누워버리고, 항아는 자맥질을 배웠다. 동진은 항아가 글 한자라도 깨우치고 바다에 가길 바랐다. 하지만 바다엔 이정표가 없으므로 항아는 까막눈을 쉐눈으로 가렸다. 바다는 제주를 낳고 기른 어머니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었지만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항아는 숨을 꾹 참고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

 항아보다 다섯 살 많은 동진은 어린 누이가 있을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섰다. 아버지는 자리를 보존하고 누웠고 육지에서 이어지는 일제의 폭정은 이미 섬마저 덮은 지 오래여서,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하는 수 없이 멀리까지 나가는 배를 타곤 했는지, 한번 나가면 계절이 두 번은 바뀌어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동진도 아직 어린지라 어선에서 하는 일이라곤 찢어진 그물을 손질하거나 선원들 치다꺼리뿐이었지만 병든 아버지와 어린 항아만 두고 오래 집을 떠나있기는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가난하고 질긴 목숨들을 연명 하려면 별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잘 먹지 못해 체구가 또래보다 한참 작은 동진은 바다 사내들 틈에 끼여 몸에 맞지 않게 빠르게 나이를 먹어갔다. 작은 어선에서 동진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곳이라곤 험한 바닷일에 입이 거칠대로 거칠어진 늙은 선원의 입뿐이었는데, 선원들은 틈만 나면 모여 앉아 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떠들곤 했다. 그들은 마치 직접 그 일들을 겪은 사람 마냥 흥분했다. 툭하면 '뒈싸지라', '머리를 모사불 놈들' 하며 욕을 해댔는데 간난쟁이가 들어도 뭍의 상황이 흉흉하기 짝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물며 머리부터 훌쩍 자란 동진은 이리 고된 일을 해도 항상 배를 곯아야 하는 이유가 선원들이 매일같이 욕하는 놈들 때문이구나 짐작했다. 짐작은 했으니, 눈으로 확인할 길은 없을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동진은 전보다 훌쩍 자라있었다. 섬에선 아이가, 아이답게, 청년이 청년답게 자랄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섬 사람들은 세월보다 더 빨리 자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죽도록 미안한 마음이지만 항아가 고사리 손으로 캐온 소라나 따개비를 팔아 번 돈으로 책 한권을 샀다. 세상은 시시각각 변해 가는데,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하면 아버지처럼 무지렁이 촌부로 살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동진은 그 책을 정말 마르고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어린 누이가 고된 물질로 지쳐 잠든 날이면 달빛에 기대어 더욱 열심히 책을 읽었다. 항아가 애기 바당을 벗어나 더 넓은 바다로 가던 즈음 동진은 책장을 덮었다. 이제 세상을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 일제니, 폭정이니 하는 것들, 이데올로기는 다 무엇이고 이념은 어떻게 우리를 옭아매는가. 역사의 그물 한 귀퉁이라도 꿰매볼 수 있다면 좋겠다. 심장이 고동쳤다. 며칠이 지난 새벽 마침내 동진은 육지로 가는 배에 올랐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이지만 잠녀들은 벌써 물질에 한창이었다. 저 바다 어딘가에는 항아도 있고 어머니도 잠들어 계실 테지. 육지로 가면 죽도록 일하다 겨우 한 두 문장을 읽을 짬 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세상도 눈으로 보고, 돈도 벌어 집에다 보태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 약값도 하고 항아도 학교에 갈 돈 정도만 벌었으면……. 열여섯 동진의 꿈은 바다를 가르고 육지로 향했다. 바다에는 이정표가 없으므로 불행히도 작은 선박은 조선이 아닌 낯선 땅에 동진을 내려놓았다. 그곳은 일본이었다.

2. 잠녀의 노래

 조천읍 선흘리. 이곳엔 예로부터 나무가 많아 바다로 가는 노가 부러져도 걱정이 없다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곶자왈을 품고 있어 꽃피기 어렵다는 동백꽃이 동산을 이루는 곳이기도 했다. 선흘리 사람들은 동백나무를 귀하게 여겼다. 동백나무 열매에서 나오는 동백기름은 임금님께 진상하는 귀한 것이었는데, 집을 짓고 울타리를 만들 적에도 동백나무만큼은 피해갔다. 마을엔 나무도 많고 동굴도 많아 어디든 숨으려고 하면 며칠이고 자취를 감출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숨바꼭질을 하는 날엔 술래 하는 아이가 해질녘이 다 되도록 온 동네 숲과 동굴을 헤매고 다녔다. 몸집이 작은 항아는 어디든 틈만 있으면 몸을 우겨넣을 수 있었다. 한번은 바위틈에 숨어들었다 깜빡 잠이 든 적이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해는 다 졌고, 동네 어른들이 횃불까지 들고 항아를 찾고 있었다. 술래였던 용하는 멀대 같이 큰 키와 맞지 않게 눈물, 콧물을 다 빼며 항아를 애타게 찾았다. 놀란 항아가 다람쥐같이 포르르 마을로 내려오자 용하는 그제야 마음이 놓여 아예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다시는 너영 안놀거라!"
 하지만 아이들의 숨바꼭질은 계속 됐고, 대신 술래가 '못 찾겐, 못 찾겐!' 을 외치면 놀이를 끝내자는 규칙이 생겼다. 아이들의 뜀박질은 침략전쟁준비로 나무들이 다 베어질 때 까지 계속 됐다. 베어진 나무 밑동에선 다시 새싹이 돋아났지만 아이들은 기다리지 못하고 훌쩍 커버렸다.

*

 "항아야 너도 물질 허레 와시냐?"
 불턱에 모여 앉아 모닥불을 쬐던 잠녀들이 항아를 살갑게 맞았다. 서둘러 나온다고 나왔는데도 불턱 큰 바위에는 물질을 준비하는 잠녀들로 소란스러웠다. 옆 마을 새댁은 아기까지 안고나와 젖을 물리고 있었다. 물적삼으로 갈아입던 성녀가 옷도 반만 걸치고 호들갑스럽게 항아에게 달려들었다. 
"적삼이나 마저 입어 마씸."
"이제 잔소리까지 햄시냐? 쬐깐한 게."
"무사! 나도 열 다섯 되수다."   
 항아의 말에 모두 귀엽다는 듯 웃었다. 
"항아 네가 이제 상군 노릇을 햄꾸나이!" 
성녀는 항아보다 서너 살 위였지만 벌써 시집을 가 어른인 체를 하곤 했는데, 그래서 인지 배까지 부여잡고 어린아이 놀리듯 웃었다. 항아는 입을 삐쭉거리며 잠녀들 곁에 앉았다. 
 불턱은 잠녀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했는데, 마을의 모든 소문은 불턱에서 만들어지고 불턱에서 퍼져 나갔다.  
"영순이가 마침 재미난 얘길 해 줄 참이었주."
 잠자코 앉아 태왁이나 만지던 영순이 드디어 자기 차례가 왔다는 듯 헛기침을 큼큼 했다.
"어제 내가 뭘 봤는지 아나?"
"뭘 봤는데?"
"도채비!"
 영순에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던 젋은 해녀들이 발끈하며 멀어졌다.
"난 또 무신 얘기랜. 애기도 아니고 도채비는 무신."
 특히 성녀가 불같이 화를 냈다. 도채비는 제주에 내려오는 설화 중 하나로, 도깨비의 일종이었다. 도채비가 나타나는 날에는 고기떼가 모여들고 마을에 풍년이 든다고 하지만 아이들에겐 귀신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내 두 눈으로 똑똑이 봤다난! 키는 나무만치 훌쩍 크고, 머리털은 노랗허고, 코는 삐쭉 
솟아그넹 아주 요상하게 생겨서라. 무엇보다 눈알이 퍼렇게 빛났다난!"
"치우라게! 난 또 뭐랜.. 물질 갈 준비나 허여."
 젊은 잠녀들이 곁을 떠나자 진짜라며 투덜거리던 영순도 물소중이를 챙겨 들었다. 그때 항아가 슬쩍 영순 곁으로가 물었다.
"그거… 양인 아닐까 마씸?"
"양인? 그게 무신 말이고?"
"쩌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마씸."
"에고, 난 그런 거 모른다게. 그런 말은 어디서 들어시냐?"
"용하가 경 그러던디……."
 갈수록 흉흉해 지는 세상에 용하는 이것도 문제다, 저것도 문제다 하며 항아에게 세상 소식을 말해주곤 했다. 
"물질 입으로 햄시냐? 무사 다들 경 서있나!"
 미적거리며 채비를 하던 잠녀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상군할망이 나타난 것이다. 불턱에 오자마자 수다 삼매경에 빠져서 채비를 하나도 못 한 항아는 허둥지둥 갈옷을 벗었다.
"오늘랑 날도 추운디, 항아 너는 쉬는 게 어떵허크냐. 숨도 짧은 애가 큰일 난다잉."
상군 할망 며느리 되는 채순 어멈이 항아를 다독였다.
"걱정맙서! 삼신 할망이랑 얘기 다 끝내고 왔으니까."
"삼신 할망이랑?"
 항아가 빗창을 닦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괜히 성가시게 헐거믄 따랑 오지도 말라!"
 항아의 대답을 들었는지 다시 한번 상군할망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걱정맙서. 성가시게 안할 거 마씸."
 항아는 입을 삐쭉 거렸다. 벌써 채비를 마침 잠녀들이 물가로 향했다. 항아도 바닷물에 쒜눈 한번 헹궈 쓰고 헤엄쳐 나갔다. 초봄의 바다는 잠녀들 물장구에 서늘한 온도를 데웠다.
"오늘랑 물살이 쎈디 괜찮으크냐?"
 앞서가던 성녀가 괜스레 뒤쳐진 항아에게까지 다가와 잘난 체를 했다.
"잠잠하기만 한데?"
대답과는 다르게 태왁을 붙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까불다 이어도 가주."
 성녀는 받아칠 틈도 없이 저만치 앞서가 버렸다. 이제 바다에 이는 물살마다 잠녀들이 넘실거렸다. 항아도 미역이나 베갈 생각으로 물속으로 머리를 처박았다.

*
"고거 따서 허기나 달랠 수 이시크냐?"
 한나절 물질이 끝나고 잠녀들이 다시 불턱으로 모였다. 잠녀들 망사리마다 해초나 소라가 가득이었는데 항아의 망사리엔 겨우 미역 몇 줄기뿐이라 앞에 내 놓기가 민망할 지경이었다.
"상군 할망은 그 깊은 바다에서도 숨 한번으로 잘만 헤엄 치는디 내 숨은 왜 이리 반토막이 났을까……."
"상군이 괜히 상군이냐게"
 성녀가 얄밉게 받아쳤다. 채순 어멈이 본인 망사리를 털어 캐온 것 반절을 항아에게 건넸다.
"하도 숨 막히는 시절이난. 너 낳슬 띠, 네 어망이 숨을 탁! 참고 낳아부난 경허지."
 채순 어멈 망사리가 가벼워지자 다른 잠녀 어멈들 역시 잡아온 소라 여러 개를 모아 채순 어멈 망사리에 넣었다.
"아니라. 저거 오라방 낳슬띠 하도 진을 빼노난 저거 낳슬 띤 덜 야물게 만든거라게."
 항아의 집 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어멈들이 한마디씩 말을 거들었다. 그때 상군 할망이 들기도 무거울 만큼 가득 찬 망사리를 끌며 불턱으로 다가왔다.
"모르는 소리 말라. 숨 길어봐사 물질 밖에 더 하크냐? 물질 허지 말라고 삼신 할망이 복 준거라게."
"제주 지집애가 잠녀 안하민 뭐행 살아마씸?"
 항아가 자꾸만 본인 망사리를 털어 항아에게 주는 어멈들 손을 마다하며 대답했다.
"누가 섬 지집애 아니랄카부덴."
다시 모닥불이 타오르고 오랜만에 가득 찬 망사리에 모두들 기분좋게 숨을 돌렸다.
그때 흥이 절로 났는지 노래 제법 하는 새댁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청색바다가 붉은 해 낳으면
파도 파도가 쌓이고
잠녀의 잠을 깨우네
잠녀의 잠을 깨우네
새벽 여명에도 참 푸르다
바다 널은 품 내어주네

집집마다 여인네들
갈고 하나 채롱 하나 들고
탐라의 잠녀들은
바다 속에서도 숨을 쉰다

거친 바다를 일구네
탐라의 생을 일구네

"

 동진이 떠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고 아버지의 병세는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벌써 한 사람의 몫을 해낼 만큼 커버린 항아는 오라비가 돌아왔을 때 훌쩍 자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멀리서 집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을 뻔히 알기에, 지금처럼 빈 망사리 말고 상군 할망만큼이나 가득 채운 망사리를 자랑하고 싶었다. 원래는 이왕 하는 거 밤낮으로 열심히 물질해 상군 잠녀가 돼 보자, 했지만 그 길은 멀어 보이니, 먼 바당에 나가 물질하는 것이라도 보여줘야지 다짐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