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당시의 남성성을 상징하다시피 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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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남자답게 행동하라는 것과 여성스럽게 행동하라는 것은 비슷한 듯 큰 차이를 보인다. 역경이 닥치거나 도전정신이 필요할 때는 '남자가 나서야 돼', '남자라면 할 수 있어'라며 남성의 주체성을 요구하는 반면 여성에게는 '여자는 조신해야 돼', '여자는 빠져있어', '뒤에서 서포트 해줘'라며 수동적인 태도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돌파하려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여성을 마주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 치곤 잘하네." 여성이 우악스럽게 혹은 강단 있게 행동하면 "넌 남자애같이 당돌하다"라며 칭찬하는 이 기형적인 성차별의 구조. 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맨박스를 벗어나야 한다. 남성은 초인이 아니고, 여성은 생각보다 강하다.
'맨박스'는 '남자다움'에 갇힌 피해자를 낳음과 동시에 자신보다 약자를 괴롭히는 가해자를 만든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여성은 남성중심적 시스템의 변두리에 위치할 수밖에 없고, 악순환의 중심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다. 예컨대, 어떤 남성이 여초 사회에 들어가는 건 '불편한' 수준이지만, 어떤 여성이 남초 사회로 들어가는 건 비교적 높은 확률로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가벼운 외모 품평부터, 카톡방 성희롱, 회식 자리에서 옆자리에 앉도록 강요하는 모습까지. 이미 남성의 시각으로 짜인 판에서 여성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이다. 일련의 과정들은 여성에게 충분히 곤욕스럽고, 차별적이다.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성차별은 없다고 말한다. 물론 여성중심적 환경을 경험하지 못한 남성들이 이 구조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남성들이 바뀌지 않으면 남성 본인들이 가진 부담과 고통도 줄지 않는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자는'으로 시작하는 모든 언어를 의심하고 그 뜻을 재정립해야 한다.
동시에 '여자는'으로 시작하는 언어도 똑같이 해체하고 바로 세우자. '여자의 적은 여자', '여자들이 원래 운전을 못 하지', '여자는 사치 부리는 걸 좋아해' 등 '여성성'을 규정하는 프레임은 더 약자의 위치를 가진 여성 집단에게 분풀이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해석할 여지가 없다.
그릇된 남성성에서 출발한 위계질서와 혐오문화, 이것으로 짜인 가부장제는 바뀌어야 한다. 성차별에 있어 소수의 '나쁜 남성'을 욕하는 것은 본인의 책임을 지우는 것 외에 어떤 구조적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는 남성에게 요구되는 '맨박스'가 어떻게 여성을 차별하는 것으로 이어지는지를 이해해야 하고, 그 '맨박스'를 강요하는 주변 남성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며, 여성과 약자들을 향한 공격을 멈춰야 한다. 그때 비로소 남자들도 지금 느끼는 사회적 압박과 책임감을 벗어던질 수 있다.
이제 그 남자다움을 버릴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