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태어난 곳 표지석
황정수
서울 경복궁 서쪽 지역을 보통 '서촌(西村)'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 이름은 고유한 지명이라기보다는 어느 지역에나 있을 법한 지리적 방향을 따라 지은 단순한 동네 이름이다. 그런 이유로 어떤 이는 이 지역 이름이 공식적인 지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이 지역을 조선시대에 한자로 '상촌(上村)'이라 했고, 우리말로는 '우대' 또는 '웃대'라 했으니 '상촌'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현재 이곳에 있는 한옥문화공간의 이름도 '상촌재(上村齋)'라 명명하였다.
한편에서는 이곳이 조선시대 위대한 임금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임을 들어 '세종마을'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 이곳 사람들은 서촌을 '세종마을'이라 부른다. 세종은 아버지 이방원이 보위에 오르기 전 이 지역에 있던 '준수방(俊秀坊)'에서 태어났다. 준수방은 조선시대 행정구역인 한성부 북부 12방 중 하나로 지금의 통인동, 옥인동 지역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이 지역의 지명이나 행사에 '세종'이란 이름이 자주 들어간다. 이렇게 왕의 이름을 따서 지으려는 것은 왕의 이름을 빌려 지역의 격조를 올려보고자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서촌'이란 이름으로 익숙해져 있는데, 굳이 다른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옳은가 싶다. 더욱이 민주화된 세상에서 군주시대 왕의 이름을 소환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본래 민중들이 가장 많이 불러왔던 '서촌'이란 이름을 쓰는 것이 가장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안평대군과 서촌
서촌은 세종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만 그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이 살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안평대군의 이름은 이용(李瑢)이고, 호는 매죽헌(梅竹軒)이다. 주로 '비해당(匪懈堂)'이란 호로 불린 당대의 명사였다. 세종에게는 8명의 대군이 있었는데, 그 중 안평대군이 학문과 예술 면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예민하고 영민한 능력이 오히려 세상에서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하였다. 맏형인 문종과 조카 단종, 그리고 둘째 형 수양대군 사이에 벌어진 정치적 소용돌이에서 불우하게 희생되는 삶을 살고 만다.
안평대군은 여러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세종의 북방 개척과 관련된 업무를 맡아 뛰어난 수완을 발휘하였으며, <치평요람(治平要覽)>, <운회(韻會)>, <의방유취(醫方類聚> 등 서적을 편찬하는 데에도 큰 힘을 더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출중한 능력을 보인 분야는 역시 예술 분야이다. 그는 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인 서예가 중의 한 명이다. 그의 글씨는 신비롭게 느껴질 정도로 높은 수준을 보였는데, 고려 말부터 유행한 조맹부(趙孟頫)의 '송설체(松雪體)'에 특히 뛰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