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녀, 완전범죄를 꿈꾸다

겨울밤 읽는 일본소설-<종이달>과 <나오미와 가나코>

검토 완료

이영미(hotnov)등록 2019.01.29 11:43
                          
당신은 착하고 선량한 시민인가? 교통규칙을 지키고, 법을 위반하지 않고, 쓰레기 분리를 착실하게 하고. 나는 열심히 살아 왔음에 불구하고 어쩐지 세상은 거꾸로 돌아간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가.
죄를 질렀지만 무사히 사회생활을 하고, 누구도 손댈수 없는 사회적 지위까지 오른다. 법의 테두리를 피해 거액의 상속을 하고 4조 5천억의 분식회계를 저질러도, 그는 물론 그의 회사도 무사하다. 평범하고 착하게 살아왔지만 내 삶에 끼어드는 부조리는 반복 된다. 스스로에 닥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걸까? 착하게산다는 것은 뭘까? 평온한 삶을 보내다 어느날 문득, 더이상 참지 못하고 도대체 이게 뭐냐고!라고 외치는 세명의 여자들의 목소리에 마음이 끌린다. 그런데 미리 얘기하자면 그들은 선량한 시민이었으나 지금은 범죄자다.

부자의 사치는 정당할까? 얼마나?  - <종이달>/ 가쿠다 미쓰요
 

<종이달>/가꾸다 마쓰요 ⓒ 예담출판사

 
허영과 사치에 빠져 근무하던 은행의 돈을 횡령한 여자 리카의 이야기. 쉽게 요약하면 이렇게도 될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을 그리 볼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메자와 리카. 그녀는 전업주부로 지내다 은행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하고, 성실하고 상냥한 태도로 고객의 신뢰를 쌓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고객의 돈에 손대고, 연하의 남성과 불륜을 맺는다. 횡령한 돈으로 '새로운 세계'와 만난다.  최고급 식기, 고급 시계, 연인에게는 최고급의 선물을 주고, 쾌적한 고급호텔 스위트룸을 이용한다. 물론 리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연말정산시기. 13월의 월급이라고 떠들어대는 언론이 불편하다. 한달치 급여에 상당하는 환급을 받으려면 급여는 꽤 높아야 한다. 세금을 냈어야 3,400백만원대의 미리 낸 세금을 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곧 설이 다가온다. 12월과 1월, 2월은 '마의 구간'이다. 연말연시에 쓴 대금이 날아오고 그것을 메꾸기도 전에 눈앞에 보이는 명절.  해마다 소파를 새로 장만해야지, 컴퓨터 바꿔야지, 하던 것은 다음으로 미뤄진다. 이게 보통사람의 삶이다. 백화점에 저렇게 넘쳐나는 화려한 옷과 신발, 최신 노트북을 척척 살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로 돈을 버는 걸까. 저 많은 물건들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종이달>의 평범한 주부 리카도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늘 빠듯한 일상, 고급품은 언감생심 꿈도 못꾼다. 남편은 언젠가 부터 아내에게 자신의 경제력 우위를 드러내며 무시한다. (돈이 뭐라고) 리카는 은행에 재취업하게 되고 고객의 집을 방문하여 수금을 하고 예금을 권하는 업무를 맡는다. 고객의 집을 방문해 보니 죽을 때까지 쓰지도 못할 엄청난 부가 쌓여있다.  고약한 노인의 손자는 대학등록금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  왜 누군가는 넘쳐나는 돈을 갖고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의 부유함은 정당한 걸까?  이 소설은 순간 수간 그런 질문을 한다. 돈이 돈을 벌어오는 자본주의에서 애초에 돈이 없었던 자는 결국 범죄를 저질러서야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주변에 널리 호화스러운 것들을 누리는 자들은, 과연 열심히 일해서, 착하게 살아서, 법을 잘 지켜서 누리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마음을 어쩐지 버릴 수가 없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이다- <나오미와 가나코>/오쿠다 히데오
 

<나오미와 가나코> ⓒ 예담출판사

 
이 소설은 폭력 남편을 그 아내와 친구가 공모해서 살해하는 이야기로  '일본 판 델마와 루이스'라 불리기도 한다. 여기 나오미와 가나코, 친구사이다. 가나코의 남편은 겉으로는 스마트한 은행원이지만, 아내가 양복을 제대로 다려놓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이다. 가나코의 몸과 얼굴에는 멍을 멈출 날이 없다. 친구인 나오코는 싱글로, 능력있는 커리어우먼이다. 부친이 모친을 폭력과 학대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가나코가 폭력에 시달리는 것을 알고, 남편 살해를 모의한다. 남편과 똑같이 생긴 중국인을 남편인 것처럼 정황을 꾸미고 중국으로 출국시킨다.  남편을 살해에 성공.

책의 상당 부분은 완전범죄를 꿈꾸며 범죄를 모의 하는 과정에 할애한다. 나오미와 가나코, 그리고 이들을 직, 간접적으로 돕는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는 생생하다. 어디에선가 꼭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의리있고, 듬직하며, 총명해서 친구로 지내고 싶은 인물들이다. 범죄소설 특유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지점은 긴장을 자아낸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사회문제를 짚어내는 오쿠다히데오의 따뜻함을 읽어낼 수 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매일 아내를 구타하고, 사소한 분노에 머리채를 휘어잡고, 밖에서는 반듯한 사람인 척하는 남편이 살해되고 오랜 공포와 고통에서 해방된 그녀를 보는 것은 통쾌하다. (그녀는 남편 살해 후 처음으로 편안하게 잠자고 생에 의욕을 가져본다.) 현실에서 법과 제도로 아무리 풀려고 해도 풀 수 없는 일을 소설은 구현해 낸다. 소설은 힘이 세다. 

달아나, 멀리
리카, 가나코, 나오미는 자신들을 힘들게 한 일본 땅을 떠나 멀리 달아났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자가 되었다. <종이달>의 리카는 묻는다. 누군가에게 넘쳐나는 돈을 왜 내겐 애초에 하나도 없었던 걸까요? 내가 평범하고 부자가 부자인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가나코와 나오미는 묻는다. 왜 일본사회(한국사회)는 매일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지켜주지 못하는 거죠? 폭력남편으로부터 이혼하기까지의 과정은 왜 어려운 거죠? 이혼한 젊은 여성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은? 도망나온 그 사회를 바라보면 그저 한숨이 나올 수 밖에. 
범죄 이야기 이지만 소설은 끝까지 차분하고 아름답다. 깔끔한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소설은 끝에 다다른다. 그녀들의 범죄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범죄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사회에 대한 분노는 공감하는 것이기에 소설을 읽는 내내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소설은 도덕교과서가 아니니까, 우리는 어떤 상상을 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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