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이면 돼

편의점

검토 완료

지영석(zikic)등록 2019.01.12 18:15
2010. 1. 15 PM 11:55
슬리퍼를 신고 뛰어가고 있다. 양말 신을 시간이 없었다. 12시까지 도착해야한다. 12시가 되면 사장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를 받기 싫어 뛰었다. 슬리퍼가 벗겨졌다. 관성 때문에 두걸음 더 나아갔다. 뒤로 돌아 신으려고 하는 순간 운동화가 그 위를 밟고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을 쳐다봤다. 고의가 아님을 증명하려는지 놀라는 표정을 하고 있다. 상대방은 어쩔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고 난 어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사람은 고개를 돌리며 죄송하다고 말하고 도망치듯 슬리퍼에서 멀어졌다. 슬리퍼를 신는 도중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들린다.
사장이다. 휴대폰 위에는 am 12:00라고 적혀있다. 한숨을 크게 쉬고 전화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오고는 있는거야?
네. 지금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응 알았다. 최대한 빨리 올수 있도록
난 거의 다 도착할 때쯤에 걸리는 시간에 맞춰 달려야 했다.

2010. 1. 16 am 12:05
사장은 POS에서 시재점검(계산한 금액과 현재있는 금액의 차이를 확인하기위한 점검)을 하고 있다. 난 오던 속도에 2배의 속도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죄송합니다는 말은 너무 많이 해서 되려 뭐라할 것 같다. 난 숨을 헐떡이며 손을 무릎위에 올리고 최대한 괴로운 표정으로 죄송하다는 말조차 나오지 못할 호흡을 했다.
오늘 핫팩이 들어올거야. 참고해.라는 말만하고 사장은 밖으로 나갔다. 수고하셨습니다를 최대한 힘을 주어서 말했다. 난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바코드를 찍고 주머니에 있는 500원을 돈통에 넣었다.

어서오세요.
오줌냄새가 편의점에 진동한다. 남자노인이다.
"디스플러스줘!" 누런 치아를 보이며 말한다. 오면 항상 같은 말이다. 2100원입니다.
나중에 줄게! 바로 앞에 있는 내가 멀리 있는 것처럼 큰소리로 말했다.
손님 저번에도 저한테 담배 외상하셨잖아요. 그거부터 갚으세요.
남자는 내 말을 듣는지 마는지 저번과 똑같은 말을 했다.
외상한다고 무시하는거야? 내일 준다고. 바쁘니깐 빨리 내놔
남자가 말하는 도중 거품이 부푼 하얀침이 내 유니폼으로 떨어졌다.
그 때도 그러셨잖아요. 그 돈부터 갚고 오세요. 말을 마치자마자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를 했다.. 남자는 한참 날 쳐다보다가 욕을 지껄이며 나갔다.
옆에 있는 휴지로 유니폼을 닦았다. 침이 닿지 않게 휴지를 조심히 버리고 비누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편의점에서 근무한지 6개월. 집에서 10분정도 걸린다. 면접보러갈때 익숙한 장소임에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시급은 적지만 손님이 많이 없을 것 같아 면접볼 때 최대한 착한척과 성실한 척을 했다.
새벽 2시가 넘어가면 조용해진다. 이 시간을 위해 진상들을 견뎠다.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아무도 없는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am 07:14
안녕하세요.
아침마다 오는 여고생. 항상 커피를 사가는데 밝은 표정으로 인사한다. 내가 처음 계산 실수해서 오래 기다려야하는 상황임에도 그녀는 한마디 불평없이 기다렸다. 고마운 마음에 커피를 한번 사줄까도 생각했는데 부담스러워할까봐 참고 있다. 내가 할수 있는 건 밟은 표정으로 인사를 받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계세요.
잘가요. 조심히 가요.
무례한 손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버틸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am 08:20
집으로 돌아갔다. "아들왔어?" 난 정면만 바라보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 엄마 인사하는데 무시하는거야?" 컴퓨터를 했다. 1초라도 빨리 음악을 틀고 이어폰을 끼고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해서라도 엄마를 음악으로 덮어야 한다.

2009. 2. 4
직장에 들어갔다. 업무는 어렵지 않았다. 잘못된 부품을 찾고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된다. 직원중 동갑인 창구가 있었다. 들어온지 한달정도 된다고 한다.창구는 말도 잘하고 일도 잘했다. 나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도 편하게 하자고 먼저 제안했다. 일이 두달넘어갈때쯤이었다.
나와 창구가 출근길 입구에서 만났다. 창구가 팀장에게 인사했다. "어 창구 왔어" 밝게 웃는 팀장. 나도 같은 반응을 기대하며 웃으며 인사했다. 어. 라는 말과 동시에 의자를 책상안쪽으로 깊숙이 밀어넣었다. 난 억지 웃음을 지으며 내 자리로 갔다. 정수기에서 물을 뜨고 업무 준비를 했다. 부품들을 내 자리에 쌓아놓고 컴퓨터를 켰다. 부품을 미리 확인하는데 아까 내 인사를 건성으로 받은 팀장 얼굴이 부품과 겹쳐보였다. 
일하는 도중 창구 실수를 했다. 팀장에게 보고하니 팀장은 응. 알았어 가봐.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반응했다. 20분뒤 나도 같은 실수를 했다. 나도 같은 반응을 기대하며 말했다. 야 너 진짜. 아니 너는 이거 잘못하면 그만이지만 나는 수습하는데 한 동안 시간 걸린다고. 똑바로 좀 해라 제발. 한번 더 같은 일 생기면 그 때는 너가 수습해라. 난 고개를 숙여 죄송합니다라고 한 후 자리로 들어갔다. 창구를 쳐다봤다. 창구는 묵묵히 일하고 있다. 그런 창구를 한참 쳐다봤다.

다음날 아침. 8시 40분에 눈에 떠졌다. 출근시간은 9시. 안씻고 뛰어서 택시를 타고 가도 9시 30분정도에 도착할 것이다. 휴대폰을 꺼내서 주소록에 팀장 번호를 찾았다. 번호를 찾고 전화를 할려고 했다. 그러자 팀장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는 얼굴이 아니라, 나에게 화를 내던 얼굴이 아닌 창구에게 보여준 웃는 얼굴. 그 얼굴을 떠올리며 휴대폰을 다시 쳐다봤다. 뒤쪽에 있는 전원버튼을 길게 눌렀다. 다시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난 방에서 컴퓨터하고 있다. 부모의 소리가 마루에서 들렸다.
당신이 오냐오냐 키우니깐 이런 일이 일어난거 아니야.
왜 나한테 그래요. 그러는 당신은 뭐 했어요.
당신이 오냐오냐해서 저렇게 나약해진 거 아니야. 저런 나약한 정신상태로는 사회생활 어떻게 하겠어.
내가 언제 오냐오냐했어요? 오냐오냐는 당신이 더 많이 했지.
이년이 어디서 말대답이야!
물건이 부서지는 소리와 엄마의 비명이 들린다. 난 헤드셋을 썼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볼륨을 최대로 키웠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볼륨임인데 마루에서 들리는 소리를 덮을 수는 없었다.

6개월. 일하지 않았다. 배고프면 편의점에 가서 사먹고 나머지 시간은 잤다. 담배피우러 밖으로 나가는데 엄마를 만났다.
카미야.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일해라. 할머니도 걱정하고 난리 났어. 너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니? 빨리 뭐라도 해 제발. 전에 일하던 부품 고치는덴가. 거기가서 죄송하다고 싹싹 빌고 다시 일해. 인간처럼 살아 제발.
아들의 우울, 슬픔, 분노, 초라함, 위축의 감정보다 일하는 아들이 부모는 더 중요했다. 한달동안 씻지 않던 내가 샤워를 했다. 난 사람들과 소통이 적은 일을 알아봤고 부모와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2010. 1.17 am 06:40
아저씨. 담배. 말보루 라이트 주세요. 야 시원한 음료수 하나씩 사먹어라!
나이가 앳돼 보이는 얼굴을 한 손님들이 4명정도 왔다.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앞에있던 사람이 정색했다. 야. 이 아저씨가 신분증 검사한다. 저희 20살 졸업한지 기억도 안납니다. 빨리 계산해주세요. 신분증 확인 안되면 판매할수 없습니다.
참. 웃기네 이 아저씨.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준다. 자자. 여기 여기 됐지? 빨리 계산해주세요 빨리.
편의점안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나갔다. 기분이 나빠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여고생이 들어온다. 평소처럼 반갑게 인사한다. 나도 웃음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똑같이 커피를 집어서 카운터에 내려놓았다. 계산하고 잘가요 인사하는데 도저히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그녀도 내 표정을 보고나서 놀란표정을 지으며 평소와 다르게 90도로 인사하고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아까 그 인간들만 아니었어도. 왜 애꿎은 친절한 사람들에게 이 피해가 가는걸까. 아까 4명의 얼굴들을 최대한 기억하려 애썼다. 내가 아무것도 잃을 게 없을 때 길거리에서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생각하며 얼굴을 기억하려 애썼다.

am 7:30
퇴근하고 집에 가서 냉장고에 있는 치킨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 퇴근하기전에는 매대 정리와 혹시 깜빡한거는 없나 확인한다. 확인하는 도중 손님이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2500원을 카운터에 던지며 말한다.심플! 담배 심플! 빨리빨리! 횡단보도 건너야 한다고!
난 놀라서 몸을 뒤로 돌아 심플을 찾는다.
빨리! 아 답답하네 이 양반! 지금 파란불 깜박거리고 있잖아!!
평소에 잘 알고 있는 위치임에도 당황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빨리 빨리. 파란불 꺼진다 꺼진다 꺼진다 빨리 빨리.
다행히 눈에 보였다. 한갑을 꺼내서 잽싸게 카운터에 놨다.
늦으면 다 당신 때문이야! 심플을 집고 건널목 쪽으로 달려간다. 난 한숨을 쉬고 자리에 앉았다.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가방에 있는 물과 담배를 꺼냈다. 물을 한모금 마시고 밖으로 나갔다. 담배를 피우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여기는 혼자 일하는 거니깐. 저런 사람들 잠깐만 참으면 되니깐 그만둘 생각하지 말자. 담배를 다 피우기도 전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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