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청년예술정책 : 안정과 불안정의 공존을 위해

서울청년정책LAB?청년정책칼럼?#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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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seoulyouth2014)등록 2019.01.02 16:36
 (장애)청년예술정책 : 안정과 불안정의 공존을 위해1)

                                                                                                                                   문영민2)

최근 공연예술계는 대학로 X 포럼(2014년 초 서울연극제 대관 탈락 사태 이후 조직)을 시작으로 조직적 미투 운동을 거치며 조성된 다양한 청년예술가들의 연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연대는 청년 예술 네트워크로 활성화되어 '느슨한 연대'를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청년예술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새로운 청년예술 문화는 청년 세대의 가치관 변화와 맞물려 이전 세대의 예술 문화와는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프로젝트성과 자발성을 가진다는 점, 그리고 매체의 확장을 꾀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불안정성을 갖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주로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장애청년예술 분야의 사례에서 그 변화의 양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러나 이 변화는 '장애예술'의 정체성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는데, 장애청년예술 활동은 청년예술 문화의 토양 위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이 원고는 2018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에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프로그램 개발 연구"에서 수집한 자료를 활용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2)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 프로젝트 극단 0set 배우
"오늘 연극할 사람 모여라!" - 프로젝트성과 자발성

2017년 4회 페스티벌을 맞았던 '이십할 네트워크'는 20대 연극인으로 대상이 제한된 페스티벌로 데뷔를 하지 않은 연극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과정은 오직 SNS로만 구성된다. "나이 제한 20대, 연극할 사람 모여라"는 메시지로 모여 마로니에 공원에서 페스티벌을 열고 헤어진다. 이 네트워크는 어떤 기준이나 목표 없이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구성한다는 점, 그리고 단기 프로젝트를 위해 모였다가 헤어져 각자의 삶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프로젝트'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제3 정거장의 활동. 다양한 아트 미켓에서 청각장애인 예술가의 미술 작품을 판매한다. ⓒ “제3 정거장” 참여작가 김은설

 
최근 주목할만한 장애청년예술 네트워크 중 하나는 청각장애인 미술가 네트워크인 "제3 정거장"이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디자이너로, 학생으로, 예술가로 일하다가 작품 판매나 예술 시장 참여가 필요할 때 결합하여 함께 작업하거나 작품을 판매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네트워크의 이름이 '정거장'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참여 예술가들은 '정거장'에 머무르거나 떠날 수 있고,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 있다. 참여 예술가들은 "제3정거장"을 지지대로 해서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고, 활동을 지속할 수도 있고, 또 다른 활동의 시작을 도모할 수도 있다. 모임과 헤어짐을 반복하면서도 이 네트워크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셀럽파이브의 구호 “누가 시켜서 하냐, 내가 좋아서 하지” ⓒ JTBC “아는 형님”

 
웹툰작가 라일라와 유튜버 구르님 – 매체의 확장

문화예술진흥법 제2조1항이 정의하고 있는 문화예술은 "문학,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영화, 연예, 국악, 사진, 건축, 어문 및 출판"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최근, 이 카테고리로 캐치되지 않는 장르의 활동들이 청년 "예술"의 범위로 포섭되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수만 명의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는 '웹툰'의 영역이다. 장애청년예술가 중 잘 알려진 웹툰 작가는 '나는 귀머거리다'의 작가 라일라가 있다.
  
청각장애를 가진 라일라 작가는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에서 청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유쾌한 내러티브와 귀여운 그림체로 그려내며 다양한 독자층의 사랑을 받았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웹툰'이라는 장르에서의 장애예술가들의 활동은 파급력이 크다. 라일라 작가는 청각장애인 중 수화만 쓰는 사람이 아니라 구화를 쓰는 사람이 있으며 이들에게 수화가 아니라 필담을 통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에피소드의 웹툰을 그린 후 카페에서 필담으로 질문을 하는 직원들이 늘어났다고 이야기하며, 본인의 웹툰이 갖는 영향력을 확인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링크1]나는 귀머거리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59934

"평범한 여고생" 장애인 유튜버 구르님의 활동도 주목할만하다. 휠체어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하거나, 한복을 입고 민속촌에 놀러가는 등 여고생의 '평범한' 일상을 소개하는 구르님의 채널은 1020 여성들 사이에서 핫한 편이다.

다만 이렇게 다양한 미디어로 확산되고 있는 (장애)청년예술가들의 활동을 어떠한 범주로 묶어낼 수 있을 것인가(혹은 묶어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현재 장애예술 지원사업은 문학, 미술, 음악, 공연 등 지원사업 신청 시 활동이 명확한 범주를 가질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웹툰 작가나 유튜버가 장애예술 지원사업에 지원하고자 하는 경우 어떠한 이름을 가져야 할까? 좀 더 상상력을 가진 내용과 범주의 확장이 필요하다.

[링크2]장애인 유튜버 구르님의 채널 "굴러라 구르님" 
https://www.youtube.com/channel/UC12vNJwcWTzdHAknAPn7dUw

불안정성을 지원하기

기성 장애예술가들은 단체 혹은 협회 등 '하나의 공간'에 뿌리를 내리고 작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단단한 공간은 장애예술가가 '예술가'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창작 활동을 하는데 기반이 된다. 노동과 사적 영역에서 이미 불안정을 경험하고 있는 청년예술가들이 단단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안정성'의 토대를 확충하는 지원이 필요하다. 예컨대 현재 진행 중인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3)" 등 예술인을 지원하는 사업들이 좀 더 장기적으로 예술가들의 안정적 창작의 기반이 되도록 개선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예술이 여타 노동 활동과 가장 명확하게 구분되는 점은 불안정성을 갖는다는 점이기도 하다. 3개월의 공연 준비, 3개월의 공연을 하고 3개월간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배우의 노동은 주5일 9시에서 18시까지 일하는 사람의 노동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노동이 가지는 시간과 공간의 불안정성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현재 장애예술 지원사업은 전문적 장애예술가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므로 지원자들이 단체에 소속해 있거나, 연속적인 예술 경력을 가지고 있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한시적 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예술가들은 고유번호증을 가진 '단체'에 소속해 있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예술과 동떨어진 직장에 다니며 틈틈이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지원사업이 요구하는 단체의 소속이나 일정 수준의 경력을 가지지 못하므로, '안정성'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에도 접근하지 못한다. 따라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동시에 이들이 불안정성 속에서도 창작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장애청년예술가들의 사업 지원시 요구사항을 완화하는 등의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장애청년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이 '장애예술'의 바운더리 내에서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반복해 언급한 것처럼 현재의 장애청년예술가들의 활동은 새로운 청년문화의 토양에서 태동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최초예술지원사업', '유명예술지원사업', '서울시 청년예술단', '민간청년예술 공간지원', '서울을 바꾸는 예술 Y' 등이 서울시에서 청년예술을 지원하기 위한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고, 이 사업들로 인해 경력이 없어 각종 지원사업에서 소외되었던 청년예술가들이 경력을 쌓고 창작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청년을 위한 예술사업 중에서 장애청년예술가들을 위한 지원 사업은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예술가들은 기성 장애예술 지원사업에서도, 청년예술 지원사업에서도 차별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예술 지원사업이 청년예술가의 '불안정성'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역시나 장애청년예술가들도 이 불안정성 속에서 실패를 경험하고, 새로운 창작을 시도해볼 수 있어야 한다. '청년예술' 영역에서도 장애청년예술가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들이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3) :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사업으로 예술인에게 사회적 협업의 기회를 제공하여, 다양한 예술직무 영역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문화의 창조성을 사회의 전 부문에 접목시켜 예술인의 사회적 가치가 확대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출처 :뉴스페이퍼)
덧붙이는 글 해당 칼럼은 서울청년정책LAB 블로그 및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12월 9일 발행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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