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ow but Sure, 효율적인 진로 탐색과 미래설계를 위해

서울청년정책LAB?청년정책칼럼?#23

검토 완료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seoulyouth2014)등록 2018.12.31 15:21
                                                                                                                                       소홍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생소하고 의아한 정책제안

작년 2017년 7월, *서울 청년의회에는 전국각지에서 모인 청년의원들과 서울시 시장님을 비롯한 시정공무원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갭이어(Gap year) 분과'라는 다소 생소한 분과가 제안했던 '서울형 갭이어' 정책제안에 귀를 기울였다. 당시 갭이어 분과는 우리 사회의 '멈춤을 허락하지 않는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지금의 삶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고 싶어 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청년의회 : 서울청년네트워크와 서울시의회 청년발전 특별위원회가 공동으로 주최, 제안된 10대 정책은 청정넷(청년정책네트워크)회원들이 토론해 선정된 것이다. 청년의회에서 제안한 10대 정책은 일자리뉴딜, 갭이어, 마음건강, 시민교육, 부채, 교통, 장애인, 주거, 니트수당이다. 
*갭이어(Gap year) : 학업을 잠시 중단하거나 병행하면서 봉사, 여행, 진로탐색, 교육, 인턴, 창업 등의 활동을 체험하며 흥미와 적성을 찾고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기간.(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이게 내 일이 맞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 일인 걸까. 다른 일은 한 번 해보는 게 어떨까." 
"대학 가면 다 해결된다고 해서 공부 열심히 했더니 이게 뭐지. 나는 뭘 해야 하는 거지?"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을까? 어떤 일이 나에게 맞는 일이지?" 
                                                                         - 2017 서울 청년의회, 갭이어 분과 발제 내용 중 
   
위와 같은 질문들은 스스로 그리고 주변 친구들에게 한 번쯤 해봤을 법한 질문들이다. 취업에 성공하기 전, 나의 진로를 선택하는 것부터가 너무나 막막하다. 실제로 청년 3명 중 2명(73%)은 자신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취업/진로'를 꼽았으며, 청년 2명 중 1명(57%)은 취업 준비에 대한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1) 또한, 학교를 졸업한 미취업자가 구직활동에 있어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 1위는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잘하는가를 모른다는 점(23.6%)'이라고 한다. 2)

1 [취업/진에 대한 청년층 인식 조사 - 2015 찾는 청년버스 참자 설문사 과고서, 학일20대 연구소, 리서치팩토리, 2015. 12.
2 [20대 청년 후기 청소년 정책 중장기 발전전략 연구],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6
 

2017년 7월에 진행되었던 서울 청년의회의 모습 ⓒ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갭이어 분과의 청년들은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생소하고 의아한 정책제안을 한다. "청년들을 위한 000개의 일자리 창출이 필요합니다.", 또는 "취업 성공패키지 기간과 혜택을 확대해 주세요"가 아닌, "우리에게는 갭이어가 필요합니다."라고. 보통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의 진로 탐색·미래설계를 위해서 언급되었던 정책과는 확실히 다르다. 
   
왜 갭이어 분과는 청년의 진로 탐색·미래설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갭이어를 제안했던 것일까? 
   
여유(슬랙, Slack), 변화와 재창조가 일어나는 시간 
그간 우리 사회를 이끌어왔던 가장 중요한 동력원 중의 하나는 '빨리빨리'였다. 뭔가를 하나 하더라도 남들보다 빨리해야 하며 먼저 앞서나가 있는 것이 성공한 삶, 즉 '효율적인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을 설득할 만큼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잠시 경쟁에서 벗어나 쉼을 갖는 것은 하면 안 되는 발칙한 생각처럼 여겨졌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은 내가 게을러지거나 나태해져 드는 쓸데없는 생각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나를 돌아볼 쉼이 없이 열심히 달려서 목표했던 대학에 입학하거나 사회로 진출은 하게 되었지만,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너무나 난감한 질문에 부딪혀 엉거주춤 멈춘 채 발만 동동 구르게 된다.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목적지가 어디였지?"
 

slow but sure, 느리지만 확실하게 ⓒ 구글

 
 우리는 빠르게 사는 것만이 효율인 줄 알고 있었으나, 그 결과 청년세대는 다시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잘하지?'와 같은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되었다. 스펙을 쌓고 취업을 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그 제일 앞단에서 내가 누군지를 알고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내가 원하는 '업종·분야', '직무', '일 가치관' 등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한 준비, 즉 '자립'과 '자존'은 꼭 필요하다. 내가 스스로 주도하여 진로를 탐색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 컨설턴트로 유명한 톰 드마르코는 여유(슬랙, Slack)를 재조명한다. 조금 천천히 일하더라도 제대로 일하자는 의미의 여유(슬랙, Slack)는 원래 조직 행동과 조직문화와 관련된 개념이다. 톰 드마르코의 '빨리빨리'는 단순히 일을 처리하는 수단을 넘어서 조직의 미션과 목표를 대체해버리는 정신이 돼버렸다고 지적한다. '빨리빨리'라는 잘못된 효율만을 강조해왔던 관리자들에게 조직에 여유의 중요성을 일깨워줬다. 하지만, 톰 드마르코의 지적은 단순히 현대 조직들을 위한 경영 컨설팅 정도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쉼 없이 빨리 달리는 것을 미덕처럼 여겨왔던 우리 사회와 청년세대들에게 이제는 좀 여유를 가져보라는 말을 건네는 듯하다. 조직이 바쁘게 일하는 것과 성공은 서로 상관관계가 없듯이, 내가 바쁘게 나아가는 것만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유는 빨리빨리 정신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점을 바꾸는 역할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이 언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조직들은 변화와 재창조 능력이 없다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이때 변화와 재창조 능력을 할 수 있도록 조직을 숨 쉬게 만들 수 있는 데에는 여유가 필수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효율적인 사람은 너무나도 바쁘기 때문에,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경우 그 일에 즉시 대응할 수 없게 된다. 효과적이기 되기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여유(슬랙, Slack)가 있어야 한다. 이 여유가 있어야 급변하는 내외의 조건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 톰 드마르코의 책, '슬랙' 중 
   
 변화와 재창조하는 능력은 단순히 조직에만 필요한 역량은 아니다. 청년들이 올바른 진로 탐색·미래설계를 하기 위해서 요구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의 진로 가치관 및 기준은 늘 바뀌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변화가 생길지는 예측할 수 없으며, 나 스스로 진로에 대해 명확한 목표가 있다고 해도 외부의 환경이 급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쉼과 여유는 청년의 진로 탐색·미래설계를 위해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며, 이제 청년 스스로와 사회는 여유가 창출 할 수 있는 효율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하지만 쉼과 여유가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으나, 막상 내가 '갭이어를 가져볼까?'를 생각해본다면 여전히 막막한 질문들로 가로막혀진다. 
   
"돈은 어디서 나서? 돈 모으려고 아르바이트만 하다가 갭이어 다 보내는 거 아니야?" 
"난 갭이어를 어떻게 보낼지도 잘 모르는데, 막상 하게 되면 온종일 스마트폰만 할 것 같은데?" 
"무턱대고 쉬었다가 이력서에 공백 생기잖아, 면접할 때, 나한테 뭐 했냐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휴학 한 번 하려면 교수님이랑 부모님부터 설득해야 하는데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인사담당자 : "쉬면서 뭐 했어요?" / 나 : "갭이어 보냈습니다. (당당)" 
 얼마 전이었던 11월 15일 저녁, 청년 인생 설계학교(이하 '청년학교') 프로그램 중 소셜디자이너 경험 과정(이하 '소디')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공유회가 열렸다. 서울형 갭이어를 위해 도입된 교육프로그램인 청년학교는 안에는 청년들의 진로 탐색과 미래설계를 위해 다양한 교육·여행·인턴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있고, 그 중 소디에 지원한 청년들이 한자리에 모여 8주간의 경험 동안 느꼈던 생각과 소회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청년학교는 위의 갭이어 분과에서 제안한 정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교육프로그램이다.
   
"경험이 나를 살찌운다면, 포동포동 살이 아주 잘 오른 석 달이었습니다." 
                                    - 청년 인생 설계학교 소셜디자이너 경험 과정에 참여했던 청년의 소회 중 
   
청년학교 참여자들은 3개월간 자신이 주도하는 갭이어를 보낼 수 있도록, 청년학교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인문학 수업, 요리 수업, 미니 인턴, 여행, 직업탐색 등) 중에 자신이 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함으로써 나만의 갭이어를 보낸 것이다. 처음 시행이 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갭이어의 가치를 잘 드러내고 있는지, 참여자들은 어떤 것을 느꼈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래도 갭이어를 위해 시도된 청년학교가 주는 그 의미는 크다.
 

청년 인생 설계학교 중 소셜디자이너 경험 과정 프로그램의 첫 시간 ⓒ 소홍수

 
내 진로 탐색·미래설계를 위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이행하기 위해 내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 그리고 공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쉼과 여유는 더 그러할 것이다. 작년 갭이어 분과는 서울형 갭이어를 주장하면서, "쉬면서 뭐 했어요?"라고 물어볼 수 있는 인사담당자에게 당당히 "갭이어 보냈습니다."라는 답변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수 있는 사회적 시선과 인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공적인 자원을 투입하면 내가 쉴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얻는 데 필요한 '물질적인 지원'은 물론, '쉼을 잘 보낼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또는 프로그램)', 그리고 같은 쉼을 보내고 있는 청년끼리 '소통과 연대' 등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이 주는 힘과 메시지다. '청년들이 잠시 쉬어가도 된다는 것', '나를 되돌아보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개인이나 민간영역만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공공의 영역, 정책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Slow but Sure, 효율적인 진로 탐색과 미래설계를 위해 
정리하자면, 나 또는 청년들의 효율적인 진로 탐색과 미래설계를 위해서는 쉼과 여유가 필요하다는 점을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쉼과 여유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넘어 공적인 자원을 투입해 적합한 정책과 지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래와 같이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할 약속들도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 
   
쉼, 여유 또한 스펙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느 순간 여행 또한, 나의 자소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스펙과 도구가 되어버렸다. 쉼과 여유 또한 청년들의 취업률이나 경제성장을 위한 수단처럼, 앞뒤가 뒤바뀌어 버리는 가치전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어디까지나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고 의미 있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효율성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그리고 서울형 갭이어에도 갭이어 시간이 필요하다. 서울형 갭이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올해 처음 시행되어 이제 막 마무리가 된 청년학교를 잘 점검하고 평가해야 한다. 청년들이 진로 탐색·미래설계를 위해서 시간과 기화가 필요한 것처럼, 더 나은 갭이어를 보낼 수 있도록 서울형 갭이어도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장미가 다른 수많은 장미보다 왜 더 소중한지 그 이유를 깨닫게 된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쏟은 시간이란다."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열심히 나의 진로 탐색·미래설계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나의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이 소중해질 수 있도록 충분한 쏟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생겼으면 한다. 
 

“네 장미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만든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쏟은 시간이란다.” ⓒ 글반장

 
덧붙이는 글 해당 칼럼은 서울청년정책LAB 블로그 및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11월 23일 발행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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