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파리 1차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연합뉴스/EPA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
같은 시각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이던 마크롱은 파리에서 벌어진 노란조끼들의 세 번째 집회 소식을 듣고 이렇게 반응했다. 그의 반응에 많은 프랑스인들은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태도로 응수한다.
시위대가 드러낸 이 전례 없는 폭력은 어디서 왔는가? 저명한 사회학자 부부인 팽송-샤를로는 "노란조끼들이 시위 중 드러낸 폭력은 매일 우리가 겪는 억압에 대한 대답이었다"라고 답했다. 이 대답은 자극적인 사진을 걸고 시위대를 꾸짖는 모든 기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시민들의 대응 논리이기도 했다. 그동안 시민들이 일상에서 하루하루 강탈당하고 굴욕감을 느끼며 마주한 거대한 국가폭력에 비하면 시위대의 폭력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들은 말한다.
역사학자 제라르 누아리엘은 "중세 때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회적 투쟁엔 폭력적 저항이 동반되었다"라며 "1789년 혁명부터 파리코뮌에 이르기까지, 민중들은 자신이 가진 무기로 그들을 배반한 대리인들을 끌어내렸다"라고 말했다. 오늘의 시민운동이 시민혁명의 기운을 그대로 담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프랑스가 역사상 지금처럼 부자인 적은 없었다. 동시에 프랑스의 부가 지금처럼 불평등하게 분배된 적도 없었다."
프랑스의 좌파 정치인 제라르 필로쉬의 말이다. 지난 2008년 사르코지 정권 때부터 정부는 경제위기를 말하며, 시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한국이 IMF 경제위기 때 그랬듯이 고통을 짊어지는 것은 오직 직장인과 영세상인, 노동자들 뿐. 대기업들은 정부가 시행하는 노동법 개악으로 쉬운 해고와 정부지원금, 기업분담금 축소라는 선물만 가져갔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프랑스에서 가장 부자인 500인의 자산은 12배로 늘어난 반면, 빈곤층으로 새로 전락한 사람은 60만 명에 달한다. 노숙자 수도 50%나 증가했다.
정부는 '위기를 긴축으로 넘겨야 한다'는 논리로 복지를 차곡차곡 축소했다. 교육시설과 병원, 연금이 줄어들었고 공기업들은 민영화됐다. 슈퍼리치들은 그들이 벌어들인 돈을 고용을 위해 재투자하는 대신 세금도피처에 쌓아 놨다. 지금 세금 도피처에는 이들이 은닉한 돈 800억 유로(105조 원)가 잠자고 있다.
정치 신인 마크롱의 대선 캠프에 후원금을 낸 사람은 고작 913명. 그러나 그가 거두어들인 돈은 630만유로(약 820억)다. 1인당 평균 9천만 원을 낸 것이다. 이 후원자들의 공통된 이름은 바로 슈퍼리치. 마크롱은 당선 직후, 부유세를 폐지함으로써 이들에게 화끈한 보은을 했고, 지난 18개월 동안 오직 그들을 위해 통치를 했다.
이 와중에 마크롱 부인은 50만 유로(약6억5천만 원)를 들여 엘리제궁의 연회실을 새로 꾸미고 있다. 단두대에서 처형된 루이16세와 마리 앙뜨와네뜨의 향기가 그들에게서 풍긴다.
"유일한 해답은 사회적 정의뿐"
지난 주 노란조끼들은 인터넷 투표를 통해 그들의 요구사항 47개를 결정해 발표했다. 그중에 핵심적인 요구사항 15개는 이렇다.
1. 노숙자 0 사회: 2017년에 집계된 노숙자 수는 14만3000명
2. 주택 단열 지원: 환경오염과 온실가스의 주범이 주택난방이므로
3. 사회임대주택 건설 증대, 집세 인상 제한
4.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누진적 소득세율 부과: 현 5단계에서 14단계로
5. 다국적기업/대기업에 높은 과세, 중소기업/영세자영업은 저과세
6. 유류세 포함 모든 간접세 인하
7. 최저임금 인상: 현 세후 1150유로(150만원)에서 세후 1300유로(170만원)로
8. 남녀 동일 지위, 동일 임금.
9. 국민연금 월수령액 하한선 인상: 현 630유로(82만원)에서 1200유로(156만원)로.
10. 난민신청자들에 대한 인도적 대우 : 주거와 안전, 음식, 미성년자들에겐 교육
11. 임금 상한선을 15,000유로(1950만 원)로. 즉 최저임금의 20배
12. 긴축 경제 끝내고, 세금도피처에 은닉된 800억 유로(104조 원)를 찾아 과세할 것.
13. 직접 민주주의 확대 : 국민투표/지역주민투표로 주요 정책 사항 결정.
14. 선출직 공직자에 대한 특권 폐지: 국회의원, 대통령 등
15. 마크롱이 없앤 부유세 재가동
마크롱은 유류세 인상이 마치 환경보호를 향한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양 둘러댔고, 노란조끼들의 요구를 '생각 없는 자들의 철없는 요구'로 일축했었다. 오히려 노란조끼의 요구에는 실질적인 친환경 대안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무엇보다 핵심을 이루는 사안은 부자들에게 돈을 거둬들이고, 그 돈으로 더 많은 복지를 행하라는 요구다. 달리 말하면, 모두에게 존엄한 삶을 누리게 하라는 주문이다. 난민 신청자들에게 인도적 대우를 할 것을 핵심요구 사항에 올리면서, 이들이 극우 무리라는 억측도 잠재웠다.
이미 지난주부터 고교생들이 집회에 합류하기 시작했고 대학생과 노조도 같은 요구를 하며 반정부 투쟁을 함께 하기로 했다. 지난 3일 보건부 장관은 예치금 4억1500만 유로(5400억)를 당장 공공·비영리 의료시설에 투입하겠다고 밝히면서 정부가 시민들 요구에 한발 물러서는 첫번째 신호를 보냈다. 이어 4일에는 총리가 1월로 예정된 유류세 추가 인상과 전기, 가스세 인상등을 보류하겠다고 발표했다. 강경했던 입장에서 물러나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아직 싸늘하다. 총리가 내놓은 양보안에 노란조끼는 "우린 빵 부스러기를 원하지 않는다. 바게뜨를 통째로 원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정도에서 타협을 시도하려는 총리의 대화제의를 거절했다. <르몽드>는 4일자 사설에서 "오만과 언어 도발을 지속해온 마크롱이 지금의 덫에 스스로를 가뒀다"고 평했고 <위마니떼>는 "오늘의 혼란에 대한 유일한 해답은 사회적 정의뿐"이라 답한다.
마크롱이 자신의 독선과 오만을 깨닫고,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답할 때에만, 오늘의 소란은 평화로 마무리 될 것이다. 프랑스 시민의 신음은 신자유주의라는 공통의 지옥에 놓인 모든 지구촌 시민들의 신음과 닮아있기에 노란조끼 운동은 벨기에, 네델란드, 독일로 급속히 번져가고 있다. 언제든 용감을 한번씩 뿜어내곤 하던, 유럽의 활화산 노릇을 해왔던 프랑스가 68혁명 50주년이 지나가기 전 다시 한 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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