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책 《산시로》를 읽은 공자

논어와 문학을 즐기는 색다른 맛 1

검토 완료

오승주(dajak97)등록 2018.11.21 16:14
논어 '학이' 편부터 뒤집어 보자!

안녕. 나는 공자야. 요즘 소설 읽는 취미가 생겼어. 제자들이 내 말을 잘 새겨두었다가 《논어》를 엮었다더군. 조금 당황스러운 모습도 있지만 생각이 나. 옛날에는 시를 많이 읽었는데, 요새는 소설을 읽고 있어. 내가 시경 300편을 검토하면서 "생각에 간사함이 없다"고 말했는데, 좋은 소설 100권을 읽어도 효과는 같겠지. 논어 20편에 소설을 하나씩만 집어넣어도 20권이야. 첫 작품은 《산시로》. 논어 「학이 편」과 소설 《산시로》는 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지. 

나는 나쓰메 소세키 씨를 좋아해. 왜냐하면 그가 나를 좋아해주잖아. 어떻게 나를 좋아하는지 아냐고? 나쓰메 씨는 동양학을 깊이 배웠지. 영국으로 건너가 서양 학문(영문학)을 배워 왔지만 동양적인 것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맞서기가 어려웠겠지? 그거야말로 '온고이지신' 아니겠어? 첫 번째 소설작품 《이 몸은 고양이야》에는 나와 논어에 대한 오마주가 꽤 있어. 한번 볼래? 

1. 먼지떨이로 한바탕 장지문을 털고 빗자루로 한차례 타띠미 위를 쓸지. 그걸로 청소는 끝난 거라고 해석하고 있어. 청소의 원인 및 결과에 대해서는 털끝만큼의 책임도 지질 않아. 이런 까닭에 깨끗한 곳은 날마다 깨끗하지만 쓰레기가 있는 곳, 먼지가 쌓인 곳은 언제나 쓰레기가 쌓이고 먼지가 뭉쳐 있지. 곡삭희양이라는 고사도 있으니 이렇게라도 하는 편이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 몰라. - 《산시로》 일부

3. 세계 청년으로서 여러분이 먼저 명심해야 할 의무는 자살이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이를 타인에게 베풀어도 좋은 법이니. 자살에서 한 발 나아가 타살을 해도 좋다. - 《산시로》 일부

2. 풀 죽은 모습이 마치 상갓집 개와 같구나. 아니, 집 없는 개만큼 불쌍한 것도 사실 없지. - 《산시로》 일부


(1은 논어 「팔일」 편, 2는 「안연」 편, 「위령공」 편에 보이며, 3은 사마천의 공자 평전인 《사기세가》, 「공자세가」에 보입니다. - 글쓴이)

내가 나쓰메 씨를 좋아하는 까닭은 나처럼 어릴 적에 버림을 받았기 때문이야. 어릴 적이 행복하지 못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큰 업적을 이룬 사람이 꽤 있더라고. 나는 아버지가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나서 공씨 가문에서 쫓겨나다시피했지만 나쓰메 씨는 아들이 많다고 집에서 쫓겨나고 양부모가 이혼하고 나서 다시 본가로 쫓겨났으니 나보다 더 심했지. 소설가로 타고난 운명이야. 

《산시로》는 「학이 편」이랑 꽤 잘 맞는 것 같아. 특히 첫머리가 담고 있는 '논어의 정신'을 잘 표현했어. 동양철학 읽을 때는 '일성(一聲)'에 주의하라구. 거기에 책의 전체 주제가 다 담겨 있으니까. 《논어》도 일성이 가장 중요하지. 그런데 '학이시습지'를 '학문의 즐거움'이라고 번역하는 건 너무 심했어. 만약 논어 일성을 '학문의 즐거움'으로 오해하면 '사기열전의 일성'(백이열전)에서 단번에 부정되고 말아. 사마천의 《사기열전》 일성에서는 나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듯한 주장이 있지. 사마천은 백이숙제에 대해서 내가 했던 말을 인용하고 그들이 죽기 전에 비명으로 쓴 「채미가」를 나란히 옮겨 질문을 던지고 있지. 

저 서산에 오름이여
고사리 캐는도다
폭력으로 폭력을 바꿈이여.
그 잘못을 모르는도다. 
신농과 우, 하 갑자기 죽음이여
내 어디로 귀의하겠는가?
아아, 가자꾸나!
명 쇠하겠구나.
- 《사기열전》, 「백이열전」(번역은 연감서가 출판사 《원문대역 사기열전》을 따랐음)


나는 백이와 숙제가 옛 악연을 잊으려고 노력했고 거의 원망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고 사치왕 제경공과 비교하면서 칭찬도 많이 했지. 백이와 숙제가 유명해진 건 그 때문이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백이숙제가 아니니 정황증거와 역사문헌을 가지고 원망이 적었을 것이라고 짐작을 할 뿐이었지. 중요한 건 성스러운 왕이라고 하는 무왕(武王) 시절에도 '명(命)이 쇠한다'고 낙심했는데, 내 시대는 얼마나 개탄스럽겠어? 특히 '자리 도둑놈'이 참 많았지. 장문중 같은 대부 녀석은 지혜롭고 덕망 높은 유하혜를 알면서도 추천을 하지 않았지. 그러니까 '학이' 편에서 말했던 일성은 바로 이런 시대에 공부를 하겠다고 찾아온 학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야. 공부해서 좋은 직장이나 명예 같은 것을 욕심내는 놈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는 게 좋겠다고 했더니 태반이 짐을 싸서 돌아가더군. 허허. 공부하는 것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을 만한 사람끼리 서로 어울리면서 위로하고 우울증 걸리지 않게 다독여주자는 게 논어 일성의 뜻이지. 학문이 즐겁다고? 너는 공부하는 게 마냥 즐겁니?


《산시로》를 선택한 까닭

내가 어느 날 《산시로》를 읽고 있는데 주인공 산시로랑 산시로의 롤모델인 히로타 선생을 내 학당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 나쓰메 씨가 소설에 자주 등장시키는 '고등유민(高等遊民)'의 전형이 이때부터 나오지. 물론 히로타 선생은 고등학교 교사니 백수는 아니지만 《이 몸은 고양이야》의 구샤미 선생처럼 하릴없기는 마찬가지지. 《마음》에서는 산시로-히로타 선생 구도가 이름 없이 '나-선생님'으로 나오니 나쓰메 선생의 소설에서 사제 관계는 아주 중요한 소재지.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쓰메 선생은 소설을 쓸 때 《논어》를 자주 읽었을 것이라고. 동양에서 사교육 1호였던 우리 학당도 '학교 밖 학교'였고, 《산시로》의 산시로-히로타 선생도 학교 밖 사제관계였지. 산시로는 절대 '교언영색(巧言令色)'은 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야. 나무처럼 어눌하지만, 순수하고 소박하고 무엇보다 배짱(?)이 없지. 그래서 누구나 산시로를 좋아해. 

산시로는 숙박부를 들고 후쿠오카 현 미야코 군 마사키 촌 오가와 산시로, 23세, 학생, 이라고 사실대로 썼다. 하지만 여자에 대해 쓰는 칸에서는 아주 난감했다.. 어쩔 수 없이 동현同顯 동군同郡 동촌同村 동성同姓 하나[花], 23세, 라고 엉터리로 써서 건넸다. 그러고 나서 마구 부채질을 해댔다. - 《산시로》 일부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
여자는 히죽 웃었다. 산시로는 플랫폼 위로 내동댕이쳐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차 안으로 들어서자 양쪽 귀가 더욱 달아올랐다. - 《산시로》 일부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지. 예나 지금이나 교만하지 않은 제자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아. 손자병법에서도 '교만한 병사는 쓸 만한 데가 하나도 없다'고 하잖아. 아무튼 산시로는 물건이야. 그런데 산시로는 왜 히로타 선생에게 끌렸을까? 일단 소설에서는 두 가지를 이유로 들지. 첫 번째는 '평범한 사람과는 왠지 다르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가 중요한데 '이 사람 옆에 있으면 왠지 마음이 느긋해지고 세상의 경쟁 따위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는 것'. 산시로는 순진해도 사람 보는 눈이 있어. 그게 바로 '군자'란 말이야. 산시로가 기차에서 처음 만났던 그 남자. 구마모토에서 입에 담았다간 '국적(國敵)' 취급도 모자라 몰매를 맞을 말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했던 학교 밖 선생 히로타 선생. 내가 산시로 친구였다면 요지로와 함께 히로타 선생 대학 교수 추천 운동을 했을 거야. 

"자연을 번역하면 모두 인간이 되어버리니까 재미있지. 숭고하다든가 위대하다든가 웅장하다든가 말이야..(중략) 모두 인격상의 말이 되지. 인격상의 말로 번역할 수 없는 사람한테는 자연이 인격상의 감화를 전혀 주지 않지." - 《산시로》 일부

자공에게 말을 하지 않겠다고 했던 때가 생각나는군. 내 제자들도 내 입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기의 일을 하는 하늘과 막힘없이 운행하는 사시(四時), 거침 없이 흐르는 물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던 그 시절이 떠올라. 요지로 군이 히로타 선생을 대학 교수로 모시려고 백방으로 뛰었던 것처럼 내 제자들도 임금이나 경대부와의 면담을 주선하기 위해서 정말 많이 노력했지. 특히 염구가 고생이 많았어.

나에게 위령공의 아내 '남자(南子)'가 위험한 여자였듯, 산시로에게 미네코는 위험한 여자였지. 누군가의 손아귀 위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었으니까. 산시로 역시 미네코가 자신을 우롱하고 있지 않는지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잖아. 

산시로가 문득 오늘까지 자신에 대한 미네코의 태도나 말을 하나하나 되새겨보니 이것저것 모두 안 좋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었다. 산시로는 길 한복판에서 얼굴이 시뻘게져 고개를 숙였다. - 《산시로》 일부

신약성서에 나오는 '스트레이 십(stray sheep)', 길 잃은 양이라는 말을 가르쳐준 것도 미네코였지. 우리 시대와 산시로의 시대는 공통점이 많아. 무너질 것들이 급격히 무너지고 새로운 것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샘솟았지. 우리는 뭔가를 세워야 하는 입장이었고, 산시로는 뭔가 막혀 있다는 느낌이었을 테지. 우리는 옛 문헌을 열심히 읽고 토론하면서 '용사행장'(用舍行藏 : 쓰이면 펼치고, 버려지면 숨어서 닦는 기술)을 연마했지만 쓰일 일은 거의 없었으니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면서 내공을 길렀을 따름이야. 수박 겉핥기 같은 근대를 그토록 혐오하고 비판했던 나쓰메 선생. 그는 우리가 단지 그 시대를 소비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함께 뒤섞여 만들어가는 모험을 항상 머릿속에 두고 있었나봐. 산시로에 나오는 사람들은 별볼일 없었던 지식인이었지. 쓰일 길이 없으니 혼자 닦았던 것이고, 무엇보다도 기웃거리지 않았어. 만약 당신이 「학이」편이나 《산시로》를 읽는다면, 가능하면 둘 다 읽는다면 길 잃은 양이 되지 않는 방법쯤은 알 수 있을 거야. 

* 이 글은 《논어》에 담긴 공자의 말을 가상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덧붙이는 글 소설작품 목록

1산시로, 2강철군화, 3카탈로니아 찬가, 4돈키호테1, 5정본 백석 시집, 6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7마음, 8데미안, 9그후, 10앵무새 죽이기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