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불이선란’
국립중앙박물관
손재형의 소장품 중 김정희의 작품으로 '세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불이선란(不二禪蘭)'이라 불리는 난초 그림이다. 이 그림에 관련된 이야기 또한 전설적이다. '불이선란'은 작품도 우수할 뿐만 아니라,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한 내력이 흥미로워 관심을 끈다. 또한 완성된 이후 소장자가 바뀌어 가는 과정의 굴곡이 심해 미술사 연구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오랫동안 난초를 그리지 않던 김정희가 20년 만에 다시 난초를 그린다는 재미있는 화제가 붙어있다. 본래 이 작품은 '달준(達俊)'이라는 어린 시동에게 그려주려 했던 것인데, 마침 집을 방문한 전각가 '오규일(吳圭一)'이 보고 좋다고 하며 잽싸게 빼앗아갔다는 뒷이야기까지 쓰여 있다. 이런 우스우면서도 재미있는 내용이 작품 위에 적히며 이 작품은 명품으로서의 아우라를 만들어 간다.
이렇게 특별한 배경을 지녔던 탓인지 이 작품은 오규일의 손에 들어간 이후 파란만장한 여정을 시작한다. 먼저 오규일과 같은 추사 문하였던 김석준에게 넘어갔다가 다시 장택상에게 넘겨진다. 장택상은 정치가로 미술품을 많이 수집하였던 사람인데, 이 작품을 오래 가지고 있지는 못하고 얼마 후 이한복에게 넘겨준다. 그런데 이한복이 또한 오래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세상을 그와 가까웠던 손재형에게 넘어간다.
그런데 오랫동안 지니고 있을 것 같았던 손재형은 갑자기 정치 참여의 바람이 불어 대부분의 소장품을 처분할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당시 개성 부자로 명동의 유명한 사설금융업자인 이근태에게 잡혔다 되찾지 못한다. 그러나 이근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동종 업종에 있던 같은 개성 사람 손세기에게 넘겨 지금까지 그의 집안 소장품으로 이어오고 있다.
다행히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되어 영원한 안식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작품 속에는 작품의 내력을 알려주듯 소장자의 인장이 많이 찍혀 있는데, 각 인장의 수준이 높아 한국 미술품 중에서 인장의 멋을 잘 살린 작품 중의 하나로 꼽힌다.
'세한도'가 돌아온 후 60여년 후에 일어난 일
'세한도'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 60여 년이 지난 2006년, 후지츠카 치카시의 아들 후지츠카 아키나오(藤塚明直, 1912-2006)는 그동안 소장해온 부친의 자료를 과천시에 무상 기증한다. 오래 전 손재형이 무작정 찾았듯 과천시의 관계자들이 찾아가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 조건 없이 기증하기로 약속한다.
그동안 아키나오는 부친이 모은 책과 추사 관련 자료를 조선의 정신이 담긴 문화재라는 긍지와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도 팔지 않았다고 한다. 아키나오는 돈을 요구하기는커녕 오히려 추사 연구에 써달라고 연구비로 2천여만 원의 돈을 내놓기까지 하였다.
이런 아들의 행동을 보면 후지츠카 치카시가 손재형에게 '세한도'를 무상으로 건넸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란 말이 제격인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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