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찰서 폭탄 투척의거 기사.
제목은 "부산경찰서폭탄소동"으로 폭탄은 매우 강렬하였고 폭파현장은 처참하였음을 싣고있다. <부산일보 호외>에는 경찰서장 하시모도가 심한 증산은 아니며 곧 치료를 받고 사무실에서 지휘명령을 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던 중 숨졌는데 일제는 이를 은폐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부산일보 호외>(1920년 9월 14일))
개성고등학교 역사관 제공
경찰서 2층의 서장실로 안내된 박재혁은 작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태연한 모습으로 책 보따리(궤짝)를 풀었다. 하시모토가 호기심을 갖고 지켜보고, 그의 곁에 두 명의 경찰이 부동의 자세로 서장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는 한두 권의 책을 우선 꺼내 보였다. 다음은 해방 후 환국한 김원봉이 작가 박태원에게 밝힌 의거의 '실황'이다.
이 책 저 책 꺼내 들고 보여주는 사이에 마침내 그 밑에 감추었던 폭탄과 전단이 드러났다.
그는 곧 그 전단을 집어, 왜적 앞에 던지고 유창한 일어로 꾸짖었다.
"나는 상해서 온 의열단원이다. 네가, 우리 동지를 잡아 우리 계획을 깨트린 까닭에 우리는 너를 죽이는 것이다."
말을 마치자 그는 곧 폭탄을 들어 둘이 서로 대하고 앉았는 탁자 한가운데다 메어다 부치니, 이때 두 사람의 상거는 겨우 2척에 불과하다.
광연한 폭음과 함께 두 사람은 다 같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소스라쳐 놀라 그 방으로 달려들었을 때, 조금 전에 서장을 찾아온 중국인 서상은, 몸에 중상을 입고 마룻바닥에 쓰러져 꼼짝을 못하고, 서장은 선혈이 임리(淋漓: 쫙 깔림)한 가운데, 정신을 잃고 쓰러져서 마지막 숨을 모으고 있었다.
달려들어 안아 일으켜 보니, 한편 다리가 폭탄으로 하여 끊어졌고, 얼굴은 이미 산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온 경찰서 안이 그대로 벌컥 뒤집혔다.
그들은 곧 수상한 중국인을 유치장으로 데려가 가두어버렸다. 그리고 송장이 된 서장을 병원으로 떠메어 갔다.
(주석 2)
주석
1> 이종범, <의열단 부장 이종암전>, 94쪽, 광복회, 1970.
2> 박태원, <약산과 의열단>, 5~4쪽, 깊은 샘,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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