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안 바뀌면 유치원도 안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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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복(songyb)등록 2018.10.31 09:42
자본주의 사회의 유치원 원장과 유치원 교사들에게 돈보다는 아이들을 위한다는 소명의식과 인간적 도리를 먼저 생각하라고 당당하게 말할 사람 누구인가?

먼저 밝히겠다. 필자는 유치원 관련 어떠한 이권도 없고 비리 유치원 원장과 교사들을 비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래서 더욱더 문제의 근본적 본질을 논의하여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이번 유치원 문제가 이렇게까지 여론을 불러일으키게 한 핵심은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는 부모들의 불안감이다. 이번 일이 터지기 전까지 그런 불안감이 없었냐 하면 그렇지 않다. 연일 보도되는 유치원의 아동학대 CCTV를 보아왔다. 우리 아이도 저렇게 학대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 달걀 2개 가지고 몇십 명이 먹었다느니, 그렇게 아낀 돈으로 원장님 명품백을 샀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그야말로 눈이 뒤집힐 일이 된 것이다. "그런 인간들이 우리 아이들을 인간으로나 취급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니 분통이 터지고 잠이 안 왔을 테고 그렇게 밤잠을 설치며 결집된 여론이 오늘의 분위기를 만든 것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죄송하다. 이런 식으로 삐딱하게 말해서. 그런데 이렇게라도 말하는 이유가 있다. 극단적으로 말해 지금 있는 모든 유치원 원장과 선생님을 갈아 치우고 공립유치원이 들어서고 새로운 선생님이 온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라는 질문을 해 보자는 것이다. 당장은 문제의 많은 부분이 줄어드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공립유치원의 원장은 누가 하나? 선생님들은 누가 하나? 과연 어린이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직업적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들로 모두 바뀔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니면 이런저런 직업적인 안정성과 경제적인 이유로 원장이나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이 다시 채워질 것으로 생각하는가?

당신의 친척이나 가까운 지인 중에 유치원 선생님이 되려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당신은 그 사람에게 무엇을 먼저 묻겠는가? "아이들 좋아하니?, 그런 일을 재미있어 할 것 같아?" 와 같은 질문이 먼저일까? 아니면, "월급은 어때? 처우는? 고용 안정성은?"과 같은 것을 먼저 묻겠는가.

아무리 비리 유치원을 처벌하고 공립유치원을 늘리고 등의 대책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직업을 돈벌이 수단으로 생각하는 상황이 그대로라면 우리의 불안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영의 주체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전제가 지켜진다 해도 말이다.

사실 공립이라는 것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립과 별반 큰 차이가 없다. 요즘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등에 실적이니 경영합리화 같은 말이 뿌리내린 지 오래다. 심지어는 경찰서도 그렇고 소방서도 그렇다. 결국 적은 돈으로 최대의 효과를 올리라는 건데, 이런 철학으로 운영되는 공립유치원이 민영유치원과 얼마나 차별화될지도 의문이다.

즉 유치원 선생님은 돈벌이 수단이고 유치원은 실적을 중시하는 경영합리화로 나아간다면, 바뀐다 한들 뭐가 그리 바뀌겠는가.

공립유치원이야 그럭저럭 돈 들여 만든다 치자 –이 역시 어려운 일이지만, 그나마 그중에서도 제일 쉬운 일일 테니- 그런데 선생님은 어쩌나. 유치원 선생님을 소신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런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사람을 뽑을 수 있느냐 하면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 사회에 경제적인 가치보다 소명과 열정을 중시하는 의사가 얼마나 있나? 그런 공무원은, 그런 대학교수는 또 얼마나 있냐 말이다. 그런데 세상의 이치가 영리를 제일의 가치로 여기지 않는 요리사가 있어야만, 오로지 돈벌이 만이 목적이 아닌 그런 기업인이 생겨날 수 있고 또한 그런 운동선수가, 그런 환경미화원이 그리고 그런 원장님과 선생님이 생겨날 수 있다.

따라서 최소한 공공의 영역에서만큼은 경제 논리가 앞세워진 시스템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런 말은 그럴듯해 보일지 모르지만 무책임하고 비현실적인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줄 안다. 그런데 모든 학부모가 원하는 것 역시 결코 현실적이지 않다. 우리 아이의 유치원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항상 귀여워 해주기를 바라고 어렵고 힘든 상황이 생겨도 돈을 떠나 인내와 사랑으로 아이들과 같이 놀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것 자체가 엄청난 뜬구름 잡는 이야기란 말이다.

그래서 현실을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나는 안 그러면서, 내가 내 직업에서 그러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은 그리고 유치원 선생님만큼은 원장님만큼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고백하자. 그리고 나는 나의 이기심을 채우면서 다른 사람들은 안그러기를 바라는 것이 얼마나 실현 불가능한 것인가를 인정하고 사회 전반의 변화를 만들어가자. 그것만이 서로가 같이 살 수 있는 궁극의 방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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