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이상 ‘자화상’ 1928, 임종국 ‘이상 전집' 2권에 수록된 사진 / (우) 이상 ‘자상(自像)’ 1931, 조선미술전람회 도록에서 재촬영
이상은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여 화가로서 활동을 한다. 출품작의 내용은 역시 '자화상'이었다. 첫 출품임에도 입선에 드는 성과를 낸다. 1928년에 그린 자화상과 연속성이 있는 내용인데, 내적 감정을 드러낸 표현주의적 요소가 강한 작품이었다. 경성공업고등학교 시절의 작품이 매우 단정하고 진지한 모습을 보였다면, 미전 출품작은 훨씬 세련되고 전문 화가다운 모습을 보인다.
입선한 자화상은 매우 독특한 색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화면 전체가 노란 색조로 가득해 매우 이채로웠다. 그래서 이승만이 "리상! 그림도 단단히 황달에 걸렸구려"라고 농담을 하였다. 그랬더니 이상이 하얀 얼굴 가득히 독특한 웃음을 짓더니 "내 눈엔 온 세상이 노랗게 보이오" 하며 농담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독특한 표현적 색채감각은 이승만의 눈에는 이상의 시처럼 천부적인 재능으로 보였다고 한다.
이상은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면서 '김해경(金海卿)'이란 본명을 쓰지 않고 '이상(李箱)'이라는 필명을 사용한다. 이 이름은 경성공업고등학교 다닐 때에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당시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상'이라는 이름은 구본웅이 졸업 기념으로 사준 화구의 상자가 오얏나무로 되어 있어서 '오얏나무 상자'란 뜻의 '이상'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구본웅과 이상의 가족 관계 인연
구본웅과 이상은 친구이었을 뿐만 아니라 친족으로 얽힌 가족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구본웅은 만석꾼인 거부 구자혁과 어머니 상산 김씨 사이의 외동아들로 태어난다. 그러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 계모인 변동숙(卞東淑, 1890-1974)의 손에서 자란다. 변동숙은 고녀 출신의 매우 화통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변동숙의 동생이 변동림(卞東琳, 1916-2004)이라는 이이다. 변동림은 경기고등여학교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닌 재원으로 시인 이상과 결혼을 하게 되는 신여성이다. 그러니 이상은 구본웅의 친구이지만 새어머니 동생의 남편이니 이모부인 셈이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변동숙과 변동림의 나이 차가 26세나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설에는 변동숙은 그녀의 아버지 변국선(卞國璿)의 본 부인 소생이고, 변동림은 변국선이 소실을 통해 낳은 1남 2녀 중 장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변동숙과 변동림은 그리 사이가 좋지는 않았다고 한다. 또한 변동숙은 나이 어린 이상을 "해경이! 해경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데서 오는 호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이 폐결핵으로 죽자 후에 변동림은 서양화가 김환기(金煥基, 1913-1974)와 재혼하고 이름을 '김향안(金鄕岸)'으로 개명한다.
삽화가 이승만이 그린 이상과 구본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