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상회 1914년 부산 중구 동광동에 설립한 백산상회.
독립기념관
박재혁이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국내에서 한가지 크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부산 출신 안희제가 1915년경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의 연락을 위해 백산상회(白山商會)를 설립하고 활동한 일이다.
백산이란 상호는 안희제의 호에서 땄다. 일제가 한국을 병탄하자 안희제는 1911년 러시아로 망명하였다. 안창호ㆍ이갑ㆍ신채호 등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국권회복을 위한 방략을 논의하고, 중국 관내의 우리 독립운동단체를 방문한 데 이어 1914년 청진을 거쳐 해로로 부산항에 도착하였다.
안희제가 러시아로 망명한 1911년부터 중국을 거쳐 귀국한 4년여 동안 중국의 신해혁명을 계기로 그쪽으로 망명한 우리 독립운동가들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국제정세가 급변하자, 이를 조국광복 기회로 삼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이 국내에 전해지고 국외 독립운동 지도자들은 국내와 연락을 빈번히 꾀하였다.
국외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면서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국내 비밀연락망의 구축과 독립운동자금 조달이 절실하였기 때문이다. 안희제는 국내 비밀연락망의 구축과 독립운동자금 조달을 위해 고향인 경상남도 의령의 소유농지 2,000두락을 팔아 상회설립기금을 마련하고, 이유석ㆍ추한식 등과 함께 백산상회를 설립하였다.
설립 초기에는 곡물ㆍ면포ㆍ해산물 등을 판매하는 소규모 개인상회였으나 1918년 안희제ㆍ최준ㆍ윤현태ㆍ최완ㆍ김용조ㆍ정순모ㆍ성태영ㆍ이정화ㆍ유덥섭ㆍ허걸 등 11명이 자본금 14만원, 불입금 3만 5,000원 규모의 합자회사로 발전시켰다.
합자회사 백산상회의 중역은 본사대표 무한책임사원 윤현태ㆍ안희제ㆍ최준 등 3인이고, 초기에는 해산물ㆍ육산물을 구매ㆍ위탁판매하였다.
상회의 위치는 부산부(釜山府) 본정(本町) 3정목으로 현재 부산시 중구 동광동 3가 10-2번지이다. 이후 1919년 1월 14일 합자회사 백산상회를 확대ㆍ개편하여 백산무역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