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 코끼리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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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허미라(lymira71)등록 2018.10.22 10:26
한 모임에서 <코끼리는 아프다>(G.A 브래드쇼 지음)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에서 코끼리 연구자는 오랜 관찰을 통해 코끼리가 같은 집단에서 죽은 가족이나 이웃에게 깊은 슬픔을 느끼고 애도를 표현하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동료 코끼리나 어린 코끼리가 장애 등 어려움을 겪을 때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의 회복을 도와주고 나아가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어려움을 겪는 코끼리가 가능한 생활 방식으로 점차 맞추어 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코끼리는 큰 몸집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동물을 공격하는 행동을 하지 않고 자신의 집단을 지킬 힘이 있다. 참 멋있고 사랑스러운 동물이다. 그러나 그렇게 평화롭게 공존하던 코끼리 집단이 인간의 침입과 탐욕으로 인해 서식지에서 쫓겨나고 학살되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수코끼리는 친구처럼 지내던 코뿔소나 가해자 인간을 공격하게 된다.

암코끼리의 보호로 유지되는 공동체에서는 어미와 이모 코끼리들이 비참하게 학살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 과정에서 보호자를 잃은 고아 코끼리는 어릴 적부터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는 이야기도 전개된다.
 
연구자는 공격성이라는 이상행동을 갖게 된 수코끼리, 공동체를 보호할 수 없게 된 암코끼리, 고아 코끼리의 트라우마를 관찰하면서 인간 문명이 사람 약자에게 행한 탐욕과 폭력성도 동시에 보여 준다.

인간의 탐욕이 코끼리나 사람 약자에게 행한 폭력성은 같은 것이다. 파괴 과정에서 코끼리가 겪은 마음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으면 사람 약자의 상처에도 공감할 수 있고, 사람 약자의 삶에 사회 공동체가 책임감을 갖게 되면 약탈당한 코끼리의 삶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
 
수코끼리의 트라우마에서 알 수 있는 약자 남성의 트라우마에 대한 사회적 이해는 익히 들어왔다. 위 책은 암코끼리의 트라우마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암코끼리가 아기 코끼리를 보호하지 못하는 행동 등 혼란이 나타나는 것은 인간사회가 행하는 반복적이고 지속적 위협이 가져온 정신적인 상처의 결과이고 암코끼리의 내면이 파괴되는 과정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는 사회적 이해와 안전망이 없는 빈곤여성가장이 겪어온 정신적인 상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파괴 과정에서 고아 코끼리는 어떤 트라우마를 갖게 되었을까.
 
위 책을 접하기 전에 부모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까. 고아로 자란 사람들은 이 사회에 뭐라고 얘기하고 싶을까라는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라는 노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몇 번만 터치하면 궁금한 각종 정보가 무한히 제공되는 시대에 고아의 마음이나 삶, 목소리를 알 수 있는 내용은 검색은 되지 않았다.

나도 부모부재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모와 가족에 대한 마음의 어려움을 오래 가져왔다.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는 가족주의사회를 이해하기도 비판하기도 어려웠다. 지금 내린 결론은 가족에 대한 애뜻함은 있지만 가족주의사회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함해서 혈연으로 형성된 가족에 대한 애정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런데 가족애를 지나치게 자랑하는 문화는 좀 많이 불편하다.

우리 사회가 아동 학대를 바라보는 초점은 사회적 방임에 대한 책임보다는 흔히 약자 부모에 대한 비난과 처벌에 멈추곤 한다. 사회적 폭력과 방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감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방임을 애써 외면하면 할수록 결국 해법도 멀어지게 된다. 거대화된 인간의 탐욕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암코끼리와 고아 코끼리도 철저히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 수코끼리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를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가 엄마를 부르짖으며 숱하게 방황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지인에게 '그 고독을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말이 없고 도인 같았다던 그의 친구는 산업현장에서 전신 화상을 당해, 마취도 없이 고통스러운 수술을 받고 20대의 나이에 일찍 사망했다고 한다. 참 모순이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어릴 적부터 다수에게 이해받기 힘든 고독을 가지고 자라 성장해서도 끝나지 않는 고독과 상처의 기억을 가지고 살거나 죽어야 한다면 말이다.
 
일 년 남짓 일했던 서울역 부근 쪽방 지역 동자동에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 여러 어려움을 가진 분들이 많이 있다. 고아로 자란 분도, 장애를 가진 분도 있다. 2008년 주민 공동체가 만들어진 이후 '동자동은 우범 지대라는 오명을 벗었다' 평생을 서울역 부근에서 사시다 머리가 하얗게 새신 노인께서 말씀해 주셨다.

그 전에는 주민들이 서로를 믿지 못해서 교류하지 않고 고립되어 지냈다고 한다. 가난과 질병, 장애 등으로 인해 주민들의 삶은 매우 힘들다. 그러나 다수 사회의 사람들은 아직도 고립을 면치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지금의 동자동 주민들은 서로 돕고 교류하면서 살아간다.
 
공동체가 형성되기 전 심각했던 동자동 일부 주민들의 공격성은 위 책에서 수코끼리가 자신의 생존과 마음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짓밟히면서 나타낸 트라우마를 참고하면 이해할 수 있다. 공동체가 형성된 이후 동자동 주민들은 마을 잔치, 마을 장례 등을 하며 서로 교류하고 돕고 살아온 지 아마 10여 년이 다 되었을 것이다.

동자동에는 다수 사회와는 또 다른 점도 많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 간에 장애를 가졌다는 것이 차별이 되지 않고, 고아원에서 자랐다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기도 한다. 외환위기 때 사업 실패로 수 년 간 술로 방황의 세월을 보내고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가족이 해체된 아픔도 덤덤히 얘기할 수 있다. 교도소에 갔다 왔다는 이야기도, 어렸을 적에 부모를 잃어버린 이야기, 어릴 때부터 배를 타고 착취당하면서 죽음의 공포에 휩 쌓여 지냈던 시절 이야기도 한다.

전술했듯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자신이 어렵게 살았던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과정을 통해 서로 간에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고 서로가 서로를 도울 수 있기 때문이고 그 신뢰로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다수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어려움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기 보다는 고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런데 실은 그 다수 사회는 10% 내지 20%의 의식이 주도하는 사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수 사회에서 고아 코끼리가 갖게 되는 트라우마는 어떤 것일까.

10%가 주도하는 다수 사회 문화는 가족애를 지나치게 자랑하면서 가족주의사회를 만들어 낸다. 지나친 가족애 자랑은 인적 자원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적 자원에 대한 자랑이기도 하다. 부모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다.

고아 코끼리에게는 부모부재의 트라우마가 끊임없이 재생될지 모른다. 고아 사람은 지속적으로 박탈감과 상실감을 배우게 될지 모른다. 소수가 살아남는 많은 맹목적 경쟁들의 결과들처럼 가족애 경쟁은 실제의 다수를 사회적 고립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족주의의 덫에는 빠지고 싶지 않다. 평화로웠던 코끼리 집단처럼 가족과 공동체 구성원에 대한 마음은 사랑과 협력의 힘을 키우겠지만 가족애 경쟁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려는 가족주의는 사람과 사회를 점점 파괴할 것 같다.
 
처음부터 고아인 사람은 없고, 고아 트라우마를 평생 가지고 가야 하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누군가 아픔과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고아 코끼리에게는 그 통로가 막혀 있다. 가족주의 사회가 높고 두꺼운 벽을 치고 있다. 사회 공동체가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아니 침해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편견을 거두는 것이다.

사회적 편견은 곧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몰이해와 편견이 제도화되어 사회적 차별과 폭력을 양산시켜왔다. 그렇게 침략으로 만들어진 다수 사회는 아직 소수자, 약자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더 많은 사회적 약자가 자기 존재와 권리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는 실제 다수가 겪고 있지만 은폐된 어려움을 드러내 주며 사회변화를 이끌어 왔다. 그러나 침략당한 코끼리에게 왜 인간의 탐욕과 맞서 싸우지 않았냐고 말할 수는 없다. 침략당한 코끼리와 같은 인간의 마음들이 서로 연결되고 연결되어 신뢰와 연대를 키워갈 수 있다면 인간 문명이 가져온 탐욕의 결과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직 트라우마를 겪는 수코끼리, 암코끼리, 고아 코끼리의 회복을 다루는 장까지 읽기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책 속에서 답을 찾기 전에 현실에서 답을 먼저 찾는 복을 누려 보았으면 좋겠다. 파괴된 공동체의 고아 코끼리도, 고아 사람도 아프다. 어쩌면 다수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와 권리를 드러낼 수 없는 실제 다수는 다 아프다. 평화로웠던 코끼리 집단이 살아가던 모습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아픈 코끼리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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