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오마이북
올해 초에 이 책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만났다. 선진국인 덴마크 학생들은 입시 걱정 없이 행복하다는 점과 우리나라에도 '꿈틀리 인생학교'를 설립해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오연호 선생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스스로 선택하고,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다하고, 여럿이 어울릴 수 있도록 아이들을 믿고 교육 방법을 바꿔보자는 주장은 이론적으로도, 교육학적으로도 완벽했다. 대학 시절, 듀이의 '러닝 바이 두잉(Learning by doing)'이나 진보주의 교육을 공부할 때 수도 없이 들은 내용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덴마크와 꿈틀리 인생학교의 아이들은 그래도 선택받은 학생들이고 운이 좋아 선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대다수 지금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지나친 경쟁에 내몰려 있는데 과연 실현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꿈같은 이야기는 우리 공교육의 현실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슬그머니 올라왔다.
그러나 이 의문은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이 경쟁과 비교에 내몰려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함으로 이어졌다. 다 바꿀 수 없다면 당장 나부터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탐색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나의 도서관 여행 '우리만의 덴마크'
결국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수업이었다. 내 수업 시간만큼은 덴마크나 꿈틀리 인생학교와 비슷하게 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과감하게 교과서를 압축했다. 교과서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쳐야 할 내용으로 요약본을 만들고, 대신 일주일에 1시간씩 아이들을 도서관으로 데리고 갔다. 그 시간에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오직 '보고 싶은 책을 골라 읽는 것'이다.
덴마크 아이들처럼 1년을 통째로 비워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1시간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직접 자율적으로 고르는 경험을 하고, 자신의 수준과 흥미를 고려하여 각자의 속도에 맞춰 책을 읽도록 유도했다. 대부분 만화책만 고를까 봐 걱정했지만, 도서의 종류는 전적으로 본인이 결정하도록 했다.
학교 도서관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이 진열되어 있고, 아이들은 내 우려와는 다르게 여행 서적을 고르기도 하고, 장편 소설을 읽기도 하고, 심지어는 수학 도서를 집어서 펼쳐보기도 했다. 자기가 고른 책에 푹 빠져서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는지도 모르고 독서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방과 후에 읽던 책을 대출해서 밤새 읽느라 퀭한 얼굴로 등교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 누구 하나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만나면 재밌게 읽은 책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며 나 또한 수업 시간이 기다려졌다. 내가 재촉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충분히 그 1시간을 즐겁고 유익하게 보내고 있었다.
한 학기가 지난 후 아이들의 읽기, 쓰기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내가 특별히 한 일은 없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아이들을 믿고 시간을 준 것뿐이었다. 최소한 이 '1시간의 덴마크'에서는 일등도 꼴등도 없고, 그 누구도 조급하지 않았다. 서로 기대서 책을 읽거나 재밌는 도서를 추천해주곤 했다.
여전히 내 아이들은 중간, 기말고사를 치러야 하고, 내 수업 시간에는 집중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아이들이 최소한 일주일에 1시간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도 달라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90%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아이들과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나는 각자의 취향과 수준에 맞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삶의 속도를 능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덴마크나 꿈틀리 인생학교처럼 우리나라가 변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아이들은 여전히 입시 전쟁과 삶의 경쟁에 내몰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라 믿는다. 도서관에서 이미 우리 학생들과 나만의 덴마크를 경험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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