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복 ‘난정서(蘭亭序)’
황정수
김복진의 조각은 소녀의 나체를 소재로 작업한 것이었는데, 어느 괴한이 고의로 한 쪽 팔을 부러뜨렸다. 작가가 다시 수리하여 전시하는 것으로 합의가 되어 무마되었다. 그런데 며칠 후 또 다시 이한복이 출품한 '난정서(蘭亭序)' 제 십칠 행의 다섯 번째 글자가 무참히 뚫어진 것을 몰래 다시 때워 놓은 것이 발견된 것이다. 비록 실수라 할지라도 전람회에서 거듭 이 같은 실수를 하게 된 책임을 주최 측이 지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였다.
이에 대하여 당사자인 이한복은 매우 분개하여 "김복진의 일이 있자 뒤를 이어 또 이 같은 일이 생기니, 비록 고의로 하지 않은 일이라 할지라도 같은 실수를 거듭하는 조선미전 당국자의 무책임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피어나는 조선의 미술계와 겨우 자리가 잡히려 하는 조선미전의 전도를 위하여서라도 당국자의 반성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며 주최 측을 나무랐다.
이한복에 대한 재평가
이한복은 혼란한 일제강점기에 한일 미술인의 교류를 위해 노력한 인물이었다. 일본에서 오는 조선미전 심사위원들과도 소통을 하였으며,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화가들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런데 일본인들과 가깝고 일본화풍의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만으로 친일 미술인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오히려 김은호나 이상범, 노수현 등이 뚜렷한 친일의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에 비해 이한복은 적극적인 친일 활동을 한 모습을 찾기 어렵다.
또한 이한복은 추사 김정희를 선양하는 등 한국 전통 미술을 수용하려 노력한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서양화에 밀려 소외되는 동양화에 대해서도 "조선 사람으로 동양화에 사랑이 적은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다. 일부에서 동양화는 일본화라고 하며 꺼리는 이도 있으나, 어떠한 양식으로든지 자기네의 '국민의 혼(國民魂)'만 표현하면 그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조선미전에서 성공을 할 생각을 하여야지 일본의 제국미술전람회를 넘겨다보게 되면 도리어 조선미전의 전도는 낙관할 수 없다"며 조선미전의 발전을 기원한 의식 있는 면이 있는 작가였다.
그런 면에서 이한복을 당시 드물게 새로운 형식의 회화를 추구한 미술인으로 새롭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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