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씨의 복귀를 바라는 이유

여성 연예부 기자는 왜 여성단체 활동가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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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은(garak)등록 2018.10.10 17:10
패션지에 열광하던 평범한 모범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딱히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열망은 없었다. 멋지고 예쁜 물건을 자주 접하는 잡지기자는 로망에 불과했을 뿐 특종에 목매는 매체의 연예부 기자가 될 마음은 더욱 없었다. 20대 들어서는 줄곧 춤과 연극에 빠져 있었기에 오히려 예술가를 꿈꾸며 아티스트의 삶을 선망했다. 문화적 자산을 갖지 못한 지방 출신의 지방대학 졸업생은,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며 각종 레슨을 받기 위해 사보기자로 취직을 했고 어쩌다보니 온라인 연예매체의 사회연예부에 근무하게 되었다.

'연예계 탐사보도(?)'로 독보적인 매체의 전신인 그 회사에서 나는 연예 쪽보다 사회 쪽에 방점이 찍힌 일들을 취재했고 그 편이 적성에 맞았다.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잘못을 기사화하면서 부조리에 맞서 정의를 구현하는 기자라는 자부심을 가졌다가도, 몇 차례 기사가 삭제되는 일을 겪으면서 누군가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은 곧 매체의 수익과 직결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마도 얼마의 광고비를 받고 무마되었을 보도들을 끈질지게 파헤쳐야 하는 기자는 어디에서 자긍심을 찾아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병역만 잘 치르면 무사패스? 남성 연예인의 삶

유승준의 병역 사태를 지켜본 후로 줄곧 가져온 의문이 있었다. '왜 남성들은 저토록 군 미필자를 미워할까?' 병역 특혜를 받은 이들에 대한 열등감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공익근무를 하는 연예인들의 근무 실태를 취재하자는 아이템을 제안했다. 돈도 빽도 없어서 군대에 다녀와야먄 했던 피해의식이 자신과 같은 의무를 치르지 않는 남성이나 병역의 의무가 없는 여성에 대한 혐오로 번지는 것을 익히 목격한 후였다. 당시 데스크도 피해의식이라는 단어를 머쓱해하면서도 이를 인정했다.

4인의 공익근무요원을 찾아다니며 누군가를 복도에서 마주쳐 황망히 지나치기도 하고, 팬인 척 연기하며 식당에 잠입해서 동태를 수소문했고 출근 흔적을 찾지 못한 연예인도 있었다. 이 보도의 파장은 일파만파였다. 기사에서 실명을 밝히지 않았지만, 공익근무에 충실하지 않았던 싸이는 후속보도가 이어지는 바람에 언론의 뭇매를 맞고 현역으로 재입대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물론 그가 현역으로 제대한 후에 어마어마한 한류스타가 되는 것을 보면서 부채감을 조금 덜었다. 그가 국방의 의무에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이 공익이나 병역특례 업체에 근무하면서 겪어야 하는 부담을 간과하고 그들의 삶을 일방적으로 파헤쳤다. 브로커까지 동원해가며 현역 판정을 교묘하게 피해간 연예인들을 편 드는 것은 아니다. 군대 문제가 가장 큰 화두긴 하지만 이는 결국 양날의 검이다. 병역기피 의혹이 불거지면 손가락질을 당하지만 군 복무만 성실히, 모범적으로 이행해도 큰 칭찬과 이미지 쇄신이 가능해졌다. 실제로 미국 국적을 갖고 있음에도 현역을 자처한 옥택연씨 등은 큰 화제를 모았다.

음주 사망사고, 뺑소니사건, 군복무 중 성매매 의혹, 불법도박과 사기, 상해사건이나 성폭력 같은 경우는 어땠나. 실제 피해자가 있고 실정법을 어겼음에도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몇 해 지나지 않아 복귀한 이들이 대다수다.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지상파 출연 정지를 당했던 이경영은 영화와 케이블에서 무수히 많은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이제는 지상파 출연이 가능해졌다. 이것은 '연대의식'의 발로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남배우 A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에게는 가짜뉴스로 그를 물심양면 지원했던 이재포 같은 이들이 존재했다.

반면 성폭력 혐의로 영화판에서 퇴출된 여성감독은 다시는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되었다. 김기덕 감독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해외영화제에 초청되며 끊임없이 복귀를 시도하고 있지만 말이다. 여성은 범죄의 피해자일 때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고 눈물로 사죄하고, 수년이 지나야 겨우 복귀를 타진할 수 있을 정도였다.

1990년대의 불법 유출 동영상 피해자로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던 가수에게는 지금까지도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연하의 남편이 잘못을 해도 몇 달 전에 대관과 준비를 마친 콘서트를 취소하라는 압력이 들어온다. 남편이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뮤지컬 배우는 엄정한 처벌을 요구했다가 비정한 아내 취급을 받는다.


조롱하고 삶을 난도질하는 일이 정당화될 순 없다

(대부분은 피해자였음에도) 물의나 스캔들의 당사자가 된 여성 연예인들은 몇 차례 복귀를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해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사죄의 눈물과 기자회견도 지겹고, 여성 개인의 삶이 난도질당하는 것을 관망하는 것도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들은 지나치게 가혹한 벌을 받았고 이들 중 일부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조차 대중에 비치는 것을 꺼려한다. 이전의 유명세가 컸을수록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잘못을 하거나 혹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순간, 알 권리라는 미명 하에 언론은 이들을 제물로 던지곤 한다. 여론 재판을 주최하며 객관성을 가장해 피해를 자극적으로 묘사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어디까지 당했대?'가 이를 소비하는 이들의 주된 관심사다. 과연 연예 매체들은 누구의 욕망을 대리하고 있을까. 공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유명세가 곧 수입으로 이어진다는 이유만으로, 가십은 아주 흔한 먹잇감이 된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더라도 이미 여성들의 체신은 땅바닥에 떨어진 후여서 이를 회복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너무 오랜 세월이 걸린다. 객관성을 담보하는 이들의 직업은 기실 악의를 '대중의 알 권리'로 포장할 때가 있었다. 누군가가 욕 먹고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즐거워했다는 뜻이다.

결국 사회연예부 기자는 매일이 위기였던 3개월여의 출근을 접고 비상근 여성단체 활동가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먹고사는 데는 큰 지장이 있지만 여성으로서 여성의 삶을 지지하고, 여성 개개인의 삶을 오롯이 담아내는 기록자이자 매체 활동가로 살고 싶다. 거창하게 의미를 붙이자면 속죄랄까,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라기보단 스스로의 양심을 위한 일이다.

그리고 바람이 있다면, 현재 불법 동영상 유출 협박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구하라씨가 대중 앞에 눈물로 속죄하지도 않고 자숙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를 조롱하고 깎아내리는 이들에게 그럴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싶다.

"'연예인의 삶은 끝났어', '쌍방이니까 너도 당해야 해'라고 말하는 이들은 어렸을 때 당신을 소비하던 팬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당신의 편이 되겠습니다. 구하라씨 용기내주셨으니 꼭 범죄자를 단죄해주세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위성은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실을 계획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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