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에서 맛본 말벌술
허시명
술병은 몸통이 굵고 호리한데, 개봉하지 않는 것을 보니 관장은 그다지 술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술을 좋아했으면 그 술이 남아나지 않았을 테고, 또 선뜻 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잠시 술병 열기를 망설이는 내게, 동석한 정 교수님이 빨리 맛을 보자고 재촉했다. 나로서는 말벌술을 마셔본 적이 없어, 굳이 마셔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차였다.
옛말에 술 한 잔에 물 한 잔을 마시면 몸이 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말은 독한 소주를 두고 하는 표현이다. 소주에 말벌독까지 들어있을 테니, 내가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물밖에 없었다. 생수를 가져와 200㎖ 한 컵씩 따라두고 50㎖ 소주잔에 말벌술을 따랐다. 꿀 냄새가 올라왔지만 소주의 독한 기운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나는 사람을 분류할 때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눈다. 좋아하는 사람은 알코올 분해 능력이 좋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술을 보면 물러서지 않고 탐하는 마음까지 있는 부류다.
이들 중에는 술 자리를 게임처럼 즐기기도 하고, 술을 물처럼 마셔대지만 여간해서는 취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부류에는 술을 마시되 혼자서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까지 포함시킨다.
술을 좋아하는 이들 중에는 몸에 좋은 술을 밝히는 이들이 있다. 마치 건강기능성 식품이나 비타민, 오메가3, 마그네슘, 칼슘 복합제를 평생 달고 다니는 사람처럼. 이들은 장뇌삼, 영지버섯, 동충하초, 가시오가피 등 한 시절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진 약재 따위를 소주에 담아두고 애지중지한다.
그 수량이 많아 별장을 따로 마련하여 보관하는 이도 있다. 이들이 도달하는 술 속에는 독성물질을 지닌 독사, 지네, 말벌, 불개미 따위를 넣거나, 엽기적으로 동물의 새끼나 생식기를 넣어둔 것도 있다.
이 관행은 어디서 왔을까? 그런 술을 보면, 그 술을 담은 사람을 바라본다. 나는 관장에게 "이 술은 어디서 난 것입니까?" 물었다. "아하, 문학관이 지리산 산속에 있어서 자꾸 말벌이 날아듭니다. 저희 학예사가 말벌을 퇴치하고 선물로 준 것입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잔을 부딪치며 말벌술을 마치 보약이라도 마시는 것처럼 한 잔씩 마셨다. 나는 물 한 컵씩을 마시기를 권하고, 곧바로 나도 물을 한 컵, 또 한 컵을 마셨다. 알코올의 농도와 혹시 모를 독성의 농도를 낮추기 위함이었다.
관장의 아내가 직접 만든 죽염 간장을 내주었다. 단맛과 짠맛과 감칠맛이 잘 어우러져 있어서 안주 한 모금의 역할을 했다. 애주가인 정 교수님은 그 사이 말벌술 두 잔을 비웠는데, 벌써 얼굴이 불콰해졌다. 그러자 동석한 그의 아내가 두 잔 술에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이 아니라며, 말벌술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순순히 말벌술 병 마개를 닫았다. 예측할 수 없는 술에 몸을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더 좋은 술을 즐길 기회를 무산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장이 냉장고에서 내준 맥주로 가볍게 입을 가시듯이 술을 마시며, 술과 문학 이야기로 그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