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의 계절, 산소를 보니 집안 여인 수난사가 보인다

추석맞이 벌초를 하면서 우리집 산소에 얽힌 조선여인들의 설움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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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정(y2262)등록 2018.09.12 17:10
우리 풍습은 추석명절 전에 대부분 조상님들 산소에 벌초를 하고, 추석날에는 자손들이 농사지어 수확한 온갖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님의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며 조상님들의 은덕을 기린다.
 
우리 집안은 지난 9월 8일 토요일 고향집(순천시 해룡면 농주리 솔터마을)에 후손들이 모여 7대조 이하 총 21기의 산소벌초를 마쳤습니다.
벌초를 하면서 작고하신 아버님이 생전에 하신 말씀과 산소형태를 토대로 우리집안 여인들의 설움과 한이 서린 여인 수난사를 회고해 보고자 합니다.
 
사례1: 보쌈당해가다 도망쳐온 여동생을 오빠 묘 옆에...
 

누이동생 묘가 오빠 묘옆에 껌딱지 처럼 보쌈당해 가다 도망쳐온 누이동생이 죽은 후 오빠 묘옆에 있습니다. ⓒ 양동정

   

묘는 두봉상인데?.. 묻힌 사람은 한명 오빠 묘 앞에만 상석을.. 보쌈당해가다 도망해서 친정으로 돌아온 여동생 묘를 오빠 옆에.. ⓒ 양동정

 
 나로서는 6대 조부(梁 忠模)의 묘 옆에 작은 묘 한기가 더 붙어있어 마치 부부의 묘인 것 같다. 하지만 상석이 두 묘 가운데 있지 않고 우측 묘 정면에 놓여 있어 마치 옆의 묘는 하인의 묘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상석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學生濟州梁公偉忠謀之墓甲坐 配位墓在下沙村后石川公墓下亥坐"
이 내용을 해석해 보면 '제주양씨 양충모의 묘이며 갑좌를 향해 있고, 배우자는 하사마을 뒤 석천공 묘아래 있다."는 내용입니다. 즉 옆에 붙어있는 묘는 부인의 묘가 아니고 다른 곳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옆에 붙어있는 작은 묘에 대해 고인이 되신 아버님으로부터 들은 사연은 이렇습니다.
 
충모 할아버지는 여동생이 한분 계셨다고 합니다.
일찍이 고향마을에서 약 20km정도 떨어지 황전면으로 출가를 하셨는데, 남편께서 30대에 자식도 없이 사망하여 청상과부가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두명의 장정에 의해 보쌈을 당해서 잡혀 가시다, 미나리 꽝 근처를 지날 때 미나리꽝으로 뛰어 들어 맨발로 50십리 길을 밤새 걸어서 친정으로 돌아 오셔서
 "내가 개가를 하면 하나뿐이 오빠가 무슨 낯을 들고 도량 출입을 하시겠냐?." 하시며 평생을 올케와 함께 오빠 뒷바라지를 하며 친정에서 생을 마치셨고,
생전에 "내가 죽으면 오빠 산소 근처에 묻어 달라." 고 하셔서 이렇게 오빠의 묘 옆에 묘를 썼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애틋한 자매간의 우애이며 그 시대 여인수난사의 산 역사 입니까?.
 
사례 2 : 본실과 소실과 사이가 너무 좋아 사후에 산소도 나란히...
 

본처와 후처의 묘를 나란히 사이좋은 본처와 후처의 묘를 나란히 쓰고 상석을 놓았습니다. ⓒ 양동정

 
나로서는 고조부 되시는 분(梁賢觀)의 두 분 할머니 산소입니다.
 상석에 새겨진 글(孺人平康蔡氏之墓 孺人密陽朴氏之墓夫位三山案山申坐)을 해석해 보면 "부인 평강 채씨 묘. 부인 밀양 박씨 묘, 남편 묘는 삼산면 안산에 신좌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본처인 평강 채씨 후처 밀양 박씨의 묘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연인 즉 본처 평강채씨로 부터 아들을 하나 밖에 얻지 못하여 4대 독자가 될 판이 되어 우리 마을에서 약 30km정도 떨어진 여천군 삼산면 내리 마을에 친하게 지내는 박 씨라는 분이 있었는데 어느 날 그분 댁을 방문하여 술상을 차려온 따님을 보시고,
"자네 여식을 나에게 주소!" 하여 재취로 데려 왔는 데...
그분이 밀양 박씨로 본처이신 평강 채씨 할머님과 너무 사이좋게 지내시어 돌아가신 후에도 늘 사이좋게 지내시라고 한 곳에 나란히 묻어 주셨다고 합니다.
한 남군을 섬긴 두 여성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이 또한 정말 안타까운 조선 여인 수난사가 아닌가요?
 
사례 3 : 아들 못 낳은 재취 할머니 딸네 집에서 쓸쓸한 생을 마감...
 

아들낳지 못한 쓸쓸한 여인의 무덤 아들을 낳기위해 얻은 후처가 딸만 둘을 낳아 구박을 받으시다 돌아가시어서도 설움을 받아 선산에 묻히지도 못하고 공동묘지 부근에 쓸쓸히.. ⓒ 양동정

 
 우리 집 선산도 아닌 인근 공동묘지 근처에 비석은 물론 상석도 없는 작은 묘 한기 쓸쓸히 있는 데 이곳도 저희들이 벌초를 합니다.
 증조모 되시는 분으로써 증조부(梁龍敎)가 4대 독자이신데 역시 아들을 한분 밖에 두지 못하시어 아들을 더 보시겠다고, 이천 서씨 할머니를 재취로 맞이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도 아들을 못 낳으시고 딸만 둘을 낳으셨는데....
 그 딸 중 한분이 여천군 화양면 섬달천이라는 곳의 이씨 집안으로 출가를 하시었다고 한다. 그 후 아마 아들을 낳지 못하시었다고 구박을 많이 받으신 모양이다.
그래서 섬에 있는 딸집에 가셔서 여생을 보내시다 생을 마감하시어 그곳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가 약 40년 전 그 공동묘지가 없어지게 되어 이장을 하면서도 선산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마을 근처 공동묘지 부근으로 이장을 하셨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가슴 아픈 한 여인의 서러움 인가?
 본처가 아닌 재취라는 이유로.. 아들 낳지 못한 여인이란 이유로 소박을 맞다 싶이 딸네 집에서 한 많은 생을 마감 하셨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이번에 산소 벌초를 하면서 산소에 얽힌 이야기들을 정리하여 후세들에게 물려주어야겠다. 는 생각을 하지만... 과연 앞으로 누가 조상들 산소에 벌초를 하고 그 사연을 기억하려는 의지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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