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빼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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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석(zikic)등록 2018.08.23 13:11
돌을 빼는 방법

파리바게뜨에 여섯명이 모였다. 온라인에서 만난 토론모임이다. 난 혼자살고 친구가 많이 없어서 고립되는 상황이 빈번히 발생했다. 고립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기위해 모임을 나가기로 헸다. 각자 자신이 추천한 책을 가지고 왔다. 누가 먼저 해주시겠습니까라는 주최자 질문에 누구 할것 없이 본인 앞에 있는 각자의 책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손가락만 움직여도 관절소리가 날 것같은 숨막히는 침묵에 주최자 동공은 쉴새없이 흔들렸다. "그럼 제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돌아가겠습니다"라는 말과 동시에 모두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주최자는 '죄송합니다. 어쩔수가 없었어요'하고 말하 듯 노트북에 얼굴을 가렸다. 지목당한 여자는 엉덩이가 살짝 들렸다.

어...라는 의성어로 시간을 끌며 침착함을 되찾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자존감에 대한 책을 가지고 왔다. 드라마에서 엑스트라지만 눈이 한번 더 가는 대학생처럼 생겼다. 메모지를 꺼내서 안정된 톤으로 조리있게 설명했다. 난 그녀의 얼굴,아니 발표에 집중했다. 난 이 책을 읽고 나를 존중하고 나를 더 사랑하고 아끼기로 했습니다.라는 마무리 발언을 했다. 내용과 상관없이 15분이 즐거웠다. 다음 오른쪽에 있는 사람으로 넘어갔다.

그는 자기차례가 오자 아까까지 강렬하게 경청하며 쳐다보던 눈빛이 겁먹은 동물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남잔 군주론을 가지고 왔다. 군주론 읽어보셨나요? 다들 모르실텐데 제가 설명좀 하죠.라는 말로 시작해 이탈리아 역사부터 읊기 시작했다. 내용이 점점 산으로가 자신이 무슨말을 하는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상기된 표정으로 마구 지껄였다. 다른 사람들과 눈을 한명한명 마주쳤는데 상대방과 소통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상대방이 나를 못믿는 것 같아서 내말 믿지?어? 내말 믿는거지?라는 눈빛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얼굴을 거울이 없어 확인할수는 없지만 듣기 싫어 견딜수 없음을 감추기 위해 발버둥치는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말씀중에 죄송한데..." 내가 조심히 말했다. 일동 나를 쳐다봤다. 고맙다는 눈빛과 너 어떻게 수습할거야하는 눈빛이 섞여들어왔다. "그래서..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가 뭐죠?"
담담한 척 했지만 미세하게 목소리가 갈라졌다. 남자는 감히 나를 공격해하는 웃음을 지었다. "아니 이해를 못하신 것 같은데..."하며 다시 아까 하던 말을 이어갔다. 초등학교때 교회에서 듣던 설교보다 지겨웠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하고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
그래서 이 책을 왜 추천했냐고요. 앞에 노란색으로 염색한 여자가 아 이제 못참아라는 말투로 말했다. 남자는 나에게 보였던 표정을 똑같이하며 이해를 못하신것 같은데...라고 하니 여자는 "아니. 본인이 왜 추천한지 말하고 느낌을 말하는 시간이잖아요. 이 책에 설명하는 시간이 아니라요."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리듯 시원한 발언이다. 하지만 그 남자는 '분명히 너는 이해를 못했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한 말투로 상대방을 설득시켰다. 두사람의 썰전은 20분이 이어졌다. 난 연락이 올리가 만무한 휴대폰을 보면서 이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서 유튜브를 보면서 누워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노트북에 숨어있던 주최자가 입을 열었다. 저희가 시간이 많이 없으니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참 빨리도 말한다.
결국 군주놈(군주론 발표하는 놈)이 군주론을 선택한 이유는 듣지 못한채 얘기는 마무리를 지었다.

군주놈이 떠들어대는것을 오른쪽에서 계속 들은 내 차례다.난 EBS에서 방송했던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자본주의를 가지고 왔다.
신용카드 빚으로 4년동안 고생중이다. 자본주의 책은 빚을 지는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빚을 지게 만든다는 내용이다. 내가 뭘 잘못해서 이렇게 까지 빚을 진걸까 자책하며 살때 내 잘못이 아니라는 위로를 받았다.
"저는 자본주의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빚이 많은 건 그 사람 잘못이 아닙니다." 내 의견을 어필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럼 술마시고 펑펑써서 얻은 빚이 잘못이 없다는 말인가요?" 군주놈이 끼어들었다.
"사실 빚을 진 사람들 대부분은 먹고 살기위해서입니다. 어쩔수없이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돼서 취업이 안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도울 방법은 이자가 적은 대출이 아니라 복지라고 생각합니다"
군주놈이 웃으며 말했다. "진짜 카미(내 닉넴)씨는 유토피아를 꿈꾸시네. 복지하는데 세금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요? 그게 가능이나 할것같아요."

복부와 명치사이가 울렁거렸다. 여기서 말을 멈추면 이도저도 안 될 것 같아서 억지로 말을 끌어올렸다.
"얼만지 모르지만..."
"카미씨는 정말 현실감각이 없네요. 이루어질 것을 말해야죠. 그들이 힘들다고 해서 있지도 않은 세금을 준다. 유토피아도 적당히 꿈꾸세요"
내 목소리가 작아지는 것이 느껴질수록 목소리는 더 작아졌다.
"전... 팟캐스트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들었습니다. 자식과 연락했다는 이유로 복지선정이 안된 사람, 병원비때문에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업이 안되는 사람 정말 그들이 그렇게 큰 죄를 지은 걸까요. 그런걸까요."
군주놈은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카미씨. 제가 계속 말씀드리지 않습니까? 저희 세금이 총 얼마죠? 네? 대답해보세요. 세금이 어떻게 되냐고요. 계산해보셨어요? 네? 계산해보셨냐구요"
난 공책에 세금,세금,세금을 계속 적었다. 분명 팟캐스트에서는 세금이 부족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많이 들었지만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나지 않았다. 여기서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깐.. 세금이 부족하지 않다고 전문가들에게 팟캐스트와 기사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아니. 그러니깐 그 금액이 얼마냐고요?"
세금, 세금, 세금을 계속 적었다. 무너져버릴 것 같은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계속 적었다.

전 알것 같아요. 어떤 말씀이신지.
조용히 웃으며 듣고 있던 여자가 말했다. 도와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나의 마음이 공감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군주놈이 싫어서 였을까. 아무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카미씨가 그들을 돕고 싶어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저도 요즘 뉴스에서 안타까운 사건들을 보면 그들이 잘못한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군주놈이 이 말을 흘려들을일이 없었다.
저기. 저도 그 마음 모른다는게 아닙니다. 저도 가능하면 그들을 돕고 싶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이말이죠. 현실적으로는 전혀 들여다보지 않고 유토피아적인 얘기만 하는게 말이 됩니까?
그녀는 어떻게 말을 해야할까. 하는 표정을 한참 짓다가 다시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분위기에서 침묵은 위험했다. 난 다급히 말을 했다.
"그러니깐... 세금이 얼만지는 모르지만 그들과 그리고 저를 위해서도 모두를 위해서도 이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돈 때문에 죽지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카미씨. 제발 현실을 보세요. 제발"
곁눈질로 주위를 봤다. 나를 돕고 싶지만 그들도 딱히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하는 것 같다. 난 다시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해야 이 분위기에서 내 주장을 적절히 표현할수 있을까 고민하며 사용하지 않던 뇌부위까지 끌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자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죠.
사람들에게서 끝나서 다행이라는 마음속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난 '세금.세금.세금'을 적던 펜을 내려놓았다. 난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 다음 사람말에 최대한 경청하는데 집중해야했다. 그렇지 않고 세금이 얼마였더라 알았는데.라는 혼잣말을 하며 자책하고 있다면 난 자존감 낮고 옹졸하고 소심한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모임이 끝났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오늘 즐거웠어요 ^^ 가는 길 조심히 들어가세요~ 과한 이모티콘을 겸비한 톡들이 올라왔다. 난 차마 즐거웠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방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알림확인을 OFF로 바꿨다.

초라함과 수치심이 머리에 꽉 찼다.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물었다. 이번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역시... 난 고립을 선택해야 했는데 바보같이 사람들에게 또 기대했다. 내 잘못이다. 컨디션이 좋아 모임을 신청한 내 잘못이다. 침대에서 나갈까 말까 고민할때 벌떡 일어나 샤워하러 간 내 잘못이다. 파리바게뜨앞에서 들어갈까 피시방가서 게임을 할까 고민할때 피시방가서 게임을 해야 했다. 아무탈 없을 책을 가지고 와서 위험하지 않을 얘기들을 조용히하고 갔어야 했다. 내가. 내가. 내가. 모임에 나가지만 않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난 휴대폰을 다시 켰다. 난무하는 이모티콘들을 무시한 채 나가기 버튼을 눌렀다. 다시는 이런실수 하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4년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콧속과 명치에 돌이 하나씩 생겼다. 이 돌이 왜 생겼는지는 모르겠다. 나를 사랑해준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한 죄책감때문인지. 아니면 이별의 고통에서 괴로워할때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 것 때문인지. 이 돌을 치우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여행을 가기도 하고 사람들 만날 기회가 있으면 만나기도 했다. 토론모임에 나간 것도 이 돌을 치우기 위해서였다. 내 노력에 부응하지 못하고 돌은 점점 깊숙이 박혀들어갔다. 그 크기에 눌려 난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침대에서 우울함을 견디고 있을 때 깨달았다. 이 돌은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평생 이 돌과 같이 가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의문이 들었다. 숨쉬기 어려운 이 세상을 왜 살아야 할까. 죽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아니 왜 난 죽지 않고 살아있는 걸까. 가끔 돌이 작아질때가 있다. 제주도가서 날 압도할 것 같은 큰 바다를 볼 때. 나의 약한면을 꺼냈을때 아무말 없이 들어주는 사람을 만날 때. 나를 이해해주는 작품을 만날 때. 돌은 가끔 작아졌다. 그때 난 호흡을 길게 쉴수 있었다. 그 호흡을 다시 한번 쉬고 싶어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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