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나는 왜 가난한 흑인 히어로를 원했는가

리뷰]"'금수저' 블랙 팬서 아닌, 가난한 흑인 히어로가 보고싶다", 리뷰를 리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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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영(omysun3)등록 2018.06.29 18:21
오마이뉴스에 실린 <어벤져스 3: 인피니티워>에 관한 기사를 본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지인은 여러 오탈자를 지적한다. 확인을 위해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수정을 위해 간단히 메모를 한 후, 접속한 김에 내가 작성한 다른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생각지도 못했다. 포털에 오른 여러 기사에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중 "'금수저' 블랙 팬서 아닌, 가난한 흑인 히어로가 보고싶다"란 제목이 붙은 <블랙 팬서>에 대한 리뷰 글의 댓글들은 하나같이 비난 일색에 화난 표정이 넘쳐났다.

잠시 멍한 시간이 흐르고, 생각이란 걸 해보기 시작했다. 처음 든 생각은, '왜 저런 제목을 붙여 놓았지?' 하는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대한 원망이었다. 하지만, 곧 도리질을 쳤다. 내가 붙인 제목이 아니더라도 본문 중에 버젓이,

"이후의 '어벤져스' 시리즈에는 현실의 바닥에서 태어나 흑인에게 가해지는 가혹한 차별을 온 몸으로 보여줄 처절한 히어로가 가식없이 보태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중략) 부자가 아닌 (세상의 다수인) 빈자가 균형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분명 보다 흥미로운 여정이 될 것이다"

란 내용이 있지 않은가. 제목이 글의 어떤 부분에 대한 집중을 불러 온다 해도, 저 부정적인 댓글 내용들은 분명 내가 쓴 글에 대한 피드백이었다. 

곧 나는 기사 내용을 합리화하면서 댓글을 단 사람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제목이 저렇더라도, 제대로 읽어는 보았을까? 나는 동족을 압박하는 세계를 구해내야 하는 흑인 히어로의 고뇌와 딜레마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인데, '가난한 흑인 히어로'라는 말만 붙잡고 있네. 말꼬리 잡기가 따로 없군."

그것도 잠시, 곧 댓글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깨끗이 인정했다. 내 생각을 담은 그 글은 흑인은 모두 가난할 것이란 혹은 가난하다는 편견을 담고 있지는 않다. 그렇게 읽는다면 그것은 확대 해석이다. 그러나 타고난 금수저 히어로 보다는 무일푼 흙수저 히어로의 노고가 더 가치있을 것이라는, 일종의 편견을 분명 드러내고 있었다. 흑인이 꼭 모두 가난한 것은 아니듯 텍스트 내에서 금수저든 흙수저든 히어로의 행위에는 재산 이외의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되기 마련이다. 재산과 지위가 유리한 요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집중해 히어로의 행위를 평가해서는 안된다. 만약 블랙 팬서 티찰라가 금수저라서 히어로로서의 정체성에 어떤 문제를 야기했다면 그 부분을 지적해야 했다. 위치를 회복한 티찰라가 제시한 해결책이 금수저 히어로의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면 그러한 부분을 이야기해야 했다. 가난한 흑인 히어로의 선택과 질을 운운하지 말았어야 했다. 특정한 사례 하나 제시하지 않고, 빈자의 행위를 부자의 행위보다 더 가치에 두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부당한 차별이 야기하는 부정적인 결과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실상 나는 부당한 차별을 하고 있었다.

지위를 회복한 후, 티찰라는 유엔 연설대에 올라 와칸다는 더이상 불의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연설을 한다. 청중들이었던 각국의 대표들은 '네가 무슨 힘으로?'라며 의아해 한다. 티찰라와 와칸다를 제대로 보지 못한 청중들이 드러내는 것은, 너어게 그럴 힘이 있겠느냐는 편견의 시선이었다.

나 역시 편견의 색은 조금 다르나, 그 청중의 하나였다. 팔짱을 낀 채 티찰라를 보며 비스듬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부자인 네가, 기득권자인 네가 무엇을 알겠어? 너보단 없이 살았던 친구가 낫지 않겠어?"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찬물을 한바지 뒤집어 쓴 듯 정신이 번쩍 든다. 내 글에는 나의 생각과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생각들이 조합되어 드러날 터이다. 그러나 내가 쓴 글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의 소산'일 것이다.  쓰면서 읽히면서, 나는 학습하고, 깨지고, 깨우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두려워 할 것은 조언도 비난도 악플도 아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앞으로 쓸 글에 드러날 '나'를 어떻게 성장시켜 나아야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난한 흑인 히어로가 보고 싶다. 굳이 어벤져스 군단에 속한 마블의 히어로가 아니더라도, 내 이상이 투과된 '가난한 흑인 히어로'를 만나고 싶다. 그것은 내가 금수저도 기득권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나의 한계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히어로가 부자 나라의 왕인 티찰라보다 분명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두고 봐야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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