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그 끝나지 못한 아픔

리뷰]강풀 <26년>, 광주는 언제쯤 웃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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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영(omysun3)등록 2018.06.26 14:49
십대의 시간을 다 보내며 자라는 동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동안 누구도 '1980년의 광주'에 대해 말해 주지 않았다. 부러 쉬쉬하지 않았더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1990년 초반까지도 1980년의 광주는 가려진 이야기였다.

대학생이 되고나서야 대한민국 행정구역으로써의 광주가 아니라, 역사의 한 축으로서의 '광주'를 알게 되었다. 믿을 수 없었던 참혹한 사진들과 내용들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광주 시민들의 참상에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랑이 같았던 전직 대통령들이 수의를 입은 모습은 적응하기 어려운 생경한 장면이었다. 듣도 보도 못했던 처참함을 물리치는 늘 보아오던 이미지의 위력이었다. 그 뒤로 광주는 말해진다. 이전처럼 제한받지 않으면서,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그러나 강풀의 <26년>은 여전히 끝나지 못하고 있는 광주의 아픔과 분노를 그려낸다. <26년>은 '미디어다음'에서 2006년 4월 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연재한 웹툰이다. 강풀은 <26년>을 통해 광주 피해자들에게서 자식들로 이어지는, 아직도 다하지 못한 숙제처럼 남아있는 광주를 이야기한다.

강풀 <26년> 1권 표지 ⓒ 재미주의


광주는 여전히 아프다

사격 국가대표 미진의 아버지는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잊혀지는 과거의 이야기기가 가득할, 이제는 '사라져' 가는 헌책방이다. 아내를 계엄군의 총알에 잃고 아버지는 실어증에 걸린다. 말할 수 없는 아버지처럼 광주는 말해지지 못했다. 그러나 광주의 참상이 알려지고 난 후에도 아버지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광주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음에도, 아내마저 계엄군의 총에 목숨을 잃었음에도, 법은 당시의 책임자를 '사면'하고 보호해준다. 광주의 실상이 만천하에 밝혀졌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분노를 간직한 채 죽음을 맞이한다.

아버지가 하는 말이라고는 '저 놈을 총으로 쏴죽여야 혀!'였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그 말을 실행하려는 미진 앞에 무수한 장애가 놓인다. 같은 아픔을 가진 여러 사람들이 그녀를 돕지만, 총을 구하기도, 타켓에 접근하기도, 조준 장소를 찾아내기도, 어느 하나 쉽지가 않다. 겨우 목표물을 향해 총구를 겨누지만, 엉키고 설킨 상황들로 조준점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마치 광주가 어떠했는지 말하지 못했던 과거처럼, 말하고 나서도 제대로 단죄할 수 없었던 것처럼.

미진의 아버지는 죽기 전, 미진에게 '네 삶을 살아라.'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는 필경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한과 상처를 잊고, 딸이 더는 고통스럽지 않게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아비로서의 애절한 심정을 표현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미진에게 광주는 분리될 수 없는 '내 삶'이 되어 있었다. 이는, 광주의 상흔처럼 얼굴에 흉터를 가진 진배,  광주의 분노를 아내를 통해 겨우 잠재운 치영, 완전하게 말할 수 없던 광주처럼 말을 더듬는 정혁에게도 마찬가지이다. 80년의 광주가 만들어낸 분노와 상처와 아픔은 고스란히 자식들에게 공유되었다. 이미 광주는 그들의 삶이었고, 해결되기 전까진 그들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80년의 광주가 아직도, 여전히 살아있다.

역사, 그저 흐르기만 한 시간

사건을 모의한 김갑세는 죽을 날이 가까운 시한부 암환자이다. 그가 계엄군의 신분으로 광주로 차출되어 광주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들이댔던 나이는 26세였다. <26년>은  김갑세의 나이를 제목으로 따온다. 광주가 그때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았음을, 치유되지 못한 부모의 상처와 그것을 그대로 떠안고 자란 자식들의 모습을 숫자로 단적으로 표현한다. 제목은 치료하지 못한 역사의 아픈 상처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광주의 부모도 자식도 좀처럼 '네 삶'을 살아낼 수가 없다. 1980년의 광주와 웹툰이 시작된 2006년의 사이에 26년의 물리적 시간이 흘렀음에도 말이다. 2006년에서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는 달라졌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법과 정치는 '중립'의 위치에서 되돌릴 수 없는 소리만 요란한 미온적인 망치질을 이미 해버렸다. 그러나 사죄해야 할 누군가는 아직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입을 다문 자를 보호하는 숱한 장치들은 광주의 비통한 상처를 키워낸다. 실상 말해져야 할 것은 무엇보다 사죄의 언어이다. 사죄의 언어를 대신하는 역사를 들먹이는 합리화는 80년의 광주를 그 시간에 붙박이 시킨다. 사죄하지 않은 '그 사람'은 여전히 '부끄러운 자'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하던 '그 사람'이지만, 김갑세처럼 세월과 죽음의 힘을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죄하지 않고 죽는다면, 죽은 '그 사람'은 '영원히' 부끄러운 자로 남을 것이다.

강풀 <26년> 3권 표지 ⓒ 재미주의


그러나, '그 사람'이 그저 부끄러운 자가 되는 것만으로 '미진'한 느낌이다. 진배의 '대체 언제까지 역사를 들먹일 건지, 지금도 역사라고, 지금 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냐'는 외침이 쟁쟁하다. '네 삶'을 살지 못하는 그들의 아픔이 너무나 생생하다. 때문에 미진, 진배, 정혁, 치영이 말하는 단죄가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다. 역사는 제대로 된 형벌도 내리지도 진심어린 사죄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간의 역사는 광주의 아픈 사람들에게 별반의 위로를 전해주지도 못했다. <26년>은 이러한 무능력한 역사를 대신하여, 이미 역사의 일부였고 역사가 되려는 몸짓들을 처절하게 그려낸다. 역사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드러나자 않았던 아픔들에 숙연해진다.

공권력이란 무엇인가

자기 위치에서의 올바르고자 하는 명분을 가진 최계장은 공권력을 생각하게 한다. 최계장은 과거 고문을 하고, 운동권 학생들을 잡아들인 전력이 있다. 그러나 올바르게 살기 힘들다는 문목사의 말을 듣고 고뇌하며, 고문하는 자에서 잡아들이는 자로, 방관하는 듯 수하 경찰들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주는 지켜보는 자로 점차 변화한다. 이러한 최계장의 눈 앞에 광주 시민들과 계엄군이 맞섰던, 마치 1980년의 광주의 상황이 재연된다. 최계장은 여전히 사죄하지 않는 '그 사람'으로 인해 무고한 서로가 또다시 총을 겨누게 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진배를 막아선다. 진배 등이 가진 개인의 단죄 의지와 그것을 막아서는 최계장은 당겨진 팽팽한 활시위처럼 긴장감을 가져온다.

고뇌하는 최계장은 광주의 계엄군처럼 무조건의 명령 복종 행태를 보이지 않는 생각하는 공권력으로 비쳐진다. 잘못 행사된 공권력이 가져오는 참극을 잊지 않으며, 공권력이 어떻게 사용되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지점이었다. 더이상 '공권'이 뒤에 숨은 권력의 어두운 조종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 공권력은 시민의 안전을 담보하여야 하며, 그 안전을 위협하는 명령에는 무조건적인 복종을 해서는 안된다. 최계장은 진배 등을 막아서나, 그 결정에 고민을 동반함으로써 무조적인 복종의 행태를 보이지는 않는다. 비록, 현실의 한계를 떠안은 아쉬움이 남는 인물이었지만, 권력의 기계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면 점에서 다소 희망적이었다.

1980년의 광주는 '여전히' 아픈 역사이다. <26년>은 그 아픔이 여전함을, 아직도 고통스러운 누군가가 존재함을 환기시킨다. 강풀은 그 상처를 다양한 인물들로 되살린다. 아버지를 대신해 총을 들어 복수하려는 미진, 사이렌 소리에 미치는 엄마의 공격으로 얼굴에 흉터를 가진 진배, 정의를 실현하러 경찰이 되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정혁, 아버지를 잃은 분노를 품고 있는 치영, 계엄군의 일원으로 발포하여 무고한 시민을 살상했던 기억으로 눈물을 흘리는 김갑세 등 광주의 시간이 어떻게 지금에 이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려 한다. 인물들을 연결시키는 치밀한 구조는 여느 추리 소설 못지 않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과연 인물들의 목적인 복수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그 여정에 동반되는 난관과 갈등들이 아귀가 잘 들어 맞는 훌륭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완결되지 않는 역사의 보여주듯 마지막까지 진행되는 듯한 엔딩은 여지를 준다. 물론 그 여지는 우리가 채워가야 할 것이다.

<26년>의 인물들은 대부분 웃음이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무표정한 얼굴 뒤엔 슬픔과 분노가 존재한다.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 가진, 국가와 공권력이 만들어내는 남겨지고 이어지는 상흔을 곳곳에서 만난다. 그 '여전함'을 물리칠 수 있는 내 안의 힘을 <26년>을 덮으며, 그 안에서 찾아낸다. 이 자리에서 나는 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으로 올바르기를.

덧붙이는 글 네이버 포스트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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