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가? '리설주 여사'라는 호칭도 쓰지 못하는 언론들

호칭은 이념이 아니라 기본적 예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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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훈(adhoon)등록 2018.04.08 14:36
국내 모든 언론들은 지난 북·중 정상회담소식을 일제히 메인 뉴스로 보도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 부부와 시진핑 주석의 만남을 두고 북한이 '정상국가'외교에 나섰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북중정상회담시 두 정상 부부의 기념사진 한국일보가 보도한 사진 ⓒ 한국일보


언론들의 논리를 뒤집어 보면 그동안 북한은 정상국가가 아니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부부동반 여부에 따라 정상외교와 비정상외교가 구분된다는 논리도 해괴하거니와 UN 회원국이며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북한을 정상국가가 아니라고 전제하는 것도 모순적이지만 그 문제는 일단 논외로 하자.

● 펑리위안 여사, 부인 리설주

한국일보는 북·중 정상회담을 소게하는 기사에서 위의 사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았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과
부인 리설주(맨 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하략) (한국일보 2018.3.28)

중국의 퍼스트레이디에게는 친절하게도 '펑리위안 여사' 라는 존칭을 쓰면서 북한의 퍼스트레이디에 대한 호칭은 '부인 리설주' 였다.
이와 같은 보도행태는 다른 언론사도 다르지 않았다. 북한에 대해서 유난스럽게 거부감을 보이는 조중동을 제외하더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중국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彭麗媛) 여사도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에게 …… 4종류를 선물했다. (KBS 2018. 4. 5 인터넷 판)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에 부인 리설주가 동행했으며,……북중 정상회담이 끝난 후 시 주석과 펑리위안(彭麗媛) 여사가 김 위원장에 선물을 전했고 (JTBC가 인용한 연합뉴스 기사 2018. 3.28)

한겨레, 경향, JTBC, 오마이뉴스 등 북한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이라는 소리를 듣던 언론도 정도는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이름 앞에 '부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도 최근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부터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최고지도자로 떠오르던 때부터 지금까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에 대한 비인격적 인신공격은 끊이지 않았다. 일부 극단적인 언론사에서는 그가 무용수 출신 '기쁨조'였다거나 심지어는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외설적 표현까지 써가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부풀려 보도하기도 했다.

●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VS '김정은 위원장 부인 리설주'

이름 뒤에 그깟 '여사'라는 호칭을 붙이고 안 붙이고가 뭐 그리 중요할까. 개인적인 만남이나 대화에서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정상회담은 양 국가가 대등한 관계에서 '평등과 호혜의 원칙'에 따라 펼치는 대화의 장이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격을 맞춰야 한다. 호칭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불과 3주 뒷면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 부부가 판문점 남측구역으로 넘어와 문재인 대통령부부와 함께 손을 마주잡게 될 터이다. 당연히 국내외 언론들은 그 장면을 톱뉴스로 내보낼 것이다.
오는 4월 27일 남북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을 언론들은 어떻게 보도할까? 자못 기대가 된다. 혹시 '영부인 김정숙 여사와 이설주가 환담을 나누었다'라는 식의 보도를 하고 있을 셈인가?

이번 평양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공연에 북한 경호요원들이 남측 기자들의 취재를 막았던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북한 측은 권력 2인자인 김영철 부위원장이 직접 '사죄'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정중한 사과를 했다. 어렵게 마련된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북한은 세심한 부분까지 배려하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명령만 내리면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북한의 상황을 우리와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 청와대가 각 언론사에 '리설주 여사'라고 호칭을 지정해 줄 수도 없는 일이다.

상대국가의 최고지도자와 퍼스트레이디에게 그에 걸 맞는 호칭을 붙이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의 언론들이 북한의 퍼스트레이디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본적 예의도 모르는 시정잡배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남북정상회담을 탐탁찮게 생각해서인가. 그도 아니라면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눈칫밥을 먹다보니 혹시나 종북으로 몰리게 될까 두려워서인가.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만일, 국내언론들이 '리설주'라는 이름 뒤에 도저히 '여사'라는 호칭을 붙일 수 없다면 차라리 양측을 공평하게 이렇게 보도하는 것이 더 합당하지 않을까?

'문재인대통령 부인 김정숙이 김정은 위원장 부인 리설주를 만났다'

추신 : 본 기사를 송고하려는 데 오늘 (4월 6일) 청와대에서는 공식적으로 '리설주 여사'로 부르기로 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문득 종북몰이의 꼬투리를 잡았다고 좋아 할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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