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되었다가, 용이 되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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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근(eusis)등록 2018.03.29 11:48

ⓒ 경인방송


내 근무지가 있는 용인은 한자로 龍仁이라 쓴다. '용같은 인자들의 도시'라고 우겨 보고도 싶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조선 태종 임금 때 '용구'와 '처인'이 합쳐지면서 각 고을의 이름에서 한글자씩을 따서 만들어졌을 따름. 당시 통합 고을의 이름을 정하던 공무원(?)이 마음이 달라져 '처구'나 '용처'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더라면 지금의 감각으론 웃겼을뻔했다.

용구라는 이름은 구성이라는 고구려 때 이름에 그 연원을 둔다고 한다. 구성이라는 이름은 망아지 구駒자를 쓰는데, 그 이름을 근거로 학자들은 이곳에 고구려의 큰 군사기지가 있었다고도 추정 하는 모양이다. 용인에는 둔전屯田이란 지명도 있고, 지금도 큰 군부대가 있는 걸 보면 옛적부터 군대가 주둔하기 좋은 환경이었는 모양.

구성이란 이름이 용구란 이름으로 바뀐 것은 뭔가 고을 이름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예로부터 말 하면 역시 '용마' 아닌가. 강원도 인제군도 원래는 땅 모양이 짐승의 발굽처럼 생겨서 돼지 저猪자에 발 족足자를 써서 저족猪足이었다가 조선 시대에 뜻은 살리되 좀 멋진 동물로 바꿔보자 하서 기린 麟자에 발굽 蹄자를 쓰는 인제군으로 바꿨다고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스타일은 중요했던 모양이지.

어쨌거나 이름에 용 龍자가 들어가다보니 용인의 이런저런 마크나 상징엔 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잦다. 원래 이름의 주인이었던 말의 입장에선 좀 서운하기도 하겠다. 돼지도 아니고 말도 멋진데. 저 용이란 놈이 내 자리를 꿰차고 앉았어!라는 망아지 駒자 쓰는 옛 말의 원성이 들리는 것도 같다.

고을 이름에 용 龍자가 들어가서 그렇게 된 것인지, 용하게도 용인엔 다른 곳보다 안개가 잦다. 집이 있는 성남에서 용인으로 출근을 하다보면, 용인시 경계를 지나자마자 안개가 끼는 날이 적잖다. 옛적의 사람들은 용이 나타날 땐 구름이 낀다고 했다. 동해 바다에서 용오름 현상이 일어날 땐 바다 위로 구름이 가득 낀다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은 용오름 용의 승천이라 봤고 그 때 끼는 구름은 용의 찬란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눈이 멀까봐 끼는 것이며 이 또한 백성을 아끼는 용의 덕을 상징하는 것이라 했다.

어쨌거나 용인은 그렇게 안개가 많은 도시인데, 안개만 많이 끼지 등용문 登龍門을 오르는 용같은 인재는 별로 나지 않는 모양이다. 얼마 뒤 지방 선거에선 용인시장도 새로 뽑게 되는데, 용인시는 역대 시장이 줄줄이 비리로 감옥에 간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금껏 재선이 된 시장이 거의 없을 정도. 이는 민주당계 시장이나 자유한국당계 시장이나 차이가 없다. 신도시가 많아 개발 호재 투성이인 용인의 특성상 관료들이 뜯어먹을 이권이 다른 도시보다 많아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안타깝게도 용인에는 대대로 용같은 시장이 아니라 엉덩이에 뿔난 못된 망아지같은 시장이 많았다. 혹시 이것은 이 긴요한 땅을 빼앗긴, 고을 이름에 망아지 구駒자를 썼던 옛 고구려인들의 저주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록 용인시민은 아니지만 용인시에서 근무하는 사람의 하나로, 이번 용인시장은 용까지는 안바라고 그저 못된 망아지만 안뽑혔으면 좋겠다. 각 당에서는 용인시의 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부디 굽어 살피셔서 이번엔 좋은 후보를 좀 공천해줍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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