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0년의 위구르, 2018년의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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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근(eusis)등록 2018.03.2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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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몽골 초원에 있던 위구르 제국은 840년 칸의 자리를 놓고 벌어진 내분과 키르기즈의 침공으로 붕괴한다. 부족민 중 절반인 20만 정도는 남으로 달아나 북중국으로 이주해 정착하고 나머지 20만 정도는 서쪽으로 달아나 지금의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된 동투르키스탄에 정착했다.

남쪽으로 이주한 무리는 다른 많은 북방 유목민들과 더불어 한족과 혼혈되어 유전자의 일부만 남긴 채 사라졌고 서쪽으로 이주한 무리는 현재 자치구 위구르인의 조상이 되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인들은 지금도 가끔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데 그때마다 한족 중앙정부의 무자비한 진압을 당한다. 위구르인을 진압하는 중국군 중에는 천년전 흡수된 남으로 이주한 위구르인의 DNA을 가진 병사도 섞여있을 것이다. 천년전 이웃이던 누군가의 자손들은 그 천년의 역사를 잊은 채 서로를 증오하며 현재를 산다.

전쟁과 분단 이후 오랜 세월 금기시 되던 지리산 빨치산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끄집어낸 이태의 논픽션? 소설? '남부군'에서 저자는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으로 패주하는 남로당 전북도당의 최후를 기술한다. 전북도당 유격대는 반으로 나뉘어 반은 전남이나 경남도당 유격대와 함께 지리산으로 입산하고 반은 서쪽 변산반도로 향한다. 지리산과 달리 변산은 유격대가 생존할 수 없는 환경. 변산으로 가는 인원들은 사실 지리산으로 향하는 도당 지도부가 안전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토벌대의 화력을 분산시키는 일종의 '버리는 돌'이 되는 것. 영화 남부군에선 주인공(배우 안성기씨가 그 역을 맡았다)이 도당 철수의 아수라장 속에서 사랑하는 이(배우 최진실씨의 역)가 변산으로 가는 부대에 배속되었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아연해라는 장면이 나온다. 삶과 죽음과 운명은 그렇게 개인의 의사를 뒤로 하고 냉정하게 흘러간다. 천년의 세월을 격하여 이제는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9세기 위구르인의 자손들처럼.

남북의 지도자들이 조만간 판문점에서 만난다고 한다. 잘 알려져있듯 남의 지도자는 원래 북의 흥남에 살다가 전쟁통에 남으로 피난온 사람의 아들이다. 북의 지도자 또한, 그 조상이 조선 후기 흉년의 배고픔 속에 전라도 전주에서 평안도 평양으로 솔거 이주한 농민의 자손이다. 아직은 서로가 서로의 그런 이산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을 때, 그래서 마음 한 구석에 일말의 끈같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남북은 더 이상 이질화되지 않고 가까워지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이대로 천년이 지나면, 남북도 그 모든 사연을 잊고 이민족으로 서로를 증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840년에 헤어진 위구르의 이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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