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아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기 프로젝트 1

작은 행복이 쌓이면, 행복한 인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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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영(cyyoun)등록 2018.03.02 15:21
100가지 아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기 프로젝트 1

아내와 결혼한 지가 올해로써 28년째이다. 그 동안 아내에게 참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에 실패해 경제적으로 힘들게 했고, 알콜 중독으로 마음 고생을 많이도 시켰다. 결혼할 때는 정말 잘해주고 싶었는데, 고생만 시키며 지내다보니 어느덧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앞으로는 아내에게 잘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막연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잘 해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100가지 아내가 원하는 것 들어주기 프로젝트>

이다. 우선 아내에게 100가지만 잘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떤 것이 아내에게 잘 하는 것인가? 라는 물음이 생겼고,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된다는 답을 얻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아내는 나에게 많은 것을 원했다. 하지만 들어준 것보다는 들어주지 않고 무시하거나 미루거나 한 것이 더 많았다.

어젯밤 귀가를 하니 아내가 나에게
"내일 아침 바다로 드라이브 갔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을 했다. 100가지 잘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후 첫 번째로 아내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었기에
"그래요, 갑시다."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7시에 아내와 집을 나섰다. 우리집에서 바다까지는 한 20분 정도가 걸린다. 지난밤에는 바람이 많이 불었다. 잠을 자다 바람소리에 놀라 깨어날 정도로, 아침이 되자 바람의 기세는 한풀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찼다. 차를 타고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나에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나는 아내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아내와 나는 천생연분임에 분명하다. 먼저 아내가 말을 시작했다.

어제 아침 운동하러 갔는데, 00언니가 둘레길을 함께 걷자고 해서 걸었어요. 시어머니와 싸운 이야기를 하더군요. 이번에 아들이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시어머니는 지난 설에  남편이 힘들게 돈을 벌었기에 당신의 손자가 교사가 되었다는 말을 했다네요. 그 말을 듣자 자신이 한 노력은 인정되지 않음을 느꼈대요. 언니는 속으로 '나도 함께 돈 벌었는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참았대요. 그런데 며칠 전 또 다시 자기 아들 편을 들며 공치사를 하더래요. 참다못한 언니는
"어머니, 저도 함께 키웠어요."
라는 말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거품을 물고 자신에게 심한 말을 하더래요. 시어머니에게 그런 소리를 들으니 존재감이 없어졌대요. 그래서 저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죠. 전에 미용 기술 배워 당신 머리를 깍아주었을 때 어머님이 나에게
"우리 영이가 머리를 대주니 니가 얼마나 고맙겠노."
라는 말을. 그리고 시어머니는 다 똑같은 것 같고 본능적으로 아들 편을 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죠. 그러자 이번에는 남편 흉을 보더군요.
언니 남편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입을 대면, 바로 화를 낸대요. 전에 조카 결혼식이 있었는데 축의금을 100만 원을 내겠다기에 너무 많지 않느냐고 한 마디 하자 바로 봉투를 찢어버렸대요. 도대체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군요. 언니가 다리를 다치고 난 후 집안일은 남편이 거의 도맡아 한 대요. 다른 것은 잘 하는데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해 죽겠다는군요.
그리고 우리 부부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너무 부럽다고 하더군요. 그 남편과 언니는 맞벌이 부부여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데, 소통이 되지 않으니 부부간에 서로 불만이 많은가 봐요.  돈이 많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 행복은 돈이 많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라면서 말을 받았다. 그리고 어제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어제 울산 중구 평생교육원에서 박성호 강연회가 있었어. 올해 스물일곱 청년인데 세계일주를 하고 책을 내었다는군. 자신을 대치동 키즈라고 소개를 했는데,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안 다녀본 학원이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강남 키즈였대. 그렇게 공부를 하여 울산의 자사고인 청운고등학교에서 공부한 후, 명문대인 카이스트에 합격을 했어. 그런데, 당신 기억나지? 몇 년 전에 카이스트 학생들이 매월 한 명씩 자살한 일말이야. 그때가 박성호가 1학년 때였다는군. 자살한 친구 중에는 자기와 친했던 학생도 있었다네. 많은 충격을 받았고 인생이 참 공허하다고 느껴졌대. 그리고 많은 생각을 하는 계가가 되었대.
왜 자살을 한 것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대. 어머니의 등에 떠밀려 학원에서 학원으로 옮겨 다니며 공부를 했고, 고등학교에서도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학교에 합격을 했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더라는 거야. 그러다 군대에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남들은 힘들다는 군대생활이 자신에게는 학교에 다니며 공부할 때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껴졌대.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군.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한 공부는 자기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된 삶을 살아야 된다는 생각을 했대.
군대 제대를 하고 우선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여 카이스트를 수석 졸업을 한 후, 호주로 여행을 떠난 거야. 호주에는 최저임금이 시급 2만 원 정도였는데, 일을 하며 받은 돈으로 비행기 티겟을 샀대. 세계 지도를 펴두고 임금을 받을 때마다 한 지역에서 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는데, 3개월 정도 일을 하여 번 돈 1천만 원으로 6대륙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었다는군. 그리고 1년에 걸쳐 세계 여행을 했다는 거야. 대단하지 않아? 우리 아들도 스물일곱인데 말이야.

정자에서 주전까지 해안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며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를 보기도 하고, 비온 뒤 청명한 하늘과 바다로부터 봄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마음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다 바닷가 옆 편의점에 도착해서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서 먹으며, 말을 꺼냈다.
"박성호를 보니 우리 아들 성원이 생각이 나더군. 서울에 함께 가는 것이 어때? 겨울도 끝나가고 하니 옷이랑, 봄에 덮을 이불도 가져가고, 전에 가져다준 솜이불도 가져오고."
"저도 그 생각을 했는데, 갈 때 생선회를 좀 사가지고 가요. 함께 일하는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면 아주 좋을 것 같네요."
"그것 좋은 생각이네. 다음 주에 한번 갑시다."
돌아오는 길이 무척 행복했다. 행복이란 미래에 있는 것도, 거창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작은 것이 행복이다. 작은 행복이 쌓이면 행복한 인생이 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침 9시. 두 시간 동안의 아내와의 아침 데이트는 끝이 났다. 하지만 나의 프로젝트는 이제 시작이다. <100가지 아내가 원하는 일 들어주기 프로젝트>가 끝나갈 즈음이면 아내와 나의 관계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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