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당신을 만난다면

사춘기 우리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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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철(drmir)등록 2018.02.09 14:12
               

                                                                
저는 벚꽃 흩날리는 버스 창가에서 맞이하는 나른한 봄날을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제 옆자리에 앉아서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주신다면 잠시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춘기 하면 두 가지 사건이 떠오르네요. 하나는 다리에 거뭇한 털이 나면서 두려운 마음에 가족들이 모두 잠든 사이 몰래 면도기로 다리털을 밀었던 일이었어요. 다른 하나는 같은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 집에 건 장난 전화에 화들짝 놀라서 얼른 끊었던 일입니다. 그렇게 시골에 살던 수줍던 남자아이는 고3이 되어서 삼촌 댁 아파트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공부방 창 너머로 일반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습니다. 거기 옥상으로 늘 빨래를 널러 올라오는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여학생이 빨래 널러 올라오기만을 지켜보다 보니 어느새 학력고사 볼 때가 되었더군요. 여러분도 공부할 때 누가 빨래 널러 옥상으로 올라오거든 얼른 창문을 닫고 쳐다보지 마시길 바라요.

그래서 재수하게 됐습니다. 그땐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그 자리에 이불을 펴고 잠들었거든요. 식사는 독서실에서 가까운 매식 집에서 하고요. 밥 먹다 보면 수챗구멍으로 시커먼 쥐가 들락거렸어요. 재수하면서 나 자신과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제일 먼저 학원에 가서 칠판을 닦고 창문을 열어 환기하자. 교탁근처 맨 앞자리에 앉자. 선생님이 말씀할 때마다 튀는 침을 받아먹으면 성적이 오른다는 얘기가 있었거든요.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마다 담당과목 선생님을 쫓아가 한 문제씩 물어보자. 학원이 끝나면 맨 마지막에 불을 끄고 정리하고 나오자.' 늦은 밤 식당에 들러 도시락을 건네주고 독서실로 돌아가는 길에 했던 마음의 다짐들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요.
인생의 한 시기에 치열하게 자신과 마주할 경험이 여러분들에게도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그게 꼭 공부가 아니어도 좋아요. 그 경험은 여러분들이 힘든 순간에 직면할 때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바닥을 쳤다고 생각할 때마다 여러분들을 위로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힘이 돼줄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좋은 직업이 뭔가요?' 라고 여러분들이 제게 묻는다면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 지금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듯…….
당신이 마주한 사람에게 그리고 당신에게도 오늘도 수고했다고 친절하게 대해주세요.

KTX 안에서 가수 김창완 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큰 꿈을 가지고 살라는 세상의 말에 속지 마세요. 작은 꿈을 가져도 좋아요.' 본인도 큰 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힘드셨노라고 얘기하셨는데, 그 말 한마디가 제게 참 위로가 되었어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바꿔서 말해주고 싶어요. 큰 꿈을 꾸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큰 꿈을 꿔도 좋아요. 하지만 작은 꿈을 갖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감당할 만한 마음의 그릇에 맞게요.

'당신의 부모님에게도 엄마아빠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좋아요. 제가 성인이 돼서 알게 된 말이지만요. 그 말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의 한숨 소리, 절망하던 눈빛, 삶에 지친 표정이 고스란히 이해가 됐거든요. 여러분이 '우리 부모님도 늘 엄마와 아빠가 필요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여러분 곁에도 소중한 가족이 생겨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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