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생활문화이야기, 공연으로 기록되다

종로의 기록, 손의 기억 <낭독공연발표회> 현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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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정(seouleditor)등록 2018.01.25 16:55
2015년부터 문화다양성 가치를 확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무지개다리사업'을 운영해온 종로문화재단은 2017년의 테마로 '한복'을 선정하고, 한복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손의 기억 채록집을 발간했다. 또한 채록집의 자료를 바탕으로 (사)한국연극협회와 함께 전문 희곡작가 3인을 선정해 세 편의 창작희곡을 완성해냈다. 한 해의 성과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17년 12월 1일 오후 5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 다목적홀에서 열린 '종로의 기록, 손의 기억' 낭독발표회 현장을 찾았다.

전통의 가치를 진중하게 전하다  

종로문화재단은 지난 해 '종로한복축제'와 '바느질 워크숍 프로그램' 등 뜻 깊은 기획들로 시민과 호흡하며 한복의 소중함과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또한 한복 및 침선업 종사자들의 구술을 채록한 자료집을 발간해 전통의 명맥을 이어온 이들의 이야기를 널리 전하기 위한 노력을 보탰다. 특히 이날 낭독공연발표회에서 선보인 세 편의 작품은 그 자료집을 근간으로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시연 전부터 큰 관심을 모았다. 베일을 벗은 세 편의 작품은 극단 시선의 홍란주 대표가 직접 극을 쓰고 연출한 <반짇고리 속 이야기>와 극단 에이치프로젝트의 한윤섭 대표가 작과 연출을 맡은 <한복을 지어 입다>, 극단 목화 출신의 홍원기 극작가가 쓰고 연출한 <옷이 날개>로 구성되었다.
정식 공연이 아닌 낭독공연발표회임에도 불구하고, 연극 연출가 및 평론가와 배우부터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관객층이 참석해 현장은 몹시 붐비는 모습이었다. 프로그램을 주관한 (사)한국연극협회의 정대경 이사장은 사회를 맡아 낭독공연 전, 발표회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종로는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종로문화재단은 다양한 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현장에서 문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발표회는 문화의 다양성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종로문화재단과 함께 마련한 자리입니다. 우리 전통문화가 더욱 흥미롭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낭독공연 발표회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는 (사)한국연극협회의 정대경 이사장 ⓒ 종로문화재단


이후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참여한 예술가들을 독려하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이런 다양한 예술 활동을 통해 대학로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로문화재단에서는 여러 시설을 운영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민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재단을 많이 지켜봐주시고, 종로의 문화를 더 많이 사랑해주시기 바랍니다."

축하인사를 건네고 있는 김영종 종로구청장 ⓒ 종로문화재단


또한 낭독공연발표회의 예술 감독을 맡은 김미혜 연출과 극단 뿌리의 김도훈 대표, 박정기 평론가, 강영걸 연출, 한국연극연출가협회의 성준현 회장, 안경모 연출, 신동인 연출, 배인석 문화기획자에 이르기까지 걸출한 연극계의 인사들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낭독공연발표회를 찾은 박정기 평론가 ⓒ 종로문화재단


한편 박정욱 한복 디자이너, 조경숙 한복 디자이너와 광장시장에서 한복의 명맥을 이어가는 한복 장인들도 멋스러운 한복 차림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참석한 내빈에 대한 소개 이후에 본격적으로 낭독공연 발표가 이어졌다. 공연은 한 편당 25분의 러닝타임으로 구성되었으며 <반짇고리 속 이야기>, <한복을 지어 입다>에 이어 <옷이 날개> 순으로 진행됐다.

역사를 관통하는 삶의 생생한 고증, <반짇고리 속 이야기>

공연 시작 전에 마이크를 잡은 극단 시선의 홍란주 대표는 이번 작품은 장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복디자이너이자 국악인으로 활동 중이신 박정욱 선생님의 어머니와 광장시장에서 운현주단을 운영하는 분들, 길쌈을 하셨던 저희 할머니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넣은 만큼 개인적으로도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의 소리와 움직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작업해온 사람으로서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자전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또 옷을 만드는 과정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속에 스며든 인간과 삶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공연의 소회에 대해 밝히고 있는 극단 시선의 홍란주 대표 ⓒ 김연정


<반짇고리 속 이야기>는 실존 인물들의 삶의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완성한 만큼 충실한 고증과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였다. 상방기생이었던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반짇고리로 권번에서 바느질을 하면서 살아온 소향은 해방과 함께 권번이 무너지면서 정수네 가족과 살게 된다. 1.4 후퇴 때 북한군을 탈영한 정수를 숨기다 중공군에게 겁탈당한 소향은 월남해 북창동에서 시어머니 경옥과 남편 정수, 더부살이 미자와 가정 한복집을 운영한다. 포목을 나르며 시를 쓰던 정수는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억울하게 체포되고 미자가 낳은 운연을 키우던 소향은 치매 걸린 경옥, 고문 후유증으로 장애가 생긴 정수 사이에서 쇠락한 한복집을 지킨다. 한편 운연은 건달 하수와 결혼해 소향이 만든 혼례복도 입지 못한 채 손녀 하늘을 맡기고 야반도주한다. 소향은 마지막으로 하늘에게 신부복을 선물하며 바느질 인생을 마무리한다. 이 작품은 오랜 세월 동안 한복을 짓는 업을 이으며 역사를 관통해온 인물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있다는 점에서 몰입도를 높이며 주목받았다.

<반짇고리 속 이야기> 속 한 장면 ⓒ 종로문화재단


색다른 접근으로 풀어낸 한복 이야기, <한복을 지어 입다>

이어 두 번째 작품의 작·연출을 맡은 극단 에이치 프로젝트의 한윤섭 대표는 작품을 완성하는데 있어 많은 고민의 시간을 거쳤다고 밝혔다.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고민하면서 작품을 썼는데 쓰고 보니 만족스럽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쓰던 것을 멈췄어요. 한복에 대해 실컷 이야기해보고, 한복과 관련된 단어라도 나열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드라마는 그 다음에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죠. 배우들과 작품을 연습하는 과정에서 대화도 많이 나누고, 노래도 하면서 작업을 이어가다보니 대본 완성이 조금 늦어졌네요. 형식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극단 에이치 프로젝트의 한윤섭 대표 ⓒ 종로문화재단


한윤섭 대표가 밝혔듯이 이 작품에는 한복에 대해 탐구해나가면서 느낀 점과 경험들이 그대로 녹아있어 보는 이들의 공감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또 작품이 크게 두 가지의 이야기로 구분되어 진행된다는 점에서 전반부와 후반부의 대비가 두드러지는 양상을 보였다. 첫 번째는 극에 등장하는 작가가 한복을 소재로 한 글을 쓰기 위해 고민하면서 만나는 한복에 대한 단상들, 또는 한복과 연관된 노래 등을 찾는 과정을 그리는 프롤로그로 구성된다. 두 번째는 실제 드라마로 극중에 작가가 찾아낸 소재, 배냇저고리에서 혼례복, 수의까지 한국인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세 가지 한복을 소재로 한 극중극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극중극은 고전 흥부전을 모티브로 하여 흥부 처의 삶을 배냇저고리 혼례복, 그리고 수의와 연결 지어 꾸며낸다. 또 속담과 역사 이야기는 물론이고, 흥을 절로 돋우는 한복타령을 가미해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이는 <한복을 지어 입다> 속 한 장면 ⓒ 종로문화재단


유쾌한 전개가 미덕인 풍속희곡, <옷이 날개>

마지막 작품으로 소개된 <옷이 날개>의 작·연출을 맡은 홍원기 작가는 공연에 앞서 한복의 과거가 아닌, 미래상을 조망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한복을 지으며 우리 옷의 전통을 이어온 침선 장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지켜져 온 전통을 기반으로 새롭게 이어질 한복의 미래를 예감하고,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우리 백성이 근대에서 현대를 거치며 입고자 했던 한복에 대한 이야기와 한복을 만들고 입어야할 미래 세대의 모습을 풀어보았습니다. 단순한 의도가 우발적 사건으로 번지면서 여러 인물들의 갈등이 불거지고, 그 과정에서 다른 세대들 간의 소통도 이루어지는 희극 코미디입니다. 풍속 희곡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작품에 의의에 대해 설명하는 홍원기 작가 ⓒ 종로문화재단


치매가 온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연극이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과거 사연들이 드러나는 이 작품은 지난 세월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의상을 전공하는 손녀딸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한복의 미래상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의상을 전공한 선나는 가벼운 치매가 온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가짜 결혼을 꾸민다. 연극반 후배 선나의 제안을 받아들인 연극배우 세익은 함을 갖고 할머니의 한옥으로 간다. 평생 아끼던 한복을 새신랑 세익에게 입힌 할머니가 그를 자기 새신랑으로 착각하기 시작하며 일이 꼬이기 시작한다. 광장시장에서 한복포목상하는 수양딸 주단은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신랑 역할을 계속 해달라고 부탁한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선나 엄마와 삼촌은 잇달아 찾아오고, 새색시(할머니)는 새신랑(세익)에게 감춘 치마를 내놓으라고 난리를 피운다. 배우 세익의 새신랑 연기는 점점 대담해진다. '한 겨울밤의 꿈' 같은 소동 속에서 할머니가 숨겨두었던 '인생의 한복'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끝을 맺는다. 세대들 간의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면서도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이 유쾌하게 전개돼 호평을 받았다.

희극 코미디의 특징이 잘 살아난 <옷이 날개>의 한 장면 ⓒ 종로문화재단


심도 있는 논의로 빛난 작가와의 대화 시간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모인 세 작가 ⓒ 종로문화재단


세 편의 낭독공연이 모두 마무리된 이후에는 작품의 방향을 보다 발전적으로 모색하기 위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서일대학 연극과 교수이자, 극단 작은 신화의 연출로 활동 중인 신동인 연출가는 작품을 보며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며 공연화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방대한 이야기를 25분으로 줄이기 위해 작가님들의 고뇌가 컸으리라 생각합니다. 저희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할머니께서 다듬이질을 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동네 할머니가 오시면, 마주 앉아 박자 치듯이 다듬이질을 하셨던 광경도 떠오르고요. 한복은 결혼식 때 이후로 입어본 적이 없지만, 저에게도 아직 그런 DNA가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공연화 되어서 관객들도 저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 배인석 문화기획자는 낭독공연을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보다 심도 깊게 추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호평했다. "구체적인 동네 지명이 나오고, 신세대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좋습니다. 친숙한 동네를 연구해서 연극으로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죠. 가까이 있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개념이 아니라, 그 진정한 가치를 찾는데 주력한다면 점점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진정한 문화의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것이 좋다는 입장을 견지할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장점을 알아볼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힘들이 연극 속에서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낭독공연에 대한 소감을 털어놓는 배인석 문화기획자 ⓒ 종로문화재단


어머님 생각에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는 박정욱 한복디자이너는 한복의 존재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에 한복을 하시는 어머님께 할 수 있는 가장 큰 효도가 시침질이었거든요. 그렇게 돕다보니 어느새 한복을 만들고, 디자인까지 하게 됐네요. 오늘 작품을 보면서 한복이 우리 생활 어디에든 스며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 선생님들 애쓰셨습니다."

작품을 감상한 소감에 대해 전하는 박정욱 한복 디자이너 ⓒ 종로문화재단


종로문화재단 이건왕 대표이사는 이번 공연을 토대로 보다 진화된 결과물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맺음말을 전했다. "무지개다리 사업을 진행하면서 공연과 접목해보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방향은 잘 설정했지만, 미리 주제를 정해 진행하다보니 공연이 잘 나올까 걱정했는데 괜한 기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후에 어떻게 발전적으로 이끄느냐가 중요한 만큼 선생님들과 잘 논의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맺음말을 전하는 종로문화재단의 이건왕 대표이사 ⓒ 종로문화재단


전문가의 고견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의견까지 새겨듣기 위해 종로문화재단은 설문지를 교부했다. 작성을 완료한 이들에게는 한복 버선을 기념품으로 전달하면서 발표회는 성황리에 종료됐다.

덧붙이는 글 사진은 종로문화재단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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